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 청년정책비서관 선임을 둘러싼 논쟁에 대한 소고
청와대 박성민 청년비서관 임명을 두고 논란이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는 한 마디로 청와대가 '맥락'을 읽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 생각합니다.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재판이나 학문적 진리를 다투는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정치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 청와대의 대응은 낙제점 수준입니다.
이대로라면 올해 4월 보궐선거 패배에 이어 내년 대선까지도 내줄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 문제인지 제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여도지죄(餘桃之罪)
한비자 세난편에 나오는 고사로서 똑같은 행위가 전혀 다르게 평가되는 것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
위나라 영공의 총애를 받고 있는 미자하라는 미소년이 있었습니다.
미자하가 위나라 영공의 총애를 받고 있던 때, 미자하가 본인이 먹던 복숭아 반쪽을 영공에게 주었습니다.
영공은 "미자하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그 좋은 맛을 잊고 나를 주는구나."라고 하며 좋아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영공의 마음이 미자하에게서 떠났을 때, 미자하가 똑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자 영공은 "이 자는 전에도 나에게 먹던 복숭아를 주었다."며 벌을 주었다고 합니다.
만약 정권 출범초에 박성민 비서관이 똑같이 청년비서관에 임명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공정 프레임, 2030 남성들의 반발이 있었을까요?
없었을 거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지금 같은 반발과 논란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란 것만은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만 하더라도 2030 남성들의 역차별에 대한 인식이 광범위하게는 형성되지 않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는 반복해서 '수용할 지적도 있으나, 의도를 가지고 하는 공세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로 의도된 것이냐, 의도되지 않은 것이냐를 따지기 전에, (설령 그것이 정말로 조직되고 의도된 공격이라도) 여론이 동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청와대는 정치행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왜 사람들이 동조하는가?"를 먼저 고민해야 하고 그 답을 '맥락'에서 찾아야 합니다.
최근 이철희 정무수석의 여러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습니다.
"남녀공동 청년비서관제를 고민했으나 남자 쪽은 찾지 못했다."
"1급 공무원 처우이기는 하나 정무직이라 길어도 대통령 임기까지다."
"청년 문제는 청년들이 잘 안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누구 찬스로 온 사람이 아니다."
내용만 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맥락'이란 면에서는 완전히 잘못 짚은 메세지 발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남녀공동 청년비서관제란 발상에서 이미 맥락을 놓치고 있는 것이 드러납니다.
반대로 정부, 청와대에 질문드립니다.
남녀공동 정무수석이 있었거나 검토하신 적이 있는지요?
꼭 정무수석이 아니더라도 청와대 수석이나 비서관, 정부 장차관이나 대통령, 총리를 남녀공동으로 두거나 두려 한 적이 있습니까?
"청년비서관을 남녀공동으로 두려고 했다."는 말에서 이미 기계적 배분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의심을 받게 됩니다.
2030 계층(저같은 40대 초반도 포함해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기계적 공정이 아닙니다.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태어난 세대는 뒤로 가면 갈수록 확실한 민주화 교육을 받았고 본인들의 삶에서 알게 모르게 그런 것을 체험했습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나온 결과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같은 2030 내에서도 배척을 받으면 받았지, 절대 주류 의견으로 채택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청년비서관에 걸맞는 자질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이 부분을 청와대는 있다고 판단한 것이고 이 점은 정무수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결과로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언급할 이력과 함께 "남녀공동 청년비서관" 언급을 통해 "정말로 자질로 뽑은 게 맞느냐?"란 논란을 스스로 초래했다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남자는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는 워딩에서 원래도 물어졌을 "박비서관이 그 자리에 적합한가?"란 질문이 더욱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청년을 대변하는데 어떤 자격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 특히 청년층이 보기에 '이 사람이라면 우리를 대변할 수 있겠다'고 납득할 수 있는가?입니다.
박성민 청년비서관의 이력을 찾아보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운영위원 (2018)
용인시 청년정책위원회 공동위원장 (2019)
더불어민주당 청년대변인 (2019)
여성가족부 청년참여 플랫폼 정책추진단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2020)
더불어민주당 청년미래연석회의 공동의장 (2020)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위원회 공천위원 (2020)
더불어민주당 청년TF 단장 (2020)
나이를 문제 삼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나이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똑같은 25살이라도 성년이 되자마자 창업을 하거나 직장생활을 거친 25살과 대학을 다니고 정당활동을 한 25살의 경험과 현실인식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박비서관님 이력을 보며 '이 분이 과연 나를, 청년세대를 대변할 수 있을까?'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왜냐하면 이 의문은 현재 586세대가 받고 있는 비판과도 결이 닿는 부분이 있을 텐데, 현실을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박비서관님 이력상 2018년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운영위원을 시작으로 줄곧 정치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아르바이트를 해보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청년으로서 취준생, 신입사원, 자영업 등 현실 경제와 사회를 경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 같습니다.
내가 직접 그 과정을 경험하지도 못했고, 내 주변 사람들이 평범한 취준생, 청년 신입사원, 자영업자도 아닌 상황에서 과연 청년층의 어려움을 얼마나 잘 대변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죠.
무엇보다 지난 4년간의 민주당 청년정책이 선거를 통해 2030, 특히 남성들에게 따끔한 회초리를 맞았다면 이에 대한 대안이 되는 사람이 발탁되어야 할 것입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 18~29세 남성 72.5%가 오세훈 후보에 투표했습니다.
당연히 이 결과를 박비서관님이 혼자 책임질 것은 아니지만 맡은 직책과 활동내역을 볼 때, 이 결과와 전혀 무관한지도 의문입니다.
공정이란 단어 자체는 변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공정한가는 시대의 발전과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를 읽어내지 못하는 정치세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국가를 위해 좋은 판단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박성민 청년비서관님께서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잘 전달해주셔서 저를 비롯한 일각의 우려는 기우였음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