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만개했던 벚꽃이 점차 가로수길 바닥을 밝게 물들이는 늦봄. 나에게도 마침내 그것이 찾아왔다. 슬럼프. 괜히 내 입으로 얘기하면 점점 더 심한 슬럼프에 빠질 것 같아 말을 삼갔지만 나에게도 그것이 찾아온 것은 분명했다.
주변 친구들이 슬럼프에 빠졌다고 이야기했을 때 나는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하여 더욱 공부에 몰입하려 했다. 머리가 평소보다 돌아가지 않는 날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펜을 잡았고 성적이 떨어지는 듯해도 그 날만 이상한 것이라고 합리화를 했다. 하지만 남들은 한참 젊음을 꽃피울 계절에 마치 가두리 양식장 같은 곳에 갇혀 하루 종일 공부만 하고 있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슬럼프에 빠진 친구들이 이에 벗어나기 위해 취한 행동은 제각각 다양했다. 친구들끼리 모여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수다를 떨기도 했고 쉬는 시간, 식사시간마다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기도 했으며 한동안 공부를 하지 않거나 선생님에게 찾아가 새로운 공부 자극을 부탁하기도 했다. 몇몇 학생들은 공부 환경으로 바꿔보고자 아예 학원을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나에게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 나는 별다른 해결 방안을 찾지 못했다. 서로 상담을 해줄 친구도 없었으며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고 선생님에게 상담을 부탁할 정도로 친하지도 않았다. 그냥 한 가지 유명한 격언을 마음속에서 계속 되뇔 뿐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많은 학생들이 슬럼프 속에서 허우적대면서 무언가 드라마 같은 극복 신화를 바라고 있다. 이전에 읽었던 자기 계발서의 그 주인공처럼, 숱한 영화와 드라마처럼 자신을 계몽시켜줄 엄청난 계기 혹은 동기로 인해 현재의 슬럼프를 이겨내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강한 열의로 공부를 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까지 기승전결이 완벽하지 않다. 본인이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이때쯤 엄청난 조력자가 나타나거나 특별한 계기로 인해 각성할 것이라 기대하지 말자. 내가 하고 있는 것은 공부이지 공부 놀이가 아니니까.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냐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슬럼프를 억지로 극복하려 하지 않고 그냥 흘러가게 두었다고. 방금 언급한 격언처럼 힘든 그 시간도 결국에는 흘러가게 되어있다. 본인이 슬럼프에 빠졌다고 해서 너무 우왕좌왕하거나 절망에 빠지지 말자. 자신이 해야 할 것을 차근차근하고 있으면 끝끝내 자신의 페이스로 돌아오게 되어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