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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 Jan 16. 2020

어느 평범한 일요일

이곳 사람들 모두가 좋은 결실을 맺길

 어김없이 울리는 핸드폰 알람 소리. 액정 화면은 '05:50'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방문을 열고 주방으로 향한다. 주방에 계신 어머니께서는 아침밥과 함께 새벽에 싸 놓은 도시락을 나에게 건네주셨고 나는 도시락을 챙기며 말없이 식사를 마쳤다.               



 책가방을 메고 집 밖을 나설 때는 아직은 사람이 돌아다니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주변 상가들이 바쁜 하루를 준비하느라 분주해있는 동안 나는 경전철을 타기 위해 약 30분이 걸리는 거리를 천천히 걸어갔다. 귀로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일요일 아침의 경전철은 다른 요일과 달리 매우 한산했다. 경전철에 오르면 나를 포함하여 4~5명 정도의 승객만이 자리에 앉아 있었고 각자 핸드폰을 보고 있거나 책을 보느라 다른 이들에겐 무관심했다. 나는 경전철의 맨 앞 입석 자리에 있는 커다란 턱에 영어 단어장을 올려놓고 간간히 공부했다. 눈 앞에 펼쳐지는 너무나 평범한, 그렇지만 아름다운 전경을 바라보면서.    


           

 종점에서 지하철로 환승하고 나면 지하철 칸에는 나와 같이 시험을 준비하는, 누가 봐도 수험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EBS 수능특강을 보거나 단어장을 손에 쥐고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강한 동지애를 느끼며 열심히 공부하는 이곳 사람들 모두가 좋은 결실을 맺길 기도했다. 그 순간만큼은 지하철이 아니라 마치 독서실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내린 후 약 15분 정도를 걸어가면 내가 다니는 재수학원 건물이 보였다. 매일 보는 건물이지만 일요일에 보는 우리 학원은 어딘가 포근한 느낌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불이 꺼져있는 우리 반 교실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내가 1등이구나! 나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교실 안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교실에 가장 먼저 들어가 불을 환하게 밝힐 때의 희열은 길게 이야기하면 사족이 될 것 같아 구태여 설명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그 행위를 즐겼고 매주 1등으로 등교하여 가장 먼저 책을 폈다. 비록 앉고 나서 2~30분 간은 조느라 제대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지만.               


 1시간 반 정도가 지나면 그제야 3~4명씩 등원을 하기 시작했다. 교실에 왔다고 해서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이곳에서의 암묵적인 룰이었으니까.               



 점심시간이 되면 매점에 올라 끼니를 때울 음식을 사 왔다. 주된 메뉴는 컵라면 하나와 삼각김밥 2개. 후식으로 조지아 캔커피까지 하나 사 오면 완벽했다. 바리바리 싸온 소중한 점심을 교실로 가져오면 다른 학원생들은 벌써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점심식사를 하며 스케줄러를 꺼내 다음 주 계획을 짰다. 아무리 공부계획이라지만 계획을 짜는 일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렇게 점심식사와 계획 짜기를 마치면 어느새 2시가 되어 오후 자습을 시작했다.               


 2시간 되면 그때부터 생활지도 선생님께서 인원체크를 하러 교실에 들어오셨다. 우리 교실은 모범 교실 중 하나였기에 특별한 날이 아니면 모두가 제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별로 계시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하여 남몰래 일탈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로 인한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하는 법. 다시 자리에 앉아 남들보다 늦게 공부하는 것도 결국 자신의 몫이었다.          


     

 일요일 자습은 나와 같이 집이 먼 학생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차편이 끊기기 전에 탈 수 있도록 평소보다 빠른 오후 9시에 마쳤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시간이 되면 벌써부터 곧 집에 갈 생각에 모두가 들떠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하며 자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무슨 노래를 들을지, 어떤 친구에게 전화통화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자습이 끝날 시간이 다가오면 아이들의 짐 챙기는 소리가 점차 크게 들려왔다. 누군가 끝났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그 시간만큼은 모두가 철저히 지켰다. 나도 가방을 메고 학원생들의 행렬에 끼어 지긋했던 학원 건물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건물을 나서는 그 순간 크게 들이쉬는 밤공기. 그게 무척이나 좋았다.               



 건물을 나서면 하원 하는 그 시간만큼은 절대로 책을 보지 않았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산책을 즐겼다. 매일 보는 전경들임에도 그 풍경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걷는 것은 그것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도보 시간까지 합하면 1시간 반 이상이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일주일 중 거의 유일·순수하게 책을 보지 않는 시간이었기에 나에게는 매우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것이 1주일간 고생한 나 자신에게 주는 몇 안 되는 보상이었으니까.               


 집에 들어가 씻고 간단한 야식을 먹으면 시계가 11시 반을 가리켰다. 평일보다 1시간 정도 더 여유로운 시간. 보통 TV를 시청하며 일요일의 마지막 순간을 즐겼다. 앞으로의 또 다른 일주일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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