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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 '네줄 기타'를 아세요?

베이스(Bass)

by 수교 Sep 03. 2023

세상엔 다양한 현악기가 있다. 기타, 하프, 바이올린, 가야금 등. 

이런 악기들은 대개 아이들도 쉽게 알아볼 만큼 특징이 뚜렷하다. 그런데 개중엔 "네 기타는 왜 줄이 4개야?"라는 '밈' 혹은 실제로 '진지한' 질문에 시달리는 악기가 있다. 바로 '베이스 기타(Bass Guitar)' 얘기다.


최근 일렉 베이스를 취미 삼아 독학 중이다. 사실 처음 접한 건 10년도 훨씬 전인 고등학생 시절이다. 그땐 그저 특이한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학생에겐 거금이었던 용돈 18만원을 털어 중고 베이스를 하나 샀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기억은 있는데 제대로 친 기억이 없다는 것(!) 


"당시엔 유튜브도 없었고 레슨은 학생 주머니 사정에 비쌌으며 책만 가지고 악기를 배우기엔 너무 어려웠습니다..."라는 등의 변명이 떠오르는데 접어두기로 한다. 당시엔 그냥 목적도 의지도 부족했던 거다. 결국 싸이월드에 사진(증빙인가) 하나만 덜렁 남긴 그 베이스는 곧 내 손을 떠났다.

그 시절 '콜트 C4' 베이스

그러다 최근 잊었던 베이스 생각이 다시 났다. 허구한 날 퇴근하고 뻗어서 게임이나 틱톡에 빠져 있는 날 보며 뭔가 활동적인 취미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요즘이다. 대신 전제조건이 있었다. 정말 생산적이지 않으면서 머리도 싹 비울 수 있는 그런 걸 찾자고. 사회생활에 찌든 건지 어느덧 취미조차 미래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걸 해야한다는 이상한 강박에 사로잡힌 나를 발견한 까닭이다. 


그런 면에서 베이스는 최적의 선택지였다. 솔직히 지금 음악을 시작한다고 내 커리어나 미래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없고 음악할 땐 확실히 다른 잡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는 악기 연주에 잼병인 걸 스스로 안다. 소질이 없단 얘기다. 그래서 더 베이스를 골랐다. '어디든 잘 튀지 않는 악기이면서도 내가 못하면 잘하는 것에도 그리 미련을 두지 않고 시간을 쏟을 수 있을 것'이란 논리였다. 


물론 고민도 좀 했다. 악기는 비싼 취미인 데다가 베이스는 이전에도 금방 그만둔 기억이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이미 마음이 꽂힌 내게 묘하게도 사야 할 이유는 사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늘 5개쯤 더 생각나곤 했다. 고민과 고민이 충돌한 듯해도 이미 승패가 결정된 싸움, 며칠 후 내 방에는 다시 입문자용 베이스가 하나 놓였다. (후후!) 


그리고 이제 베이스를 주제로 글까지 쓰게 된 건 지난 한달 사이 이 악기에 생각보다 많은 애정을 갖게된 데 있다. 베이스는 의외로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악기다. 베이스란 악기 자체의 매력을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론 나와 꽤 닮은 악기란 사실도 깨달았다. 


둥둥!

