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일을 당연하게 처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파견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파견자들은 소속기관에 대한 민원대응도 담당하는데, 저희 회사 관련 대출을 아들이 이용중이시라는 아버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대학등록금으로 준비해둔 돈을 잘못하여 대출 상환계좌로 입금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전화를 하여 이번달 원리금만 입금하면 되는데 실수로 전액변제를 한 것이니 돌려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거절당했다면서 도와달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법리적으로는 채무자가 스스로 기한의 이익을 포기하고 전액변제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어 그 돈을 돌려드리지 않는다고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채권자는 당연히 법적으로 상환을 받고 요청할 수 있는 법적지위를 갖고 있기에 부당이득으로도 볼 수 없고,
본인이 공인인증서를 통해 전자서명을 하여 은행에 입금의뢰를 하여 제대로 입금된 이상 착오취소를 주장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소송의 결과는 누구도 예단할 수는 없고 기한이익 포기의 이유가 없음을 잘 소명해서 소송전 끝에 승소해 돌려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우 대학 등록금 납부일은 훌쩍 넘기게 되겠죠.
저는 이것은 돌려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회사의 대출을 이용하시는 분들 대다수는 형편이 넉넉치 않은 분들입니다.
이미 대학등록금 상당의 적지 않은 돈을 입금한 상황에서 장난치는 것도 아닐 것이고 정말로 아드님께서 실수한 것일 확률이 높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속한 곳은 영리를 우선 추구하는 일반 금융기관이 아니었습니다.
곧바로 회사에 전화를 걸어 관련내용을 전달하며 돌려드리도록 조치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주관부서에서도 저와 같은 뜻이었고 해당 법인에 잘 얘기해서 전화를 받고 1시간만에 다시 이번달 원리금을 제외하고 돌려드렸습니다.
민원을 주신 아버님께서는 다시금 전화를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이름을 계속 물어보셨지만 한사코 알려드리기를 거부했습니다.
그 돈을 돌려드리는 결정을 한 것은 해당 법인이고 이를 설득한 저희 회사이지 제가 아니며, 무엇보다 저는 회사 소속 직원이자 해당 부처의 파견직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출근길에 뉴스를 듣다가 왜 그 때 민원을 주신 아버님께서 그렇게나 제게 고맙다고 하셨는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에 속한다면, 당연한 일에도 특별함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닐까요?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2&aid=0001599832
절박하고 몰려있는 분들을 상대하는 것은 분명히 피곤하고 어려운 일이며 그 중에는 명백한 진상민원인, 악성민원인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만 더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영화 1987을 보면 내 자리에서 내가 맡은 일을 당연하게 처리한 한 명, 한 명의 나비효과가 어떤지를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이런저런 생각을 한 번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