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을 전망함에 있어서는 - 모든 시장전망이 그렇겠지만 - 시장, 대내외경제환경 등의 거시조건과 실제 구매를 결정하고 거기서 살아가는 개인의 선택이란 미시조건을 모두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느 한 쪽만을 보고 하는 예측은 확률 반반의 동전던지기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 거시조건과 미시조건 모두를 관통하는 숨겨진 전제가 있습니다.
이 부분부터 명확히 하면서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브랜드 신발, 레어한 장난감, 명품, 금, 주식, 부동산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바로 "내가 산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타인에게 넘길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이 세제, 음식, 자동차와 같은 소비성 내구제 또는 감가상각되는 자산과 부동산을 구분지어주는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니 자동차는 클래식카가 되면 오히려 가치가 오를 수 있긴 하겠네요. 다만 부동산은 그간 오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부동산이 올랐으나 자동차는 클래식카가 될 가능성이 낮다는 게 차이겠네요)
부동산이 차익을 볼 수 있는 자산이라는 말은 공급과 수요 양 쪽 모두에 똑같은 행동원리를 제공합니다.
"X년 뒤에 내가 산 아파트를(내가 산 땅으로) 더 비싼 가격에 팔 수(분양할 수) 있을까?"
이 대답에 Yes가 나오는 순간 매수자, 공급자(시행사와 건설사)는 일단 준비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매수자와 건설사가 한 편이고 매도자와 시행사가 한 편이 됩니다.
향후 몇 년간 부동산 시장에서 재미(산 가격보다 비싼 가격 받기, 분양성공률)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면 매수자는 매수를 하지 않을 것이고, 건설사는 재건축/재개발 입찰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분양을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이미 주택을 보유한 매도자와 땅을 구입해서 사업을 진행하는 사업자는 기본적으로 매도를 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최근 노른자 땅이라 불리는 입지의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시공사 입찰에서 번번히 실패하는 현상이나, 20년 157만건의 전국 아파트 거래량이 23년 73.6만건(부동산정보원 통계 기준)으로 반토막 난 것, 최근 서울 아파트 매물량이 83,000건으로 확연한 증가추세에 있는 것 등이 모두 이를 뒷받침합니다.
본론을 전개하기 위한 마지막 전제로, "아파트는 심리에 영향을 받는 대표적 자산"입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말이지만, 2021년 이전에 우리나라에 "영끌", "벼락거지"란 말은 없었습니다.
네이버 뉴스검색에서 1990.1.1부터 2017.12.31.까지 영끌이란 단어로 기사검색을 하면 단 두 건이 나오는데, 이 때의 영끌 지금 우리가 흔히 아는 영끌이 아닌 '영혼까지 끌어모은 연봉'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2975336?sid=102)
그러던 것이 2018년에는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영혼까지 끌어모은 연봉'이 혼재해서 사용되다가, 2019년부터는 우리가 아는 대출의 의미로 고착화되어 가는 것이 보여집니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의 원인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영끌"을 막지 못한데 있습니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소위 영끌 현상이 나타나게 한 근본적인 이론, 전망들이 틀렸다는 것을 제대로 된 정책이나 근거로 파훼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심리로 인한 실수요와 투기수요 모두를 자극한 것"입니다.
지금은 영끌5적이라고 하여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유명 부동산 유튜버들이 그 당시 한 말은 돌이켜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공급부족론인데 당시 유튜버나 부동산 카페의 주장은 "향후 5~10년간의 지속적인 공급대책이 안 보이므로 부동산 가격은 무조건 오른다"였는데 정부는 이를 단순히 "지금 당장 2~3년의 공급물량이 충분한데 무슨 공급부족이냐?"라고만 뻗대다 골든타임을 모두 놓치고 정권말기에 부랴부랴 3기 신도시 대책을 내놓았으나 만시지탄이었던 것이죠.
거기다 대출규제 정책을 쓰면서 그놈의 역풍 타령하면서 헛점을 많이 만들어놓아 공포감만 잔뜩 불러일으켰고 청약가점제 100%는 저 같은 당시 2030 청년들에게 구축아파트 구매에 내몰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으며 임대사업자 혜택은 말도 안되게 주면서 법인을 통한 부동산 투기를 장려하는, 정리하고 보면 정권을 잃을 짓을 스스로 했을뿐더러 2030이 민주당에 뿌리깊은 적개심과 분노를 가지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듭니다.
