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퇴사학교

소비와 창조

by 티거 Jang


1.


"사세요!!"
"무엇을 사죠?"
"무엇이든!"

- 낭비 사회를 넘어서, 세르주 라투슈


우리는 매일 소비한다.

눈을 뜨고 잠들 때까지 세상에는 '나 좀 사주세요!' 하는 광고들 천지다.

도시의 모든 빌딩과 공간, TV와 스마트폰 스크린조차 모두 소비자를 위해 존재한다.


평일엔 자신을 소비하고
주말엔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쇼핑으로 더 많은 것을 소비하는 삶.



사람들이 소비를 통해 만족감을 얻고 심지어 삶의 의미까지 찾으면서 점점 더 소비를 추구하는 것이다.

- 텅 빈 레인코트, 찰스 핸디


그렇게 자신을 소비하고, 소모하며, 소진되면, 결국 허무만이 남는다.

그러면 더욱 소비를 탐닉한다. 허무를 잊는 가장 쉬운 방법이 또한 소비이기 때문이다.


호모 콘수무스 (Homo Consumus),
당신이 무엇을 소비하는지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류동민


소비는 우리의 존재를 규정한다.

아니, 소비는 우리의 인격을, 정체성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비정규직 마트 알바생인 철수가 한 달 월급을 다 털어 구입한 백만 원짜리 금빛 휴대전화는 부동산 시세차익을 거둔 회장님의 휴대전화와 동일한 것이다.

- 4천 원 인생, 안수찬 외


소비하는 그 순간 우리는 모두 동등해진다. 차갑고 냉정한 사회에서 직장인이자 시민으로서의 초라한 내 지위가 소비자가 되면서 격상된다. 소비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왕이다. 그래서 어쩌면,


'소비자라는 정체성이란 진실로 중요한 것은 하나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바깥세상을 잊도록 해주는 마취제일지도 모른다.'

-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류동민


그렇게 우리의 일상조차 소비되고, 소비가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된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예술 철학 종교, 삶의 모든 것이 소비자화(化)가 된다.


배달 음식이 조금만 늦어도 소비자는 짜증을 낸다.

식당 종업원이 조금만 허둥대도 소비자는 버럭 화를 낸다. 내 돈 주고 내 권리를 받는데 당연한 일이다.

프로모션 서비스와 할인 가격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정치도 사회도 예술도 종교도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져 내게 득이 되는 쇼핑처럼 접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쇼핑하듯 선거한다. 쇼핑은 토론을 전제하지 않는다. 개인적 취향을 따를 뿐. 그는 시민이 아니다.
선거 운동은 상업광고와 뒤섞인다. 통치도 마케팅에 가까워진다. 정치 여론조사는 소비자 시장조사와 닮아간다. 우리는 적극적 시민이 아니라 수동적 소비자일 뿐이다.

- 투명사회, 한병철


소비자가 시민을 대체한다.

선거는 쇼핑이 되고 공약은 광고가 된다. 정치인은 연예인이 되고 연예인은 쇼윈도 상품이 된다.

연예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개인들도 페이스북에서 자신을 전시하고 소비시킨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시민에서 소비자가 되어간다.





2.

우리의 존재를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

소비자인가 시민(창조자)인가.


덧1 : 시민이라는 포지션을 필자의 단어로 재정의한다면, 건설적인 가치를 만드는 생산자이자 창조자로 볼 수도 있다
덧2 : 여기서 말하는 소비자는 '힘없는 선량한 소비자'가 아니라 소비자화에 물든 세태를 의미하니 오해는 없길 바란다


나는 단지 일회성으로 소비하고 소모하며 소진되는 존재인가,

아니면 무언가를 창조하고 만들며 생산적인 길을 찾는 존재인가.


소비자는 지금 즉시 즉각적인 대응을 원한다.

창조자는 조금 더 참고 인내하며 기다린다.


소비자는 돈을 지불한다.

창조자는 가치를 만든다.


소비자는 브랜드에 의존한다.

창조자는 자신이 브랜드가 된다.


소비자는 일회적이다.

창조자는 지속적이다.


소비자는 익명으로 숨는다.

창조자는 실명으로 드러낸다.


소비자는 훈수만 둔다.

창조자는 책임을 진다.


소비자는 비판만 한다.

창조자는 대안을 찾는다.


소비자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공간은 바로 온라인 SNS이다.


소비자화에 물든 사람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 소모적인 비판만 일삼는다.

단지 자신의 기준에 의해 단편적인 측면만 보고 '이건 저래, 저건 그래' 하는 식으로 대안 없는 공허한 비판으로 소모한다.

순간의 미성숙한 감정의 남발로 다 같이 하향 평준화되는 길을 택한다.

남는 건 아무것도 없고 모두가 Lose-Lose 게임으로 끝난다.


반면 창조자는 끊임없이 대안을 찾는다.

표면적이고 단편적인 왜곡보다, 현실적이고 지속적인 대안이 더 중요하다.

말보다는 실행으로 증명하려 한다.

기존의 고정되고 정체된 세상에서 새로운 길을 탐색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은 실로 많은 비용과 희생이 따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게 우직히 꾸준히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모두가 상향 평준화되는 Win-Win 게임을 추구한다.


소비자는 단지 한 마디 말, 한 푼의 돈을 지불하면 그만이지만

창조자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던져 가치를 만들어간다.


소비자들은 돈이 힘의 원천이라는 것 말고는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도구와 기술을 가지고 자기에게 주어진 원료를 필요한 물건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들은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정신이 크게 자란다.

- 조화로운 삶, 스콧 니어링


다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나를 무어라 정의할 것인가.

소비자인가 창조자인가.




3.


아! 정말로 하나님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
모래알만 한 별이라도 좋으니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이어령


사실 진짜 창조주 앞에서 인간은 보잘것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 속에는 창조주가 심어 놓은, 창조의 기쁨을 누리는 씨앗이 심어져 있다.

어쩌면 그 본성을 위해 우리는 글을 쓰고 농사를 짓고 요리를 하고 창업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며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정말 눈에 보이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만이 창조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우리는 소비자가 아닌 창조자로서의 면모를 선택할 수 있다.


오늘 처음 본 것이 없다면, 또는 익숙한 것들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대량 소비 사회의 완벽한 소비자이다.
그 사람은 기업의 충실한 '노예'이다. 그리고 그 하루야말로 완벽하게 '눈먼' 하루이다.
깨어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우뚝 서 있는 삶이다.
광고가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삶, 관습이나 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이 옹호하는 삶 말이다.

- 이문재 산문집


창조자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은 똑같은 하루를 보내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인내하고 책임지며 대안을 찾는다.

스스로 내면을 돌아보고 끊임없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만들어 가려한다.

공멸보다는 상생의 길을 모색한다.


군 시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은 적이 있다.

릴케는 어릴 적부터 유독 조용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그는 15세 때 육군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시작(詩作)을 하게 되었는데 그가 주로 영감을 받은 것이 편지와 여행이었다. 유럽 각지로의 여행은 고독감을 더해 주었고 그는 거의 매일 편지를 쓰며 창작 연습을 하였다.


어느 날 한 습작생의 편지 한 통을 받게 된 릴케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는데, 내가 두고 두고 좋아하는 구절이 되었다.



당신은 당신의 시가 좋으냐고 물으셨습니다.
제발 그런 일은 이제 그만두십시오.
당신 바깥의 외부로부터 그 해답을 구하려 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충실하십시오.
내 안의 고독을 응시하십시오.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것에서 태어납니다.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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