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은 곰곰히 생각해보면 의외로 100%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적습니다.
가장 먼저 태어난 시대, 태어난 국가, 태어난 부모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이 3가지는 사람의 삶의 하한과 상한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임에도 말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교우관계, 직장, 진로 등도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로 내가 100% 결정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A랑은 사실 좀 어색하고 데면데면한데 B가 내 절친이고 A와 B가 절친이라 어쩔 수 없이 A와도 계속 봐야할 수도 있고,
다른 직장으로 옮기고 싶지만 제안도 없고 이직시도도 실패하고 나이도 차버려서 그냥 다니는 경우,
사실 나의 재능은 예체능에 있었는데 어릴 때 예체능을 접해볼 기회 자체가 없었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 상대만큼은 다릅니다.
물론 결혼상대를 만날 수 있는 곳, 가능성 등은 앞서 말한 여러가지 상황에 좌우되는 경향이 매우 큽니다.
그렇지만 다른 곳, 다른 영역에서 결혼상대를 찾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고,
무엇보다도 누군가와 결혼할 것인지는 기본적으로 100% 나의 의사에 달린 것입니다.
그런 결혼상대와 다른것은 몰라도 최소한 철학은 같아야 합니다.
철학이 다른 사람과는 살기 어렵습니다.
취향이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이런 것들은 다 조절하고 양해가 가능합니다.
저 조절이나 양해가 안 되는 경우 곰곰히 생각해보시면 철학의 차이로 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성격차로 이혼한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그 성격차도 궁극적으로는 철학의 차이일 가능성이 큽니다.
철학을 아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아주 사소한 평소의 행동을 보면 됩니다.
배달 온 라이더에게 쓰레기봉투를 쥐어주며 내려갈 때 버려달라고 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 황당함을 느끼는 사람이 평생 같이 잘 살 수 있을까요?
옳고 그름을 떠나 적어도 부부간의 평화를 위해서는 한 쪽이 쓰레기를 버려달라고 할 때, 다른 쪽이 “잘했다!”고 칭찬하는 사람이어야 방생하지 않고 서로 백년해로 할 것입니다.
직장은 돈을 번다는 1차적인 목표, 대의명분이 있기에 어떻게든 서로 맞춰가면서 다닐 수 있지만(사실 그마저도 일정한 선을 넘으면 어렵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모든 이해관계를 같이 하고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는 부부간은 정말 아닙니다.
철학이 맞아야 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조건 보십시오.
조건 보지 말라는 사람은 이미 모든 조건이 갖춰졌거나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다만, 조건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음도 명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