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4단계 신화위협+ 5단계 신화배척
신화에 무지한 것은 차라리 괜찮다. 당신은 어떠한가? 신화를 비웃거나, 얕보거나,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마음은 없는가? 만약 있다면, 그 순간부터 ‘신화혐오/미토헤이트’mytho-hate는 시작된다.
신하비하, 신화혐오, 신화공포— 그 이름이 무엇이든 그 정체는 개찐도찐 정도의 차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부터 당신의 신화혐오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살펴보자.
그 시작은 가벼운 회의주의이다. 이것이 교육과 제도를 통해 고착되면, 왜곡된 집단지향—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억누르며 이기주의와 혼동되는 구조—이 신화적인 상상력을 질식시킨다.
결국, 신화는 문화자원이 아닌 미신으로 몰리며, 공동체의 풍요로운 집단표상으로 성숙해갈 계기를 잃어버린다. 이를 넘어서는 길은 신화풍요의 비판적인 계승, 곧 금송아지로의 귀환이다.
신화를 서사의 첫 언어로 우리가 다시인식할 때, 우리는 왜곡된 집단지향을 넘어 개인의 자율과 공동체 결집력을 조화시킬 수 있다.
이번 연재는 '신화혐오'의 피라미드 구조를 5단계로 나누어 살펴본다. 가벼운 회의주의로부터 전면적인 배척 곧 철폐까지, 국내외 사례들을 비교하며, 왜곡된 신화혐오가 어떻게 신화적인 상상력을 억누르는지, 그 메커니즘을 드러내고, 이를 넘어서는 비전을 제시할 것이다.
4단계 신화위협과 5단계 신화배척은 고강도로 신화혐오가 전개되는 두개의 단계이다. 4단계 신화위협은 신화를 사회적인 위험요소로 규정하고, 법률과 제도의 장치를 통해 규제와 제재를 가한다. 겉으로는 질서유지와 공공선을 위한 조치라고 주장되지만, 실재로는 특정한 신화자산을 집단표상으로부터 배척하는 기능을 한다.
5단계 신화배척은 규제를 넘어 전승자와 상징물을 직접 겨냥해 물리적인 파괴와 조직적인 말살을 가한다. 4~ 5단계 사이에 단절이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이 둘은 하나의 경사면 위에 놓여 있다. 신화를 반사회적인 위험으로 낙인찍는 순간부터 금지에서 파괴로 넘어가는 미끄러짐은 이미 시작되고, 이를 가속하는 것은 위험을 확대·과장하는 집단주의적인 관성이다. 4단계를 정당화하는 담론은 아래처럼 나타난다:
신화옹호자들은 사회를 혼란시키는 선동자들이다Myth advocates are agitators who disrupt society.
4단계 신화위협의 국면은 세계 곳곳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인도에서는, 힌두신화를 소재로 한 영화나 연극, 전시가 자주 사회적인 논란의 대상이 된다. 특정 종교단체가 어느 장면이나 대사를 문제 삼아 “신성을 모독했다”거나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하면, 곧바로 지역언론과 정치인들이 이를 증폭시킨다. 항의집회가 열리고, 경찰이 배치되고, 치안우려를 내걸어 지방정부가 개입한다. 법원은 상영정지나 전시금지에 대한 가처분을 내리고, 창작자들은 자기검열을 강화한다. 결국 삭제·수정 같은 조건부허용으로 귀결되거나, 아예 상영·전시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과정은 다종교 사회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됐고, 문화적인 표현의 자유는 사실상 종교적인 감정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는다.
프랑스의 라시테(laïcité, 평신도의 자유, 정교분리, “국가는 종교적으로 중립, 개인은 사적으로 자유”라는 구분)의 원칙도 부분적으로는 신화위협의 제도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라시테는 중립을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다원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동시에 제한하는 2중 효과를 낳는다. 2004년 제정된 법은 공립학교에서 학생들이 히잡, 키파, 큰 십자가 같은 “뚜렷한” 종교상징을 착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2010년에는 공공장소에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복장을 금지하는 법률이 도입됐다. 국가와 공공기관의 중립성을 보장한다는 명분은 분명하지만, 현실에서는 소수 종교집단의 정체성 표현이 위축된다. 이슬람계 이민자 청소년들은 학교와 사회 사이에서 정체성 갈등을 겪게 되고,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사이의 긴장이 구조화된다.
터키의 세속주의도 이와 유사한 길을 걸었다. 1980년대 뒤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공기관과 대학에서는 히잡의 착용이 전면금지됐다. 대학생들은 강의실에서 쫓겨났고, 공무원들은 직장에서 제재를 받았다. 법정과 군부대에서는 출입 자체가 제한됐다. 단순한 복장규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정체성을 공적인 공간에서 배척하는 정책으로 작동한 것이다. 이런 조치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학업과 경력에서 불이익을 받았고, 사회 갈등도 심화됐다. 이후 2010년대에 들어서야 점진적인 완화가 이루어졌지만, 그 이전까지는 사실상 종교적인 표현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제도가 현실적으로 존재했다.
