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변화, 상대방의 변화, 조직의 변하, 국가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간단합니다.
동참하면 됩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설득이란 것은 상대방의 동의를 이끌어내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은연중에 "동의"만 한다면 기꺼이 상대방이 "동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의는 하지만 동참은 못하겠다."는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흡연자 가운데서 흡연의 위험성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음주운전자 가운데서도 음주운전이 나쁘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한국 교육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문제는 "동의하지만 그 문제는 다른 사람들, 사회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또는 "나는 잘 하고 있고 고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바로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변화되어야 하고 동참이 필요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간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동의만 이끌어낸다면 동참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동참을 이끌어내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지만 확률이 낮고 오래 걸리는 방법과 다소간의 부작용을 감수하되 일정한 성과를 빠르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자의 가장 좋은 예는 예수님입니다.
독생자로서 이 땅에 내려와 스스로를 희생하며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불교를 믿는 분이라면 부처님이 그런 분이고, 천주교를 믿는 분이라면 테레사 수녀를 비롯한 많은 성인들이 그런 분들입니다.
문제는 이 분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그 숫자는 아쉽게도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의 진전이란 것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음으로써 촉발되고 더욱 강화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성미급한 사람에게는 너무 느린 것이 사실입니다.
후자의 좋은 예는 정책입니다.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특정한 행동에 이익을 부여하거나 반대로 불이익을 부여하며 반강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고자 합니다.
다만 이 방법은 주의해서 잘 쓰지 않으면 로베스피에르의 우유값이 재현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주나 담배를 1병/1갑에 10만원으로 올려버리면 일시적으로는 수요가 억제될 수 있지만, 술과 담배는 수백년, 천년 넘게 이어진 인류의 문화임을 감안할 때 미국의 금주법과 같이 갖은 방법으로 더 저렴한 가격의 담배와 소주를 만들어 먹을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두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본을 보이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마치 스스로가 결정한 것처럼 팔꿈치로 툭 치는 넛지를 활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동의를 넘어서서 동참을 이끌어내면 낼수록 우리 사회가 아주 조금씩이나마 더 발전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