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당연한 것은 없었다
2023년 8월, 그렇게 다시 5일 동안 페마라를 복용하였다. 벌써 다섯 번째 페마라다.
처음 페마라를 처방받았을 때, 약국봉지에 '유방암 항암제'라고 쓰여 있어 덜컥 겁이 났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페마라가 나에게 준 가장 큰 부작용은 '피부가 뒤집어지는 것'이다.
이마와 볼은 멀쩡한데 코부터 시작해서 턱까지 아주 큼직큼직한 염증이 부풀어 올랐다. 단순한 여드름이라기엔 뭔가 달랐다. 크기도 크고, 아프기도 너무 아프다 보니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염증주사를 맞으러 가자니, 혹시나 임신과 관련하여 문제가 생길까 피부과도 가 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보기 흉해 거울 보기도 밖에 나가기도 싫었다. 호르몬을 건드리는 약이니 부작용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겠거니, 마음을 비우고 약을 먹는 수밖에 없다.
보통 페마라를 먹으면 양쪽 난소위치에 콕콕 거리는 느낌이 오고, 가끔 Y 존에서 불편한 느낌이 든다. 그럴 때마다 "내 몸이 난포를 잘 키워내고 있구나" 하며 참았다.
그런데 이번엔 이상하게도 그런 느낌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배란점액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비물이 예상보다 빨리 나왔다.
뭔가 평소와는 다르고 이상했지만,
"안 아프면 좋은 거지 뭐, 문제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매번 그래왔듯 내게 가장 좋은 결과만을 줬던 약이니까,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배란이 너무 빨리 돼 버렸다.
페마라 복용 후 며칠 뒤, 난포가 잘 자랐는지 초음파를 보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그동안 수많은 배란초음파를 봐 왔기 때문에, 오늘쯤이면 보게 될 이상적인 상황을 미리 예상할 수 있었다.
1.8cm~2.0cm 사이의 난포 한~두 개가 동글동글 탐스럽게 성장해 있다면 성공적인 것이니, 오늘 바로
인공수정 시술 날짜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시술 날이 잡히면 남편에게 언제 연차를 내야 하는지 알려 줘야지', 기대하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
이윽고 진료실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초음파 화면 속에는 자잘한 동그라미들 뿐이었다. 내 경험이 맞다면 성숙한 난포는 그 크기에서 오는 존재감이 독보적이어서, 모를 리가 없다. 분명 이 자잘한 동그라미들은 내가 오늘 기대한 아이들이 아니다.
조용히 그리고 분주하게 초음파를 보시던 선생님이 입을 여셨다. "여기 보이는 이 길쭉한 모양의 난포가 이미 터진 것 같다"라고. 정확한 배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채혈 후 귀가했다. 시술 날짜는 물론 잡지 못했다. 배란이 되었다면 이번 달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며칠 뒤 다시 본 진료에서, 선생님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떻게 마음먹은 인공수정인데,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하고 이번 사이클이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리다니...'
'그동안 페마라를 먹으면서 이런 일은 없었는데.. 당연히 난포들이 잘 자라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혼란스러운 내 표정은 숨겨지지 않았고, 선생님은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하셨다.
"페마라와는 상관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다낭성난소증후군' 때문에 생리 주기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라고, "원래 내 생리주기가 길었던지라, 정상 생리주기로 가기 위해 일시적 조절 개념으로 생리 주기가 짧아질 수 있다"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에 잠시나마 위로는 되었지만, 생각이 많아졌다.
시도를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약을 먹는다고 해서 매번 난포가 잘 자라주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한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