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신용사면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먼저 이번 신용사면 내용이 어떤 것인지부터 확인해봐야겠죠?
정부의 이번 신용사면 정책은 2020년 1월~2025년 6월 사이 5천만 원 이하 빚을 연체했다가 올해 말까지 전액 상환한 개인·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연체 이력을 삭제해주는 제도입니다. 이를 통해 신용점수를 높이고, 대출 금리·한도에서의 불이익을 줄여주겠다는 취지입니다
https://www.chosun.com/economy/stock-finance/2025/08/12/C2VZSRCM7ZCYBJO6K2VBI6CUMI/
그러나 저는 안타깝게도 신용사면 정책이 큰 효과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신용사면 정책은 "신용정보 공유를 제한하면 서민들이 보다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합니다.
연체 이력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 주면 금융기관들이 이들의 과거를 모르게 되고, 그 결과 신용점수가 올라가 대출이 수월해질 것이라는 논리죠.
하지만 이 논리에는 한 가지 중요한 맹점이 있습니다.
만약 신용정보 공유 제한에도 불구하고 여신기관들이 어렵지 않게 신용사면 대상자를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면?
아마 정책효과는 많이 제한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신기관들은 신용사면 대상자를 추정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가능합니다.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특정기간에 갑자기 신용점수가 급상승한 경우
2) 상당한 기간 동안 아무런 새로운 여신기록이 없는 경우
신용점수는 여러 신용정보의 조합으로 산출되지만 연체이력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물론 정확한 정도는 누구도 모릅니다. CB사의 영업비밀이니까요)
그런 연체이력 정보가 더 이상 공유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신용점수가 수십점에서 100점, 경우에 따라서는 200점까지도 올라갑니다.
(올라가는 정도는 개인차가 있어서 일괄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여신기관에서는 신용사면 정책 전 대비 신용사면 정책 시행 이후 갑자기 50점, 100점, 200점 오른 사람을 추려내면 그것만으로 어느 정도는 신용사면 정책의 수혜자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은행 등 여신기관은 대출신청을 받게 되면 동의를 받아 CB사에 개인신용정보를 조회하게 됩니다.
이 때 CB사는 연체 여부, 연체이력 등 연체정보만 회신하는게 아닙니다.
다른 여신기관의 대출, 보증과 관련된 정보까지 회신합니다.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하는 사람이 수 년간 아무런 신규여신 기록이 없을 수 있을까요?
신용대출, 마이너스 통장, 학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전세자금 대출, 주택구입자금 대출 등 관련 기록이 단 하나도 없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은행 등 여신기관은 현재 연체중이거나 연체이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신규 대출이나 보증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도권 금융이라면 어디나 다르지 않습니다.
몇 개월에서 1년 같은 단기간이라면 모르겠지만, "수 년간 아무런 신규 여신기록이 없다는 뜻은, 높은 확률로 그 사람이 연체중이거나 연체이력으로 인해 신규 여신을 받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분들이 CB사 점수가 높으면 은행들이 무조건 대출을 내준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은행 등 모든 금융기관은 반드시 자기들만의 심사시스템, 통칭 CSS(Credit Scoring System)를 돌려서 심사를 진행합니다.
이 심사결과가 통과되어야 비로소 대출이나 보증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은행의 CSS와 CB사의 신용정보체계가 전혀 다른 정보에 기반하는 것은 아니므로 대체적으로 고신용자는 대출이 잘 나오고 저신용자는 대출이 잘 안나오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CB사 신용점수와 은행 CSS는 별개이므로, 몇 점 이상이면 무조건 대출이 나온다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하자면, CB점수는 수능으로 은행 CSS는 대학별 본고사, 논술로 이해해주시면 됩니다.
수능점수가 높다고 하더라도 그 대학의 본고사, 논술 점수가 낮으면 입학할 수 없는 것처럼, CB사의 신용점수가 높아도 대출신청한 은행의 CSS를 통과하지 못하면 대출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제가 알기로 은행 심사는 대학과 달리 cb사 신용점수 + 자사 CSS 결과는 합산은 아닙니다)
설명드린 것 외에도 여러 방법으로 은행들은 신용사면 대상자를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경우, 정부의 기본적인 전제가 무너집니다.
신용사면으로 신용점수가 오르는 것은 사실이나, 신용사면을 받은 사람을 금융기관이 구분해낼 수 있다면 정책의 효과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금융기관은 자선기관도 아니고 상환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고객에게 대출을 빌려주어 부실화될 경우 본인들도 파산하고 국가 경제에도 부담이 되므로 무조건 대출을 해주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정부가 이런 것까지 고려하여 신용사면 대상자 여부를 파악하지 말라고 강제하면 어떻게 될까요?
또는 은행들이 스스로 이런 정보확인을 자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정부가 원래 설계한대로 신용사면을 받은 분들의 대출이 더 잘 나오게 될까요?
아마 저는 그렇게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중신용자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용사면 여부 판단을 포기하는 대신, 확실한 고소득자, 고신용자에게만 대출을 내어주면 되니까요.
만에 하나라도 정부가 신용사면 여부를 판단하는 노력을 하지 말라고 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정답은 애매한 신청자는 전부 거르면 됩니다.
이 경우에는 큰 문제없이 돈을 빌릴 수 있었던 중신용자까지 피해를 보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누군가 이런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정부의 정책필요성 자체를 부인할 수 있느냐? 그리고 어디까지나 이 정책은 연말까지 전액상환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5천만원 이하 대출을 전액상환할 정도의 사람이면 사업이건 직장이건 현금흐름도 있고 한데 단지 연체이력 때문에 경제생활 복귀가 늦어지게 하기보다는 빨리 이 사람들을 정상적인 경제, 금융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
먼저 저도 정책의도에 대해서는 100% 공감합니다.
또 이 정책에 수혜를 받을 사람이 없다고 주장할 생각도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정책이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 실무현장에서 일을 해보면, 이런 정부정책이 나왔을 때 사채를 써서 일시적으로 돈을 갚고 새로운 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고려가 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출을 중개하는 브로커는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이들은 정부정책이 나오면 사채업자와 정책대상자들을 연계시키면서 수수료를 떼어갑니다.
그래서 과거에도 정부 대환상품에 대하여 결과적으로 원대출자의 부실여신을 정부와 금융권이 재원을 투입해서 대신 갚아주는 꼴이라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들까지도 모두 고려해서 조금 더 디테일한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정책이 있으면 어떨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