어쩌다보니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가 되고 말았는데, 그래서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공급은 줄이고 수요만 억누르려다 결과적으로 부동산 수요를 폭발적으로 자극시키고 만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 부동산에 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는 멍청하고 무능한 정권이었습니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제부터 본론입니다.
수요가 확실하면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법을 찾아내고, 기어코 거래를 한다는 점을 문재인 정부는 아주 잘 입중해주었습니다.
사람은 결국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적 동물이기에, "이게 돈이 된다!"라는 확신만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다투어 달려듭니다.
설령 이율이 10%여도, 1년 뒤에 20%, 30%먹을 확신이 있으면 그까짓 10% 이자가 무슨 대수겠습니까?
거대한 수요 앞에 공급량은 상승폭을 더 높이거나 좀 낮추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부동산 시장의 수요는 어떻습니까?
유튜버들이나 부동산시장에 이해관계를 가진 것 아닌지 생각되는 방송패널들의 말이 아닌 객관적 자료로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0년 우리나라 전국 아파트 거래량은 한국부동산원 통계 기준 776,137건이었습니다.
그 후 13년간 무려 3,784,886호의 아파트 입주물량(KB부동산 통계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23년 우리나라 전국 아파트 거래량은 736,843건으로 378만호가 추가되기 이전인 2010년보다 오히려 적었습니다.
한 가지 추가적으로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2010년이면 2008년 리먼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도 꺽인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최근 흥미로운 데이터가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60대 이상 고령층의 10년 이상 장기보유 아파트 매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14640
반면에 영끌, 2030들은 물건을 던지고 있습니다.
https://www.seoulfn.com/news/articleView.html?idxno=501132
https://www.mk.co.kr/news/realestate/10945180
부동산 수요가 확실하다고 믿는다면 사람들이 부동산을 내놓을 이유가 없습니다.
고금리?
말씀드린 것처럼 10% 이자를 물더라도 20%, 30%가 확실히 번다면 저라도 그걸 왜 팝니까?
투잡, 쓰리잡, 배달, 대리기사 무슨 짓을 해서라도 버틸겁니다.
부동산 수요라고 쓰고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내가 산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사줄 누군가"가 적어도 2~3년 내에는 없을 것 같다고 느낀 것입니다.
IMF가 대한민국 외자개방, 낮은 외채금리의 갑작스런 상승, 미국의 양털깍이 등 모든 장작이 차곡차곡 쌓이다가 한 번에 불이 붙어서 터진 것처럼 지금 우리는 이미 수많은 장작을 쌓아두고 있습니다.
회색 코뿔소가 이미 눈 앞까지 와있는데도 우리는 지금 당장 코뿔소가 우리 집 안으로는 안 들어왔다면서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4599944?sid=10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9/0002861562?sid=10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4544890?sid=10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285999?sid=10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552045?sid=10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793881?sid=10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9/0002864904?sid=101
지금까지 정부는 모든 것을 일단 총선때까지 버티자는 전략을 쓰고 있었습니다.
내놓는 여러 정책이 그런 의심을 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4월 10일 총선에서 과반에도 실패하고 심지어 개헌선을 내주면 어떻게 될까요?
일종의 권력공백 상태가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각종 경제현안들을 속도감 있고 과감하게 처리해나갈 수 있을까요?
4월 10일 이후 대한민국 부동산은 그간 회색코뿔소라며 애써 외면했던 눈 앞의 문제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시작이 환율이 될지, 금리인하 시점이 대폭 늦어지는 것이 될지, 태영건설 워크아웃 실패가 될지는 제가 점쟁이가 아닌 이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구조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구조적으로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진리입니다.
IMF가 어땠는지를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환난 1주일 전까지도 대한민국 경제,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는 말을 우리는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1950년 6월 28일 수도 서울을 지키겠다는 라디오 방송처럼 말이죠.
혼돈의 시대, 국가가 우리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자신을 책임져야 합니다.
저도 그렇고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생존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