이같은 인도·프랑스·터키의 3단계 신화위협의 사례들은 각기 다른 역사와 명분을 내세우지만, 모두 신화를 공적인 공간에서 밀어내는 방식으로 표현과 전승의 호흡을 짧게 만든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신화는 미신이며 병리적인 산물, 완전 퇴치해야 한다.Myth is superstition and a pathological delusion, it must be eradicated entirely.
위 글귀는 5단계 신화배척을 다시구성한 것이다. 5단계 신화배척의 국면은 훨씬 더 극단적인 양상을 드러낸다.
중국문화대혁명은 ‘4가지 옛것들을 타파하자’ 四舊打破(舊思想, 舊文化, 舊風俗, 舊習慣)라는 구호 아래 전개됐다. 6,618개 문화재 파괴, 2,000개 무덤 등 수많은 사찰과 사당, 고분과 유물이 파괴됐고, 경전과 목판 같은 기록 유산도 대거 소실됐다. 전승자들은 구사상 보유자로 낙인찍혀 공개 비판투쟁과 구금, 강제수용소로 내몰렸다. 단순한 폭력 사건이 아니라, 국가와 홍위병이 결합한 조직적인 처형이었다.
1920~ 39년대 소비에트의 무신론 정책 역시 체계적이었다. 사제들 및 학자들 수만 명이 반혁명을 선전한다는 혐의로 체포·처형됐고, 교회와 모스크는 창고·박물관으로 전용됐다. 특히 일부 예배당은 “과학적인 무신론 박물관”으로 바뀌어 종교를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1929년 제정된 법률은 종교활동을 사실상 전면 금지했고, 무신론 교육과 선전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종교공동체는 생존 기반을 잃었고, 신화와 제례는 급속히 사회적인 생명력을 잃어갔다.
나치 독일은 더 노골적이었다. 1938년 “수정의 밤”에는 수백 개의 유대교회당들이 파괴되고, 유대인의 상점과 가정이 약탈당하는 사건이었다. 이는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국가가 대중 앞에서 폭력을 묵인하고 조장한다는 신호였다. 이어 유대인 학자들 및 전승자들이 게토와 수용소로 강제 이송되고, 문화전승의 인력적인 기반이 파괴됐다. 유대문화는 교육·출판·예술 영역에서 삭제됐고, 회당과 학교는 폐쇄됐다. 동시에 나치는 아리안 신화를 찬양하며 독일민족의 순수함과 영웅적임을 강조했다. 한편에서는 유대문화를 말살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들의 신화를 강화하는 구조였다.
한국에서도 5단계 신화배척의 잔영을 확인할 수 있다. 단군상 훼손과 사찰 방화 사건들은 규모 면에서 국가적인 차원의 조직적인 말살은 아니지만, 특정 신화를 우상숭배나 미신으로 낙인찍고 직접적으로 파괴하려는 시도였다. 피해는 단순히 시설의 파괴에 그치지 않는다. 공동체의 집단기억으로부터의 배척이 집단심성화되고, 전통신앙공간에 대한 공포감이 조성되고, 종교공동체들 사이의 갈등이 장기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면 왜 이런 신화혐오들이 되풀이되는가. 첫째, 혐오프레임은 집단기억으로 팽창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혼란을 유발한다고 하던 것이 곧 사회적인 해악으로 규정되고, 끝내 박멸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수렴된다. 둘째, 제도에는 관성이 있다. 임시규제는 재검토 없이 상시 규제가 되고, 부분 금지는 전면 금지의 전례가 된다. 셋째, 정치적인 긴장과 위기상황 속에서 강경한 조치는 가장 손쉬운 대응으로 소비된다. 넷째, 행정편의와 권력의 이익, 공포를 증폭시키는 미디어가 결합하면서 고강도 조치가 필연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질서유지처럼 포장된다. 결국 금지에서 파괴로 이어지는 경사면은 합리적인 논의의 결과가 아니라, 낙인과 제도의 자기강화가 만든 슬로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화혐오에 대한 대안은 비장한 구호가 아니라 상식에서 출발한다. 신화가 위험하다는 평가는 증거에 기초해야 하고, 개입은 최소한의 침해에 그쳐야 한다. 규제는 반드시 일몰과 재검토 조항을 갖추어야 하고, 당사자와 전문가,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사회적인 대화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분쟁은 시민배심이나 다학제 위원회에서 조정하고, 금지 대신 등급·경고·연령 제한 같은 대체수단으로 조율할 수 있다.
무엇보다 문화기억을 지키는 장치가 중요하다. 상징물과 제례공간은 물리적인 보존과 함께 디지털 아카이브로 기록해 복원가능성을 확보해야 하고, 신화혐오사건들 뒤에는 대체상징물이나 공공추모프로그램으로 공동체의 집단기억회복을 지원해야 한다.
교육현장에서는 신화리터러시를 길러, 신화를 미신이 아니라 문화기억과 사회적인 상상력의 자산으로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작은 말뚝들을 단단히 박을 때, 금지에서 파괴로 미끄러지는 경사면은 계단으로 바뀌고, 신화와 사회적인 상상력이 리디스크립션되는 ‘금송아지의 귀환’이 가능해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