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간격의 역대급 승리와 역대급 패배가 말하는 것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은 180석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선거역사에 기록될만한 역대급 승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불과 1년 남짓 지난 2021년 4월 7일 오후 11시45분, 여당은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역대급 패배를 기록할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최종결과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출구조사 결과 및 현재까지의 개표페이스가 유지된다면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50%대,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60%대 득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결국 불과 1년만에 180도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대체 1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역대급 승리에서 역대급 패배로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일까요?
오늘은 이 점에 대해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선거 지지층은 대략 보수 3, 진보 3, 중도 4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진영이 암울한 상태에서 치렀던 2007년 대선에서도 진보진영 정동영 후보는 26.1%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반대로 탄핵으로 보수진영이 암울한 상태에서 치렀던 2017년 대선에서도 보수진영 홍준표 후보는 24%의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각각 암울한 선거에서도 24~26% 득표율을 기록했으니 통상적인 선거에서는 보수, 진보 각각 30% 전후의 고정 지지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당인 민주당 후보들이 30%대의 득표율을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렇습니다.
40%의 중도층에서 완전히 대패한 것입니다.
오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패배원인은 결국 중도층을 놓치게 된 이유에 대한 분석과 같은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여당은 중도층의 표심을 놓쳤을까요?
여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놓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도층의 특성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중도층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사실 그 안의 개개인은 성장환경, 배경, 직업, 신념 등등이 모두 달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제 생각으로 중도층은 상대적으로 보수, 진보진영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유권자보다 '시대정신'에 민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가장 큰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당신이 말하는 시대정신이란 무엇이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사회구성원 상당수가 그 당시에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가치, 현안과제 등이 바로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명분과 실리 사이의 어디에선가 이뤄집니다.
모든 이해관계를 도외시하고 오로지 명분에 좇아 사는 사람도, 어떠한 명분도 외면한 채 오로지 실리만을 좇아 사는 사람도 극히 드뭅니다.
전자의 예는 백이와 숙제, 성웅 이순신 제독 정도가 있을 것이고 후자의 예로는 삼국지의 여포 정도가 있을 것 것 같습니다.
중도층이 생각하는 시대정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시기에는 명분, 이상, 정의가 7의 비중을 가져가고 어떤 시기에는 실리, 이해관계, 안정이 7의 비중을 가져가 그 당대의 시대정신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2007년 대선은 시대정신 면에서도 진보진영에 불리한 선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3당합당을 통해 문민정부 교체를 이뤄냈지만 당시 3당 합당이었으므로 1/3 지분의 정권교체로 볼 수 있고,
그 다음 김대중 대통령은 DJP연합을 통해 정권을 잡았으니 1/2지분이라고 볼 수 있다면,
노무현 대통령 때 이르러서야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후 지지선언 철회로 비로소 온전한 지분을 가진, 단독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까지 7의 비중을 갖고 있던 민주화에 대한 정당성, 국민들의 지지와 동정, 미안함 등의 시대의식은 이제 일응 마무리 지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 다음은 이제 실리, 이해관계, 안정 등이 더 가치를 부여받는 당시 시대정신에 부합할 수 있는데 이 면에서 진보진영은 대안이 되고 선택을 받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던 분들 중 적어도 일부는 '설령 BBK 의혹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이 사람을 뽑겠다'는 의식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검증하기는 쉽지 않겠습니다만...
이제 2020년의 총선과 이번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시대정신을 생각해보겠습니다.
2020년 총선은 오늘 서울, 부산시정 보궐선거와 정반대로 중도층이 보수진영을 외면하고 진보진영의 손을 확실히 들어준 선거였습니다.
한국갤럽이 2020년 4월 13~14일 21대 총선 직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당시 중도층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35%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의 19%를 약 2배 가까이 앞선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https://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1099)
당시 미래통합당은 2017년 탄핵 이후로 당명만 계속해서 바꿨을 뿐, 탄핵사태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결별을 표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소위 아스팔트 우파, 극우 유투버들과 연합하며 우클릭을 거듭했습니다.
물론 일부 중도층 접근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전체적으로는 우클릭 중심이었다고 느껴집니다.
또한 정부나 여당의 정책추진에 대해서 야당으로서 응당 해야 하는 견제나 비판을 넘어선 수준의 발목잡기로 느껴지는 여러 모습들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국민들은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하고도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야당에 대해서 2020년 21대 총선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게 되고 이것이 당시의 시대정신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번엔 1년 남짓 지난 오늘 보궐선거의 시대정신입니다.