그럼 베이스에 대해 조금 더 상세히 소개해볼까? 우선 외형은 네줄 기타란 오해를 받을 만큼 기타와 똑같다. 아니, 사실 분류 자체가 '베이스 기타'니까 기타는 맞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줄은 적고(기타는 보통 6줄) 크기와 길이는 훨씬 큰 악기가 베이스다. 아니, 사실 이조차 구분하지 못할만큼 베이스는 대중의 인식에서 마이너가 악기다. 아마도 길에서 아무나 붙잡고 "베이스 소리를 아세요?"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글쎄요"라 답할 거라 확신한다. 심지어 베이스 음색을 아는 나조차 음악에서 베이스 소리에 굳이 귀를 귀울여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알면 달라진다.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누구든 통기타 특유의 감미로움을 깨달으면 그 음색에 홀딱 빠지게 되는 것처럼, 통기타 선율이 담긴 음악의 감성을 좋아하게되는 것과도 같은 거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베이스 소리는 '둥'이라 표현한다. 가벼운 띵이나 째지는 땡이 아니다. 매일 베이스를 치기 전 손을 풀며 가장 굵은 줄의 개방현 '미' 음을 쳤을 때 '둥-' 하며 낮고 깊이있게 파고드는 그 소리에 매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베이스는 음악에서 피아노 등 멜로디 악기와 리듬 악기인 드럼 소리를 이어주는 줄기 역할을 한다. 꽃에서도 줄기는 그저 기둥과 연결고리 역할을 하듯 베이스도 음악에서 화려한 존재감을 뽐낼 일이 드물다. 소리도 작은 편이라 베이스가 드럼처럼 잘 들리는 곡은 많지 않다. 그런데 한번 베이스 소리의 특징을 깨달으면 신기하게도 음악에서 그 소리에 귀에 잡히기 시작한다. 잘 알고 있던 노래에서도 숨어 있던 베이스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기도 한다. 바로 그 순간 베이스의 저음이 채우는 묵직한 균형과 멜로디 악기가 잠깐 쉬는 찰나를 부드럽게 메꿔주는 간드러짐에 '크으!'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될 거다.


아쉽게도 소리는 글로 표현하기 대단히 까다로운 감각이다. 미천한 내 글씨를 탓해본다. 대신 베이스 특유의 소리와 감성을 잘 느낄 수 있는 곡 하나를 소개한다. 초보인 나도 아직 많은 곡을 알지 못하는데 적어도 이 곡 하나에 베이스의 참 많은 매력이 담겨있단 생각을 하곤 한다. 


♪ 빌 위더스 - Just the Two of Us 

https://www.youtube.com/watch?v=Kspz_YmjQ50

Cover by 이펠(Eiffel)

베이스의 둥둥거리는 핑거링(문지르는 주법, 0~40초) 음색과 점잖게 찰진 슬랩(뜯는 주법, 40~60초)의 오묘한 조화가 일품인 곡 아닌가. 기본기에 익숙해지고 나면 가장 먼저 익히고 싶은 곡이기도 하다.


베이스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감성을 물씬 자극하는 통기타의 멜로디, 시선화 귀를 화려하게 잡아끄는 일렉기타의 매력과는 또 다른 구석이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다양한 자극이 넘치는 세상에 베이스 음색에 담긴 특유의 담백함은 튀지 않음에도 베이스 소리에 조용히 귀기울이게 한다. 


그러다 보면 음 하나하나의 존재감이 다른 여타의 악기들보다 크다는 점도 느끼게 된다. 베이스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쉬운 악기'란 점인데 그렇지 않다. 줄이 적다고, 기타처럼 코드를 화려하게 잡지 않는다고 쉬운 게 아니다. 한음, 한음을 치되 그 하나에 섬세한 강약 조절과 그루브가 담기지 않으면 베이스의 온전한 매력을 끌어내기 어렵다. 독학 중 여러 영상을 보다보면 베이스를 오래 친 사람들도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베이스의 끝은 화려한 슬랩이 아니다. 근음 하나를 치더라도 그 음 하나에 담기는 그루브와 조화로움에 있다"고. 


날 닮은 베이스

내가 저런 경지에 이르는 건 한참 먼 얘기다. 다만, 그래서 베이스를 잘 치는 일에 더 조바심 내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화려하게 쳐야 할 악기도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탄탄한 기초를 요구하는 악기란 사실을 깨달은 까닭이다. 나는 베이스의 그런 모습들이 나와 닮았다고, 내가 가야 할 길들과도 닮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그리 튀는 사람이 아니다. 어려서 한때는 튀는 삶을 꿈꾸기도 했다. 그런 나는 조용한 학우였다가도 한번씩 무리수를 두는 그런 친구였을 거다. 사람의 타고난 기질이란 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누가 하면 웃긴 개그도 내가 하면 웃기지 않은 것, 너가 입어야 '간지' 내가 입으면 '거지'인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색에 맞는 삶을 살 때 가장 자연스럽고 빛이 난다. 


