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던 날

by 티거 Jang


초등학교 5학년, 강릉에 살 때였다.

군부대 작은 아파트에선 열 걸음이면 동해였다.

아침이면 베란다로 떠오르는 태양이 내 등굣길을 배웅해 주던 시절이었다.



한 학년이 두 반뿐인 작은 학교였다. 같은 동네의 우리들은 우르르 같은 버스를 타고 다녔다.


아마 그때 그 아이를 처음 본 것 같다. 얼굴이 하얗고 눈이 투명한 아이였다.

알고 보니 우리 반이었다. 수업을 들을 때도 버스를 탈 때도 항상 그 아이가 어디 있는지 먼저 찾았던 것 같다.


주말에 교회를 갔는데 거기에도 그 아이가 있었다. 설교 시간엔 항상 그 애 뒷자리에 앉았다.

체육대회를 하던 날 그 애는 보라색 야구모자를 쓰고 왔다. 모자는 촌스럽지만 단발머리는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발야구 시간이었을까. 내가 최대한 폼 나게 킥을 날릴 때 그 애가 날 봤는지는 잘 모르겠다.

미술을 전공한 윗집 아주머니 댁에서 수채화를 배웠는데 거기에도 그 애가 있었다.

엄마가 내 생일이라고 애면글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 날, 온통 남자애들 틈에 여자애가 두어 명 있었다. 그 때도 왜 거기 그 애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시절 어딜 가나 그 아이가 있었고 난 항상 그 아이를 보았지만 우리는 눈 한번 마주친 적이 없었다.

연말을 맞이하여 반에서 연극을 하던 날, 극악한 테러범이었던 나는 비행기를 납치하고 승객들을 위협했다. 나는 하필 승객이던 그 아이의 머리를 쟁반으로 살짝 내려쳤다. 힘 조절을 잘 못했을까. 딱- 소리가 나자 그만 그 아인 눈물을 쏟았다. 말없이 훌쩍이던 그 아이에게 더듬더듬 괜찮냐는 한마디가 우리 대화의 전부였다.

그때는 말을 걸고 내 마음이 죄다 들켜버리면 인생이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유일하게 그 아이와 제대로 마주 본 적이 딱 한 번 있다.


전학 가던 날, 나는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부모님과 학교 운동장을 걸어 나왔다.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친구들이 전부 교실 창문을 열고,

"자알-가아-!"

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왈칵하여 같이 손을 흔들었고, 그때 그 아이를 보았다.

그 아인 친구들이 몰려있는 창문 구석에서 처음으로 나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