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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거 Jang Jun 26. 2019

자아의 탐험

1

자아 탐험의 5단계가 있다.


1단계 : 하기 싫은 것을 한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자아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사회의 요구대로 할 것인가 나의 요구대로 할 것인가. 대부분은 자아가 패배한다.

내가 하기 싫은 공부를 하고 가기 싫은 학원에 간다.

점수에 맞춰 진학하고 붙여주는대로 취업한다.

어느새 나의 자아는 패배에 익숙해지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2단계 :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는다

삼십 대가 되면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 싶어진다. 사회 생활도 별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인생의 법칙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다시 자아가 중요해진다.

맨 처음 시도는 하기 싫은 것을 줄이는 것이다. 야근을 줄이고 싫은 사람과의 시간을 줄인다. 퇴근이 빨라지고 퇴사도 빨라진다. 청년들에게 퇴사가 판타지가 된 것은 순전히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로망 때문이다.

'No라고 말하는 용기, XX하지 않을 자유,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겠다, A하지만 B는 하고 싶어' 와 같은 느낌의 책들이 많이 팔린다.  


3단계 : 하고 싶은 것을 찾는다

하기 싫은 것을 줄이고 난 뒤에는 (워라밸로 퇴근 후 시간 여유가 생기거나, 일이 적응되면서 마음 속 여유가 생긴다면) 드디어 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된다.

취미, 모임, 여행, 소확행 등 "라이프"를 통해 하고 싶은 것을 찾는 사람이 있고, "워크"를 통해 찾는 사람도 있고, 둘 다 찾는 사람도 있다.

(일하는 자아를 찾고 싶은 사람들은 대표적으로 '퇴사학교'의 인기 수업인 '아이덴티티 찾기''강점 커리어 설계' 워크숍에 참여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잘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직업 가치관은 무엇인가.

이제 이 질문들은 평생의 과제가 된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까지를 꿈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하기 싫은 것을 하지만, 언젠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삶.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의 스토리를 보며 부러워하고 또 그런 것들이 가장 잘 먹힌다.

소위 말하는 '정반합'의 아름다운 스토리 구조.

'하기 싫은 것과 어려움 속에 살다가(정), 어떤 계기와 시행착오를 통해(반), 이제는 성공하며 행복하게 살아요(합)'


4단계 : 해야 하는 것을 한다

그러나 현실은 3단계의 달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동시에 늘 해야 하는 것을 하게 된다. 특히 20~30대에는 하고 싶은 것을 찾다가도, 40~50대가 되면 해야 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50대에게 20대는 현실을 모르는 어린애가 되고, 20대에게 50대는 현실에 찌든 꼰대가 된다. 하지만 어쩌랴. 원래 인생이 그런 것을.

'젊어서 이상주의자가 아니면 바보고, 늙어서도 이상주의자면 바보' 라는 말도 있지 않나.  


어쨌든 비단 나이와 상관없이, 각자의 자아에는 이 순간이 온다. 부양할 가족을 위해서든, 나의 현실을 직시해서든, 다른 대안이 없어서든, 아니면 별 생각 없이 그냥 내게 주어진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단계가 온다.


그러다 은퇴 후 다시 하기 싫은 것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찾기도 하며 자아의 탐험을 반복한다.

즉 자아의 탐험은 선형적인 정반합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정반합과 정반합들이 뒤섞이면서 상호간에 갈등과 영향을 미치는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끝이 없다는 것이다.


5단계 : 해야 하는 것이 곧 하고 싶은 것이 된다

그렇다면 자아 탐험의 끝은 어디일까?

나는 해야 하는 것(Must)이 하고 싶은 것(Want)과 일치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Must = Want)

여기서 중요한 순서는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해야 하는 것'을 '하고 싶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해야 하는 것'은 '하기 싫은 것'일수도 있으니, 결국 '하기 싫은 것'을 '하고 싶은 것'으로 만들자는 말인데, 사실 말이 안되는 말이다.


따라서 이 단계는 자아를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자아 탐험의 끝은 결국 '탈자아'로 귀결된다.


나 자신의 에고를 내려놓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을 기꺼운 마음으로 하게 될 때 우리는 어른이 된다. 프로란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도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괘념치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또한 언제든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가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더 큰 가치를 위해 지금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는 법을 안다.



2

내가 존경하는 리더들은 대부분 이런 풍모를 지녔다.