저는 '공정'이란 시대정신 키워드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고 여당이 잘 짚어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전과 같이 고도성장하지 못할 것이란 점,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렵다는 점은 이제 거의 상식처럼 되어 가고 있으며, 이 말은 지금까지처럼 파이를 키워서 나눠먹기보다는 크기가 어느 정도 정해진 파이를 얼마나 공정하게 나누느냐가 매우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문재인 정부가 정말로 '공정'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보궐선거의 패배는 한 마디로 여당이 공정함을 위한다면서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밀어붙인데다가, 스스로의 공정함이 의심받는 일련의 악재들이 터짐으로서 발생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시대정신이 명분에서 실리로 넘어갔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명분으로서의 '공정함'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정책효과라는 '실리'는 더더욱 살리지 못함으로써 완전히 외면받은 것이 패배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죠.
부동산 정책 중 신혼부부 청약제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둘 중 어떤 것 사람이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한정된 서울 아파트 신혼부부 특공을 받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되십니까?
1. 본인은 백수이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현금자산이 5억 있는 A
2. 부부가 열심히 노력해 대기업을 취직했고 양가부모는 흙수저라 물려받은 현금자산이 전혀 없는 B
직관적으로 A보다는 B가 신혼부부 특공을 받는 것이 공정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부동산 청약제도 하에서는 B는 부부합산 소득이 초과하여 신혼부부 특공을 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고 설령 특공 요건에 해당되어 당첨이 되어도 40% LTV한도로 분양대금을 치르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토부가 이번 보궐선거를 앞두고 21.2.2 개정하기 전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종전에는 3인가구 기준 신혼부부 특공소득 기준이 맞벌이 가구의 경우 월 722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2019년 국내 500대기업 평균연봉은 7,920만원으로 대기업을 다니는 흙수저 맞벌이 부부의 소득은 이미 1.58억으로 신혼부부 특공기준을 넘어서게 됩니다.
21.2.2 개정에 따라 신혼부부 특공기준이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 160%인 월 888만원으로 다소 완화가 되었으나, 여전히 여전히 해당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운좋게 특공요건에 해당되어 당첨되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올해 3월 서울에서 분양된 고덕강일 제일풍경채 아파트의 전용 84제곱미터 분양가는 8억3~9천만원인데, 옵션을 포함하면 8억 중후반대라고 보는게 맞을 것입니다.
이 중 LTV는 40%만 적용되니 5억 조금 넘는 자기자금이 있어야 입주가 가능합니다.
(분양가 + 옵션 8억 7천 가정, LTV 40%를 제외한 금액 5.2억)
더욱이 최근의 서울 아파트는 실거주의무가 부여되어 예전처럼 전세를 주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결국 맞벌이로 연봉 1억을 버는 B 부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게 없어 5.2~5.5억을 오로지 자신들의 힘으로 모아야 하는데 기본적인 생활비와 아기 양육비가 필요함을 고려하면 청약을 받아도 자금마련할 길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본인들은 무직인 A 신혼부부는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5억 넘는 돈으로 여유있게 잔금을 치르며 신혼부부 특공 아파트를 받아갑니다.
이것이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실수도 한 두 번이어야 실수이지 세 번, 네 번 거듭된 실수는 고의이거나 실력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부모의 능력과 무관하게 본인이 노력해 일정한 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 집을 살 엄두도 못 내게 만들어 놓은 정책이 공정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 사실 디테일도 아닙니다.
정말로 이런 점을 몰랐다면 현실감각이 지극히 결여된 상류층들의 닫힌 세계에서 살았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설계한 정책에 따라 일어날 현상을 한 번 시뮬레이션 돌려보지도 않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안됩니다.
부동산 예시가 좀 길어졌습니다만..
결론적으로 저는 명분이 이제 어느 정도 충족된 상황에서 중도층의 시대정신이 실리쪽으로 기울어가는 상황에서, 본인들이 내세운 공정함 마저도 제대로 된 공정이 아니었기에 이번 선거는 여당이 이길래야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거가 시사하는 것은 이제 1년 남은 대선에서도 시대정신을 제대로 짚어내고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서 중도층을 잡지 않으면 여당이건 야당이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점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제 생각이 짧은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과 생각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