어릴 적 아버지는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는 분이었다.
어떤 일이든지 아버지께 얘기하면 되었다.
기껏 사달라고 조른 끝에 산 에어울프 프라모델
고작 국민학교 1학년이 완성시킬리가 없었다.
아버지께 만들어 달라고 조르고 한동안 놀다 보니 멋지게 완성되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아버지 월급날에 먹으러 가던 돈까스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돈까스를 먹고는 공을 하나 들고 날이 완전히 저물어 공이 안 보일때까지 함께 공을 찼다.
어린이날이 되면 근무하시는 부대에 들어가 태권도 격파, 의장대 시범을 보고 어린이날 선물을 받았다.
더 많은 세월이 흘렀다.
어느 순간 아버지도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도 모르는 것이 있으셨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으며 완벽한 사람은 아니셨다.
철없고 치기어린 시절에는 '왜 우리 아버지는 ~~~것이 안 되실까?, 못 하시는걸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이 전적으로 나의 욕심이고 일방적인 바램이었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다시 조금 더 시간이 흘렀다.
사회에서 밥벌어 먹고 살며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다.
이제는 다르다.
가족은 그 존재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내 가족이 어떠어떠했으면 좋겠다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생각일 뿐, 가족이 그것에 맞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으로서의 기본적인 책무에 반하는 행동을 멈추도록 촉구하는게 아닌 한 말이다.
지금은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내 아이도 아마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갈까?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아빠는 뭐든지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비쳐지긴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나의 부족한 점, 미치지 못하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거기서 멈출지, 아니면 나와 같은 생각의 경로를 걸을지는 나에게 달려있지 않을까?
엄마와 딸은 자주 전화를 한다.
만나는 것도 아버지와 아들에 비해서는 훨씬 잦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자간의 정이 엷거나 없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도 남자이니 자주 보지는 못해도 한 번 보면서,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아도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있는 공간에서 소통을 한다.
짧은 전화통화에서 대강의 사정을 짐작하지만 굳이 말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남자가 짊어져야 하고 받아야 하는 압력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버지께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