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회사는 하위직이 상위직을 평가합니다.
팀원은 팀장, 부장을 평가하고, 팀장은 부장을, 부장은 본부장을 평가합니다.
이를 다면평가라고 하는데, 다면평가 등급은 그 자체로 인사평가 점수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승진자를 결정하는 인사위원회, 인사이동 시 참고자료로 활용되어 사실상의 인사평가라 봐도 무방합니다.
팀장이 된 첫해인 재작년 저의 다면평가 성적은 C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다면평가 결과가 어제 나왔는데 A를 받았습니다.
1년 사이에 제가 다른 사람이 된걸까요?
아니면 짧은 기간동안 갑자기 없던 리더십이 생긴걸까요?
그럴리 없습니다.
물론 첫 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두번째 해인 작년이 조금 더 나아졌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C가 A로 바뀔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달라진 것은 주변환경입니다.
C를 받았던 때는 초미니팀의 팀장이었고, A를 받은 작년은 2개 팀의 팀장을 겸직함으로써 49명의 팀원을 관리하였습니다.
저희 회사 같이 크지 않은 곳에서는 일개 본부에 맞먹는 인원을 관리하는 셈이었습니다.
업무 자체도 법률지식이 베이스가 되어야 했기에 첫 해보다는 좀 더 저에게 잘 맞는 면도 있었습니다.
마침 새로 시행된 규제법(금융회사들 입장에서는)에 대한 이슈에 대응하는 등, C를 받았던 해와 달리 작년은저의 역량을 보여줄 기회가 상대적으로 더 많았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팀원이 단 둘밖에 없는 경우, 다면평가를 잘 받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 둘의 비위(?)를 잘 맞춰주면 됩니다.
만약 그 둘에게 어떤 이유로든 밉보이게 되면, 실제 저의 업무역량, 성과와 무관하게 천하에 나쁜 놈이 되어있고 상종못할 사람이 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또한 맡은 팀의 업무가 대내외적으로 잘 알려지고, 성과도 측정가능하거나 외부로 잘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 팀장의 평가는 더더욱 세평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생깁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이렇게저렇게 얘기하는 것에 과도하게 반응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이고 그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괴로운 상황인지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단지 내가 그 사람들과 맞지 않아서 또는 해당 업무와 내가 잘 맞지 않을뿐, 나에게는 별다른 특별한 문제점이 없을수도 있습니다.
그 상황을 마냥 참으라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우선은 스스로의 멘탈을 다잡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만큼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구제불능인가?' 그런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하면 마음이 망가지고 꺽이게 되어 최악의 상황까지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서 여러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나면, 그 다음에 길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면담을 통해 부서이동이나 직무변경을 요청해도 되고, 휴직을 낼 수 있는 직장환경이면 휴직도 옵션이 될 수 있고, 이직도 선택지가 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법을 활용하는 길도 있습니다.
첫번째에서도 보여지듯 회사에서 살아남는 길은 둘 중 하나인거 같습니다.
사내정치를 확실하게 잘 해서 내 편을 많이 만들고 라인까지도 탈 수 있으면 출세는 둘째치고 최소한 정리해고 리스트 상단에 올라가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확실한 실적이 있으면 더더욱 좋습니다.
그러나 설령 두 가지 중 하나를 확실하게 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사내정치를 아무리 확실하게 하더라도 내가 탄 라인이 줄이 끊어지면 나도 함께 썰려나가는 것이고, 회사에 심각한 위기가 닥쳐서 내가 속한 사내정치그룹 내에서도 누군가 희생시켜야 할 때, 내가 그 안에서 실력이 제일 딸린다면 내가 우선적으로 썰려나갈 것입니다.
또 실력이나 실적이 너무 훌륭해서 회사를 먹여살린 수준이라 해도 결코 안심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을 좀 하시는 분들은 한 번쯤은 봤을 짤인데, 과거 초고속인터넷망 설치에 혁혁한 공을 세운 직원이 나중에는 전봇대 세는 업무를 받아 사실상 나가라는 강요를 받고 있는 상황을 찍은 다큐입니다.
https://www.koreapas.com/m/view.php?id=gofun&no=53928#_enliple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것이 나에 대한 악의적 모함이 들어오고 소위 작업(?)이 들어올 때, 내 입장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의 사내정치 - 이것을 저는 방어적 사내정치라 부릅니다 - 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방어적 사내정치가 되는 가운데, 소정의 실력을 갖추는 것이 회사에서 나를 안전하게 지켜나가면서도 조금은 더러운 꼴을 덜 볼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의도하여 방어적 사내정치를 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설립 초기에 입사했기에 지금은 본부장, 부장으로 나간 분들과 일을 같이 했고, 친하게 지냈던 동료나 선배들이 인사실, 감사실에도 있고 해서 저에 대한 악의적 소문이 돌더라도 일정한 필터역할을 해줄 수 있었습니다.
또 제가 제대로 업무를 한 부분에 대해서도 늦을지언정 그 부분이 회사에서 제대로 평가되고 알게 되는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쓴 글처럼 이번에 또 인사발령을 받아 이번에는 10명 정도 되는 부서의 2개 팀의 겸직팀장으로 갑니다.
지난 2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소한 월급도둑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땅의 모든 직장인들을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