내가 그리 튈 수 없는 사람이란 걸 깨달은 이후 나는 노선을 바꿨다. 어디서든 성실히 움직이되 굳이 무리수 두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떤 결과물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즐겁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흔한 온라인 게임에서조차 나는 늘 '서포트'나 '힐러'를 좋아했다. 군대에서 선호하는 포지션은 공격수 대신 수비수나 골키퍼였다. 게임에선 죽어가는 아군을 살리고 축구에선 결정적인 한방을 막아 아군의 승리를 굳히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꼈다.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없으면 바로 표가 나는 그런 자리의 즐거움이다.


베이스란 악기도 그렇다. 베이스 치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게 되나보다. 오죽하면 유튜브 베이스 관련 영상 중에는 '베이스가 있는 음악과 없는 음악의 차이' 같은 콘텐츠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극단적으론 '베이스 매력 모르는 사람 불쌍해'라는 연주곡 모음 시리즈도 있으니 말 다했다!

그짓말 아니다. 베이스 좀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들었으면 1년만에 조회수가 600만회를 넘었다(!)

베이스는 내게 과제도 하나 던져줬다. 앞서 베이스는 무엇보다 기본기가 중요한 악기라고 말했다. 고수의 길로 갈수록 음의 정확한 운지와 그루브와 섬세한 강약조절이 요구된다. 기본이 안되면 불가능한 일이다. 대충 테크닉이나 배워서 치려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베이스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할 때 막막함을 느낀다면 바로 그것 때문이리라. (다른 악기들이 기본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오해 말자!) 


내 단점은 그동안 무언가 배울 때 기본보다 테크닉을 추구해왔다는 점이다. 혹은 대강 배우고 나만의 방식으로 재조립하는 것을 즐겼다. 이 나름의 유익도 있지만 이런 방식은 언젠가 벽에 막히는 때가 온다. 이 글 하나에 모든 걸 담을 수 없지만 평소의 삶이든, 일이든, 관계든 모든 면에서 바닥이 튼튼하지 않으면 난제를 만나는 순간들이 온다. 그땐 테크닉으로 가렸던 나의 부실한 기초가 여실히 드러나는 경험을 마주하곤 한다. 


어려서는 괜찮았다. 기회가 많았고 주어진 것들의 무게가 가벼웠으니. 매년 어른이 될수록 얘기가 달랐다. 성숙한만큼 무게감 있는 일들이 내 삶을 채우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들에 치임을 느낄 때면 내가 크면서 무엇을 놓치고 살아왔는가 점점 더 많이 성찰해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쉽게도 개중에는 이제 '재공사'가 불가능한 바닥들도 있다. 그렇지만 어쩌랴, 남은 건 적어도 앞으로 마주할 것들은 타일 하나하도 꼼꼼히 채워 넣는 바닥을 마련하는 것뿐이다. 


나는 지금 배우는 베이스에 그런 가치를 투영하려 하고 있다. 굳이 단계를 쉽게 건너 뛰며 진도 빼는 일은 지양한다. 실제로 며칠간 '도레미파솔라시도'의 현만 짚더라도 제대로 된 소리와 자세를 구현하고 있는지 점검해보며 나아가고 있다. 물론 독학이라 놓치고 지나가는 문제들도 있다. 대신 그런 건 나중에라도 깨달으면 다시 돌아가 고치곤 한다. 


사실 빨리 있어보임직한 노래들을 연주하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있다. 그러지 않기로 했다. 하나하나 잘 배우고 기초를 다져 나중엔 누구보다 쫀득하고 꽉 찬 연주를 하잔 목표를 잘 사수하기로 했다. 악기뿐 아니라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과 새롭게 마주할 도전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생각해보면 악기 이름 베이스(Bass)와 영단어 베이스(Base, 바닥·기초)의 발음이 비슷한 건 과연 우연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제목으로 '네줄 기타를 아세요?'를 적어놨다. 최근 틱톡에서 유행한 '홍박사님을 아세요?'가 문득 생각나 적어둔 제목인데 그대로 두기로 한다. 자문자답이 됐지만 만약 내게 네줄 기타를 아냐고 묻는다면 "아직 알아가는 중입니다"라고 답하려 한다. 이미 꽤 장황히 적었지만 앞으로도 베이스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할 것이 많음을 안다. 그 안에서 지금보다 더 나를 닮은 베이스, 내게 필요한 깨달음과 도전을 주는 베이스와 마주하기를. 

CORONA Standard Jazz B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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