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3단계 신화모욕②: 선동·조작수단이라는 모욕
신화에 무지한 것은 차라리 괜찮다. 당신은 어떠한가? 신화를 비웃거나, 얕보거나,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마음은 없는가? 만약 있다면, 그 순간부터 ‘신화혐오/미토헤이트’mytho-hate는 시작된다.
신하비하, 신화혐오, 신화공포— 그 이름이 무엇이든 그 정체는 개찐도찐 정도의 차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부터 당신의 신화혐오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살펴보자.
그 시작은 가벼운 회의주의이다. 이것이 교육과 제도를 통해 고착되면, 왜곡된 집단지향—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억누르며 이기주의와 혼동되는 구조—이 신화적인 상상력을 질식시킨다.
결국, 신화는 문화자원이 아닌 미신으로 몰리며, 공동체의 풍요로운 집단표상으로 성숙해갈 계기를 잃어버린다. 이를 넘어서는 길은 신화풍요의 비판적인 계승, 곧 금송아지로의 귀환이다.
신화를 서사의 첫 언어로 우리가 다시인식할 때, 우리는 왜곡된 집단지향을 넘어 개인의 자율과 공동체 결집력을 조화시킬 수 있다.
이번 연재는 '신화혐오'의 피라미드 구조를 5단계로 나누어 살펴본다. 가벼운 회의주의로부터 전면적인 배척 곧 철폐까지, 국내외 사례들을 비교하며, 왜곡된 신화혐오가 어떻게 신화적인 상상력을 억누르는지, 그 메커니즘을 드러내고, 이를 넘어서는 비전을 제시할 것이다.
앞회차에서 “미성숙하고 열등하다”는 까닭으로 신화를 모욕하는 신화혐오를 우리는 살펴 봤다. 이번에는 신화가 ‘대중을 속이는 선동·조작수단’이란 까닭으로 신화를 모욕하는 경우를 다루어 보자. 이 신화모욕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와 결합해서, 사회적인 상상력과 문화기억을 억압하는 왜곡된 집단주의를 강화한다.
신화는 대중을 속이는 도구일 뿐이다Myth is merely a tool to deceive the masses.
- 루이 알튀세르 Louis Althusser,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인 국가기구』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 (1970)
루이 알튀세르(1918~1990)는 1970년 그의 책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인 국가기구』속에서 신화를 집단기억의 문화자원으로 보지 않고, 지배계급이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활용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장치의 하나로써, 현실의 모순(예: 계급 불평등)을 은폐하고, '호명’interpellation의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기존체제에 순응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점은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비유하며, 현실의 고통을 은폐하는 허위의식이라고 규정했던, 맑스주의적인 종교비판을 신화로 확대적용한 것이다. 그 결과, 이제 신화는 계급불평등을 유지하는 ‘허위의식’ 또는 비합리적인 이데올로기로 간주됐다.
이런 신화모욕의 논리 위에서, 20세기 소련공산주의는 슬라브 신화를 한편으로는,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폄하하면서도, 다른한편으로는, 전쟁시기나 정치캠페인에서 네이션주의적인 선동의 수단으로 이용해, 국민들의 충성심을 유발했다.
이처럼 소련은 공식적으로 무신론을 표방하면서도 신화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활용하는 2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계급해방을 내걸고 사회주의체제의 합리성을 강조했지만, 결국 이런 신화혐오는, 국가통제 아래 문화기억의 다층성을 억압하고 사회적인 상상력이 지닌 공공적인 가치를 축소시켰다.
한국의 경우, 무엇보다 신화는, 취약국가라는 현실 속에서, 북한의 김일성주의 신화에 맞서, 남한정부(이승만·박정희 정권)의 국가정체성을 정당화해주는 건국신화라는 이데올로기 자원으로 동원됐다.
《국민교육헌장》 같은 국가주의 교육에서 '민족의 뿌리' 또는 '민족중흥'의 집단표상으로 단군신화는 남용됐다. 이는 신화를 대중선동도구 또는 체제유지도구로 그 기능을 구속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신화는 '선동용 허구'로 집단표상됐고, 신화의 창조적인 의미(상상력, 공동체 결속)를 둘러싼 사회적인 대화들은 삭제당했고, 문화적인 논의에서 배척됐다. 쉽게말해, 신화는 자유로운 상상력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장치이기를 거부하면 곧 생존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국가자본주의 아래 진행된, 모방추격의 “한강의 기적” 시기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경제글로벌화(세계화·정보화 정책)를 추진하며 전통신화는 비생산적이고 비현실적인 '국제 경쟁력 저해 요소'로 경시됐다. 예컨대, 1993년 '세계화 정책'에서 문화산업육성(예: 한국관광공사 캠페인)이 추진되었지만, 단군신화나 민간설화는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배척되고, 대신 '첨단한국' 이미지가 강조됐다.
교육부의 교과서개편(1990년대 중반) 과정에서도 신화관련내용은 축소됐고, '현대화의 장애물'로 규정됐다. 1997년 IMF 위기 뒤의 '국제경쟁력' 담론에서도 전통신화는 '낡은 문화'로 폄하돼, 국가 브랜딩(예: '코리아' 로고)에서 제외됐다.
써위의 국내외 사례들은, 앞회차의 '미개하고 열등하다'는 오리엔탈리즘적인 프레임이 정치·이데올로기적인 장치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들로써, 신화를 집단주의적인 정치적인 목표에 종속시키는 신화혐오의 지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준다.
이처럼 선동 및 조작 프레임의 신화모욕은 신화를 집단의 정치목표 아래 종속시킨다. 이 구조 속에서 불확실함을 수용하는 사회적인 상상력의 공간은 쪼그라 들고, 집단목표와 선동논리에 맞지 않는 신화는 제거됐다.
신화는 공동체를 움직이는 정체성의 원천이다Myth is the source of identity that moves a community.
-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 『상상된 공동체』 Imagined Communities (1983)
이런 신화혐오와 대조적으로, 베네딕트 앤더슨(1936~2015)의 윗 발언은 신화의 창조와 결속 기능을 강조한다. 선동 프레임이 신화를 절반만 해석한다면, 윗 발언은 나머지 절반—공동체 창조성과 정체성 형성—을 복원한다.
이런 대조는 신화를 도구화하는 집단주의가 상상력을 억압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신화를 소중한 문화기억으로 다시인정하면 ‘금송아지의 귀환’—비판과 계승이 결합된 창조적인 회복—을 위한 공동체 비전의 설계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회차에서 선동 및 조작 프레임이 신화를 모욕과 혐오로 고착시키는 지형을 탐구했다면, 다음 회차에서는 이런 신화모욕의 프레임 보다 더 강력해진 신화위협 단계의 담론들을 살펴볼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