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어릴 때는 계획대로 될 줄 알았다.
요즘은 계획을 잘 세우는 자를 MBTI의 J 성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나는 어릴 때는 J와 P를 왔다 갔다 했지만, 일하면서는 거의 J로 굳히게 된 것 같다.
여행도 시간 단위로 장소 단위로 이동 동선과 여유 시간까지 고려하여 짜지 않으면 불안하다.
즉흥적인 변화와 돌발상황에 나름대로 열려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스트레스는 받는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처음 계획이 틀어졌을 때,
고3때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4당5락을 하며 공부했던 수능을 기어코 망치고
서울대를 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절망감은 무척 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란 사람은 내가 잘 하는 건 당연한 거라 큰 감흥이 없고,
반대로 못 하는 거나 실패하는 것은 정말 쪽팔리고 실망스러운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18년 동안 쌓아온 주위의 기대치와 사회적인 인정과 평판이 한 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무척 컸었던 것 같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의 인생 계획이 첫 번째로 크게 실패했다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실망감이 무척 컸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여차 저차 하여 B플랜인 연세대를 가게 되었고 그 때의 성취감과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후 전략 컨설팅 펌 입사를 계획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또 다시 B플랜인 삼성전자를 가게 되었고 이 역시 나름대로 나쁘지는 않았다.
이후 카이스트 사회적기업 MBA를 가고 싶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또 다시 컨설팅 펌 이직 준비를 2년여간 했지만, 역시나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최종 면접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퇴사 후 창업을 준비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오히려 계획에는 없던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을 받으며 글쓰기 쪽에도 무언가가 있을까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대상을 받고 100만 조회수를 기록한 '퇴사의 추억'을 출간했지만, 예상만큼 많이 팔리지 않았고, 그 이후 두 번째 출간한 '퇴사학교' 역시 당시의 관심도에 비해서는 생각보다 많이 팔리지 않았다. 원래 10,000부를 넘기면 인세를 12%로 올리기로 했었는데, 5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인세가 10%이니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창업을 했고 5년간 운영했지만, 역시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특히나 사업할 때는 정말 많은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빠르게 미션을 정하고 가설을 수립하고 테스트를 하고 기획에 반영하고 영업하고 실행하고, 정말 압축적이고 몰입적으로 매일 12시간씩 주 7일을 일하며 초반 1~2년을 달려왔던 것 같다. 그렇게 온갖 계획과 기획과 준비와 피드백과 레슨런과 크고 작은 성과와 결과물들을 만들어 내며, 또 그 속에서 극한의 스트레스와 번아웃과 피로를 축적하며 계획이 틀어지고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빵빵 터지는 삶을 5년여간 살아왔다.
일을 잘 하는 방법은 3가지이다.
1. 할 일을 정한다 (계획)
2. 정한 일을 한다 (실행)
3. 한 일을 돌아본다 (회고)
이 3가지만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반복한다면, 군살 없는 근육이 붙듯이, 일도 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들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우고, 실행을 빠르고 스마트하게 잘 하고, 그 때 그 때마다 postmortem을 하며 레슨런을 정리하고 피드백을 반영하더라도 - 안 하는 것보다야 100배 낫겠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란 것이 완벽하게 그렇게 목표달성이 되지 않는다.
하물며 인생은 더더욱 이렇게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인생의 계획과 결과는 더더욱 Gap이 크다.
20대까지는 계획과 전략이 있으면 그대로 될 것으로 희망한다.
30대 초중반까지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플랜B로 계속 전략을 수정하는 시기였던 것 같다.
30대 후반이 된 지금은 인생은 그냥 '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인생을 경험할수록 계획을 세워서 잘 된 사람은 찾기 힘들고, 오히려 계획을 세워도 잘 안되는 경우만 계속 보게 되고, 반대로 특별한 계획과 전략 없이도 운으로 잘 되는 경우도 점점 더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어차피 결과가 성공했으니, 그 때 사실 이런 계획과 전략과 마인드셋을 가지고 준비했다.. 라고 뒤늦게 결과론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경우가 정말 많다. 그래서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동기부여 자기계발 강의를 들어도 나는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그렇다면 모든 것이 다 운이라면 인간의 노력은 무의미한 것이냐, 그냥 실패한 사람들의 자기합리화 아니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이 더 옳고 그르다, 내가 맞고 틀리다, 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냥 누군가는 저렇게 경험하고 생각하며 자신 나름의 인생관을 쌓아 온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다른 관점을 가질 수도 있다.
다만 운 역시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긴대로 대충 살자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기대하며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돌아보면 그동안 내가 우매하고 미련하여 놓여 버린 기회들이 많다. 분명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분명 계획보다 더 좋은 결과가 가능했는데.
그리고 또 반대로 내가 계획하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것들이 선물처럼 쏟아질 때도 있었다. 내가 뭘 잘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그때는 운이 좋았다.. 라고 말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들.
이래서 나이를 먹으면, 무언가를 지나치게 기대하지도 않지만 또 지나치게 실망하지도 않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은 그저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지금 내게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면서 언젠가 올 무언가를 잠잠히 기다리고 있다.
1월은 1년 중 가장 많은 계획을 세우는 달이다.
다이어트와 영어교육 시장은 1월 매출이 연 매출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한다.
왜 새해는 겨울에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건 아마 새롭게 시작하는 봄을 기대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이제 벌써 1월도 다 지나고 곧 2월 초엔 입춘이다.
1월에 수많은 계획과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고 복잡한 시간을 보냈다면,
이제 봄을 기대하는 입춘이 있는 2월에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