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하반기부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https://biz.newdaily.co.kr/site/data/html/2025/08/17/2025081700013.html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재명 정부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추진에 반대합니다.
더 정확히는 이게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해가 없도록 말씀드리자면, 저는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차별을 철폐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것과 노동현장을 망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입니다.
이 정책이 실패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한 마디로 "좋아질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일 먼저 저는 기준 자체를 설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던지는 몇 가지 질문만 봐도 금방 감을 잡으실 것입니다.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는 1년차와 5년차, 10년차의 임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A급 직무 1년차와 C급 직무 10년차의 임금격차는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순수하게 특정 직무만을 수행하는 근로자가 정말로 존재하는가?"
ㅇ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는 1년차와 5년차, 10년차의 임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직무급은 언뜻 보면 타당해보입니다.
직관적으로 의사와 간호사, 행정직원 사이의 병원 매출의 기여도는 차이가 있는 것이 납득이 갑니다.
그러면 같은 의사끼리는 어떻습니까?
1년차 의사와 5년차 의사, 10년차 의사가 같은 직무를 하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합니까?
같은 직무 내에서도 난이도를 두면 될까요?
1년차 의사는 진찰만 하고 5년차는 간단한 수술을 하고 10년차는 복잡한 수술을 해서 차등을 두면 일응 문제는 해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연차가 쌓여 더 중요한 직무를 맡기고 급여를 더 주는 현재와 무엇이 다를까요?
ㅇ "A급 직무 1년차와 C급 직무 10년차의 임금격차는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아무리 병원의 핵심적인 자원이 의사라고 하더라도 이제 막 들어온 1년차 의사와 10년차 수간호사의 병원에 대한 기여도가 정말로 다를까요?
직무급은 소위 노하우, 경험이 쌓인 베테랑에 대한 대우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문제가 됩니다.
사람들은 1년차 의사가 같은 1년차 간호사나 3년차 간호사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것에는 큰 저항감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과연 10년차 간호사, 20년차 간호사보다 돈을 더 받는 것에도 저항감이 없을까요?
ㅇ "순수하게 특정 직무만을 수행하는 근로자가 정말로 존재하는가?"
장담하건데 회사에서는 순수하게 특정 직무만을 수행하는 근로자란 없습니다.
그게 변호사, 홍보 담당 같이 명백히 특정 직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내부의 행정업무, 회의참석, 보고서 작성 등은 어느 직무를 막론하고 있게 마련이고 비중의 차이일 뿐, 완전히 특정 직무만을 수행하는 사람은 조직 내에서는 없습니다.
물론 주된 직무란 것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주된 직무 외의 부수업무를 어떻게 구분짓고 평가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ㅇ 예상반론 : "직무급이란 게 그 직무에 맞는 급여를 준다는 것인데, 숙련도, 연차를 왜 고려하냐?"
일응 맞는 말입니다.
근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죠.
회사가 현실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급여는 당연히 제한되어 있는 것은 맞지만, 어떤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퇴사할 때 까지 물가인상분 정도의 급여상승밖에 기대할 게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다수 직원이 업무에 집중하기 보다 틈만 나면 이직사이트를 뒤지고 있게 될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직무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주는 회사로 미련없이 옮기는 것이죠.
이처럼 구체적인 기준설정으로 들어가면 온갖 부작용이 속출하고 분열이 초래되는 점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미국은 JD(Job Description) 중심의 채용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JD는 채용하려는 특정 직무의 역할, 책임, 요구되는 기술 및 자격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문서로,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정확하게 찾고, 지원자는 자신의 역량이 직무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미국의 대부분의 주에서는 '수시 고용(At-will employment)' 원칙을 따릅니다.
이는 고용주와 피고용인 모두 특별한 사유나 사전 통보 없이 언제든 고용 관계를 종료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어디서 많이 보신 것 같지 않나요?
직무급제는 쉬운 해고와 셋트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홍보업무를 하라고 3명을 뽑았는데 홍보예산이 줄었는데 3명을 유지해야 할까요?
극단적으로 모든 홍보업무를 외주로 돌린다면? 관리할 1명만 남아있으면 되지 않나요?
이것이 직무급제를 반대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직무급제가 도입된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A등급, B등급, C등급이 있는데 각 등급별 직무 모두 고충이 발생합니다.
ㅇ A등급 - 고립된 외딴 섬
A등급은 상시적인 B등급과 C등급의 시기, 질투 또는 냉담한 태도를 마주하게 됩니다.
보통 A등급은 어느 기업이든 핵심업무일텐데 조직을 이뤄 일하는 이상 아무리 핵심업무라 하더라도 지원부서, 현장과 원활한 협조 없이는 제대로 된 기획이 나올 수 없습니다.
물론 A등급끼리는 뭉치고 회사로부터 우대도 받아서 좋겠지만 고립된 외딴섬은 피할 수 없습니다.
ㅇ B등급 - 학습된 무기력
B등급은 아무 의욕이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해봐야 A등급도 아니고 그래도 내 밑에 C등급이 있으니 C등급을 보며 위안을 얻고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데만 집중합니다.
딱 주어진 일, 받는 월급만큼만 일하고 더 열심히하거나 뭘 개선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이직할 생각도 없습니다.
ㅇ C등급 - 언제든 탈주하거나 반란을 일으킬 준비 완료
C등급은 아무리 노력해도 대우받거나 인정받을 가능성이 처음부터 0에 수렴합니다.
직무급 도입 처음에는 과거의 관습이 남아있겠지만 얼마 지나면 C등급은 구조적인 차별을 받게 될 겁니다.
이제 C등급은 회사에 남는다면 사소한 복수 - 탕비실 과자 다 먹어치우기 등 -를 하거나 기회만 되면 조금이라도 급여를 더 주는 곳으로 언제든지 이직할 마음이 있고 또 준비도 합니다.
장기적인 회사의 발전, 비전 같은 것은 원래도 허무한 소리였지만 직무급 도입 후 C등급에게는 더더욱 남의 일이 됩니다.
경쟁업체가 은밀한 나쁜 거래를 제안하더라도 큰 도덕적 죄책감 없이 응할 위험성도 높습니다.
ㅇ 협업은 종말
B등급, C등급은 A등급의 말을 - 겉으로는 몰라도 - 아니꼽게 듣고 절대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습니다.
협력해봐야 어차피 공은 모두 A등급이 가져가는데 B, C등급인 내가 왜 협력해야 할까요?
이미 등급제가 매겨진 상황에서 급여를 획기적으로 올려줄 것도 아니고 사내 대우를 개선해줄 수도 없으니 회사 입장에서도 B등급, C등급을 움직일 수단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회사 내에 협업이란 것은 종말되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여기까지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눈치 채셨겠지만, 제 논의는 주로 일반사무직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저는 무조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반대하거나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반대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생산직의 경우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생산기계를 돌리고 똑같은 결과물을 창출하는데 단지 신분이 정규직,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급여와 복지, 업무상 안전성이 현격히 차이난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부당합니다.
다만, 일반 사무직의 경우와 생산직은 반드시 같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사무지에도 파견을 폭넓게 인정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 파견법은 원칙적으로 사무직의 파견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계약직으로 사무직을 쓰는 경우에도 기획업무와 같은 각 회사의 중요한 업무분야를 그대로 게약직과 같은 비정규직에게 맡기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낮을 것입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도입하더라도 도입이 가능한 분야에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전면적인 도입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