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람마다 하늘의 부르심에 때가 있으니.
마음에 품은 한이 있소.
'아름다움'의 의미를
나 또한 알지 못하고
마음에만 그리고 있는 이 의미를
그대에게 전하는 것.
그대들에게 일깨워 주는 것.
그저, 그것이 내 소원이오.
내가 그 '아름다움'의 의미를
삶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되었으니
그 감동을 전해야 하는 것이
또 다른 삶의 이유가 아니겠소.
하나,
나도 아직 무어라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소.
내 이리 부족하니 그저 미안하오.
이것만이 내 진심이오.
오늘을 변명하자면, 사무실 이사가 있다보니 집에 돌아오자마자 뻗어버리면서 토요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는데요. 구독자도 마땅하지 않고, 그저 취미로 하는 시집에 나름의 변명을 덧붙이는 건 사실 저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입니다.
어른이 되어가고 사회를 겪어가다보면 사람에게 '비합리'와 '부조리'가 얼마나 간단한지 느끼게 됩니다. 아주 작은 사업장이라도 지위와 돈으로 충분히 덮을 수 있는 위치가 되면 나타함은 사소한 버릇에서 쉬워지곤 어린 양심보다 사회적 내공이 쌓일대로 쌓인 마음에는 변명의 기술이 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꼭 지키는 것이 바로 '신앙'인 것 같습니다.
'간혹,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 하나님이란 신을 만든 것이 아니야?'하고 힐문을 제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푹 쉴 수 있는 주말에 굳이 교회를 가서 뻔히 아는 잔소리를 듣고. 일하기도 바빠 죽겠는 시간에 봉사를 하고. 배고파 죽겠는데 식기도 뒤 식사를 하고. 생활비 쓰기도 부족한 돈을 나누어 십일조를 해야하는 종교활동은 사실, 현대인에게 가장 부조리한 행위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남을 돕는 활동을 아무 보상없이 할 수 있으며, 내 신용등급과 자산에 아무 영향도 못 미치는 교회에 바보라서 돈을 갖다바치는 걸까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믿음으로, 왜 종교활동을 하는 걸까요? 각자의 다양한 이유와 사정이 있겠지만
기고만장한 저는 성경을 알고 하나님이 불쌍해서 신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성경66권을 깊이 읽어보면 얼마나 오랜시간 사람을 믿기 위해 그가 노력해왔고,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서 어떤 결심으로 세상과 싸워가는지 구구절절한 사연을 알 수 있게 되는데요?
처음에는 은사님을 통해 교회를 접하고 성경을 배우며 나란 사람은 너무 작고, 신의 소원이 좋은 세상(즉, 유토피아)를 만들고 싶은거라면 그런 신이 있었으면 좋겠단 작은 생각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삶에서 하나님과 소통이 늘어가면서 '진짜 신이 내 마음을 아는건가?'하는 우연이 믿음으로 자라며
시작했던 신앙은 이제는 저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약속같은 행위입니다. 여행갈 수 있었던 주말에 교회를 가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타인을 위해 비용없이 봉사를 하는 것은 사업적 계산에서는 아무 손익이 없는 활동입니다. 그러나 내 안의 기준을 지키는 것은 당장의 수익이 없어보여도 더 나은 사람으로 ‘나’를 지켜줍니다.
제가 시집을 시작한 이유는 여럿있지만, 엄청난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극F인 저에게는 제 생각을 정리하고 감성을 표현하는 활동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도저히 개인의 사고로 이해할 수 없는 타인과 다양한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저는 글이란 수단으로 저의 감정을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표현함으로 감정을 내려놓고 이성적 판단으로 더 성숙한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짓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화가 날 땐 화가 나서 시를 쓰고, 슬플 땐 슬퍼서 시를 쓰고나면 시간지나 다시 읽으며 추억할 때 어린 마음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그 인과(因果)를 예쁘게 돌아보기 좋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개인주의가 강한 시대라지만, 그렇게 예쁜 마음을 쌓다보면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기는 듯 합니다.
그렇게 받은 마음을 또 전하고 싶은 것이, 그 감사함을 미숙하나 보답하고 싶은 것이. AI가 아닌,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도리(道理)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일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때가 많지만,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던 나를 깨우쳐주신 아버지가 계시기에 또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나아가다보면 세상에 더 높은 벽앞에 부족함 밖에 느낄 것이 없는데요? 그래서 저는 팀원들에게 지금의 고난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고, 왜 이 일이 이 세상에서 우리밖에 가지지 못한 기회인지 설명하곤 합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저도 현실에 찌든 탓인지 은사님께 그리 바삐나가면 꿈을 잃는다 한소리 듣곤 자꾸 낭만을 잊어가는 스스로가 한탄스러워 울며 하나님이 밉다고 투정도 부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시는 나는 무슨 꿈으로 살아가고 있나 다시 처음의 열정을 잡아보고자 5년 전 일기장을 훔쳐왔습니다. ㅎㅎ 지금의 수고가 꿈을 시작한 소명(召命)을 잊지말고, 일에 지쳐 자꾸만 나태해지는 신앙을 붙잡기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