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 Day A D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윤 Jan 16. 2020

제자리걸음

믿음에 생기는 균열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을 때 그보다 더 착잡한 것이 있을까? 나의 경우 6월 평가원 모의고사가 그러했다. 2월 14일, 남들은 사랑의 초콜릿을 주고받을 때 재수 정규반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한 지 약 4개월. 처음으로 변화된 나의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는 시험이 드디어 찾아왔다.               



 재수학원에서의 평가원 모의고사는 매우 어수선했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독학으로 공부하거나 그냥 시험만 응시해보는 사람들까지 우리 학원에 들어와 시험을 보았고, 우리는 평소보다 훨씬 좁고 복잡한 공간에서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지난 4개월 동안 나는 작년과 다르게 새롭게 바꾼 나의 공부법을 단 한 순간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조금 남들보다 뒤처지고 계속 같은 것만 반복한다고 해도 성적이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믿음에 균열이 생긴 것이 바로 이때였다.      


         

 6월 평가원 모의고사 문제를 풀면서 굉장히 '어렵다'라고 느꼈다. 특히 국어 과목의 경우 여태껏 보아온 모의고사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어려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나의 생각과 달랐다. 등급컷은 생각보다 높았고 나의 성적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채점표를 들고 담임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부끄러운 마음에 그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잠깐이었지만 마음속으로 오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더불어 지금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오히려 작년보다 성적이 떨어져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왜 성적이 떨어졌냐며 꾸지람을 들을 줄 알고 긴장하고 있는 나였지만 의외로 담임선생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응, 그래. 돌아가서 다시 자습해."               



 담임선생님께서는 내가 건넨 채점표를 흘끗 보시더니 바로 서류첩에 집어넣으셨다. 온 걱정을 하고 교무실에 올라갔던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모의고사는 아무것도 아니니 하나도 신경 쓰지 말라던 담임선생님이셨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나 싱거운 반응이었다.   


            

 재수를 하고 나서 오히려 성적이 떨어지고 나니 항상 마음에 품고 있던 불안감이 가중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공부방법이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의심. 작년과 같이 무한 문제풀이를 통해 성적을 올리는 것이 맞았을까? 작년 이맘때 내 성적이 이렇지는 않았는데 ······. 그동안 공부한 것이 그저 제자리걸음이었을 뿐이라는 불안한 생각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매거진의 이전글 슬럼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