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고립과 삶의 독립

해석되지 않을 권리

by 수한가로

밤하늘처럼, 숫자의 세계 역시 촘촘하다.
그 안에는 유독 고립된 개체들이 있다.

소수(Prime Number).

2, 3, 5, 7, 11...

이들은 어떤 수로도 나누어떨어지지 않는다.

오직 1과 자기 자신만으로만 스스로를 증명할 뿐이다.


유클리드는 소수가 무한히 존재함을 증명했다. 무한하다는 것은 곧, 세상에 나와 닮은 존재가 끝없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무수히 많은 소수 중 똑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각자의 고유한 수치를 지닌 채, 수직선 위에서 자신만의 좌표를 엄격히 지킨다.


수학에서 '나누어떨어진다'는 것은 타자에 의해 '해석'됨을 의미한다. 6은 2와 3으로 설명되고, 12는 그들의 조합으로 분해된다. 그것은 다른 숫자의 언어로 번역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소수는 다르다. 다른 숫자의 논리로 침범당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완결된 문장이며,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본질이다.


사람들은 너무 자주 타인의 잣대에 '나누어떨어지기'를 강요받는다. 직업, 연봉, 성격 유형이라는 수치로 타인에게 요약된다. 누군가에 의해 쉽게 해석되는 순간, 존재의 고유함은 왜곡되기 시작한다. 타인이 나를 정의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내 삶의 통제권을 양도하는 행위와 같다.


해석될 여지를 주지 않는 것. 그것은 오만이 아니다.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윤리다.


소수가 그 단단한 껍질 속에 자신을 가두고도 수학의 근간을 이루는 위대한 원천이 되듯, 인간 역시 타인의 해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고유한 궤적을 그린다.


오늘도 누군가는 타인의 언어로 번역되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끝내 침범할 수 없는 소수로 남았을 것이다. 나누어떨어지지 않는 것은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귀한 독립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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