자신의 에고나 주장보다는 사회와 조직의 가치를 더 우선시한다.

회의 시간에 자기 주장을 펴고 갑론을박을 하다가도, 비즈니스의 목적과 고객 가치를 위해 나의 에고와 자존심을 내려놓을 줄 안다. 본인의 말이 틀렸으면 인정하고 옳은 말을 받아들인다.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전해 들은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내 짬에? 내가 팀장인데? 나 때는 말이야? 나도 해봐서 아는데?..."

이런 식의 기득권적인 자아 인식을 줄이고 사심 없이 조직과 비즈니스를 위한 가치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그건 단순히 소탈하거나 겸손한 성품의 차원이 아니라, 균형적이고 건강한 자아와 탈자아에 대한 기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말은 쉽지만 삶에 녹여내기에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반면 자아가 강한 리더들은 대게 교만해진다. 이미 그동안의 수십년의 고난을 뚫고 사회에서 높은 지위와 권력을 얻은 증거가 있는대다, 주위 사람들이 말리거나 무시함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는 추진력으로 성공한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자기 확신 편향이 강해진다. 그래서 대부분 자기 주장과 고집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선형적으로 커진 리더의 자아 중심으로 회사나 조직이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20대의 감성 트렌드가 중요한 스마트폰 디자인이 60대 사장님의 취향대로 나온다거나, 시민들이 진짜 원하는 법안이나 정책이 통과되지 않고 권력자들간의 이권 싸움으로 진흙탕이 되거나, 남의 글을 짜집기한 글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자아가 너무 센 것이다.  


이것은 나이나 지위 때문일수도 있지만, 한편 충분한 자아 탐험의 기회를 얻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외국, 특히 서양 사람들의 경우 어릴 때부터 충분한 자아 탐험의 경험을 쌓아서 그런지 자아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다. 자아, 커리어, 인생 등에 대한 강박이나 답답함 고민 등이 비교적 적달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해야 하는 것도 하고 하기 싫은 것도 하지 않는 등등 자아 탐험의 크고 작은 경험들을 어릴 때부터 숱하게 쌓아 왔을 것이고, 건강한 근육으로 작용할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 젊어서는 1단계만, 나이 들어서는 4단계만 경험한다. 자아 탐험의 근육을 기를 기회가 너무 적다. 사회 문화도 비선형적이고 다양한 삶의 패턴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가 똑같이 선형적인 방식만을 추구한다. 복잡한 진실보다는 쉬운 허구를 스스로 선택한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은 이렇게 확증 편향된 자아가 '대중화'되어 다시 사회가 선형화 되는 것이다. 개인의 자아 탐험은 결국 사회 구조의 문제로 확장된다.



3

자, 이제 자아의 탐험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자아 탐험의 5단계는 바로 나 스스로가 겪어온 길이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수능과 취업의 미션을 달성했지만 대기업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퇴사를 했다. 백수 시절 1년동안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해매었고, 창업을 하면서 해야 하는 것들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4단계와 5단계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작은 회사의 대표로서 창업가로서 경영자로서 나는 어느새 내 인생이 해야만 하는 것들 속에 (Must-World)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직은 짧은 사업의 경험이지만 여러 시행착오와 레슨런을 얻으며 결국 에고를 내려놓고 나보다 고객과 비즈니스를 더 우선시해야 함을 점점 깨달아 가고 있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팀원들도 이미 이러한 지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CTO와 개발팀 분들은 본인이 하고 싶은 기술보다는 사업적으로 더 빠르고 필요한 방식을 끊임없이 협의한다. 디자이너도 자신의 취향이 아닌 비즈니스의 브랜딩 관점에서 계속 고민한다. CGO 분도 본인의 주장보다는 고객과 데이터 근거 기반으로 팀원들을 설득하며 섬세하게 챙긴다. 우리팀 막내 매니저도 늘 배움을 우선하며 책임지려고 한다.   


오히려 CEO인 내가 가장 부족하다. 가장 자아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면서도 또 너무 자아가 없어도 안되는 정말 어려운 역할이다.

노자는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이미 이렇게 말을 많이 하였으니 나의 알지 못함을 들킨 셈이다.

그래도 내 부족한 자아를 들키는 부끄러움보다,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에 이렇게 글을 쓰며 스스로 점검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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