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창업 초창기 때 같이 일하던 팀원 중 한 명은 특이하게도
평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아프다가 쉬고 나면
다시 월요일에는 다 나아서 열심히 일하다가 꼭 주말에는 다시 기운이 빠지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아마 일하는 것을 사랑하고 몰입하다가, 일 없는 주말이 되면 긴장이 풀리면서 늘어지고 할 일이 없다가
다시 월요일이 되면 에너지를 얻는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가졌었던 것 같다.
그만큼 일을 재밌게 했고 일을 통한 자아실현을 중요하게 여겼던 친구였다.
나도 창업을 하면서는 일이 곧 나였기 때문에 퇴근도 없고 주말도 없고 그냥 기회 되는 대로 계속 일을 생각하게 되는 삶이었고 그것이 딱히 큰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았다. (물론 일 말고, 다른 걸로는 스트레스 엄청 받아서 매일 번아웃이었지만)
그것이 창업가이자 대표라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나란 사람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인지는,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후자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그 때는 내가 대표니까 당연히 계속 일 생각이 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대표도 아닌데 계속 일 생각이 나는 걸 보니 그냥 나란 사람이 일이란 것을 한 번 시작하면 최선을 다 해서 몰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성향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워커홀릭이란 단어는 현대 사회의 피로사회의 폐단처럼 느껴지는 부정적인 단어로 흔히들 여기고 나 역시 과거에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최근 5년간의 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완연한 워커홀릭의 삶을 살아 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타의에 의해 일이 너무 많아서 워라벨도 못 챙기고 스스로 망가지면서 무리하고 남에게도 피해를 끼치면 당연히 잘못된 것이겠지만, 만약 자의에 의해 스스로 워라벨도 컨트롤 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주변에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도 무언가 나를 위한 자산을 쌓는 것이라면, 나는 건강한 워커홀릭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 원래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자가동력으로 몰입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누가 시키든 말든 보든 말든 일을 통해 성장하려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칸트는 행복의 3가지 조건으로
1. 할 일이 있고
2.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3. 희망이 있을 때
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현대 사회의 군대식 문화의 불합리함과 자율성 저하, 공허함과 무기력함, 그지 같은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일해야만 하는 그런 조직 문화만 아니라면,
일을 통한 성취감과 성장하는 경험,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인정과 명성, 보상과 자산으로서의 커리어를 쌓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최근에 문득 멕시코 어부와 MBA 사업가의 우화가 생각이 났는데, 모두가 익히 아는 스토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MBA 출신 사업가가 멕시코의 작은 어촌을 방문했다. 해변에서 어부가 물고기를 잡고 한가롭게 놀고 있었다.
"이 물고기를 잡는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얼마 안 걸렸죠. 잠깐이면 되요."
"왜 더 오래 배를 타면서 많은 고기를 잡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당장 가족들과 먹을 만큼 충분한데요."
"물고기를 잡지 않는 시간에는 무얼 합니까?"
"늦잠 자고, 고기 좀 잡고, 가족들이랑 좀 놀고, 친구들이랑 기타 치고 어슬렁 거리고 지내죠."
그러자 미국인 사업가가 제안을 했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더 많은 고기를 잡고 그 돈으로 더 큰 배를 사서, 더 많은 고기를 사고, 사업을 크게 벌여서 확장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어부는 다시 물었다.
"그게 얼마나 걸리죠?"
"한 15년에서 20년 걸리겠죠."
"그럼 그 다음엔 뭐하죠?"
"그 다음 은퇴해서 늦잠 자고, 가족들이랑 좀 놀고, 친구들이랑 기타 치고 어슬렁 거리며 지내는 거죠."
"내가 지금 그러고 있잖수?"
이 우화를 보며 예전에는 바쁜 사업가가 어리석고 여유로운 어부가 부러워 보였는데, 지금은 정 반대로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은 아마 어부처럼 평생을 한적하게 어슬렁 거리며 살라고 하면 답답하고 우울해서 못 살 것이다.
인생의 궁극의 목적이 은퇴하고 여유롭게 쉬는 거라면, 그것을 위해 돈을 벌고 일하는 과정은 그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고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찍부터 이미 백수도 해보고, 퇴사도 해보고, 창업도 해보고, 프리랜서도 해보고 나니, 나에게 행복은 먼 훗날 은퇴해서 한가로이 쉬는 것이 아니라, 칸트의 말처럼 지금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사업가는 어부가 알지 못하는 일의 즐거움을 깨달을 수 있다.
다양한 고기를 더 잘 잡는 법, 다양한 지역으로 고기잡이를 확장하는 법,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조직을 경영하고 동료와 파트너들을 사귀는 네트워크,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더 많은 일들을 조직을 통해 함께 하기,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고기잡이 노하우와 기술을 전파하고 그걸로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게 하기, 소비자가 더 맛있고 저렴하면서 다양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만들기, 세금을 내고 고용을 하며 국가 경제와 사회 복지에 도움되기, 고기잡이를 사업으로 확장하면서 경영과 매니지먼트, 더 많은 경험과 넓은 시야, 동료와 조직, 일을 통한 성장과 자아실현 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틈틈이 휴가 때마다 시골에서 한가로이 가족 친구들과 노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슨 내가 엄청 일만 하고 일에 미쳐서 일만 좋아하는 그런 건 또 아니고 일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그냥 적어도 이제는 연휴 마지막 날이나 일요일에 월요병이나 출근 스트레스는 별로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언젠가 여유 많은 어부이자 돈 많은 사업가가 동시에 되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