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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tageposting Jan 25. 2017

MAR ADENTRO(Sea Inside)

죽음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씨 인사이드 (Mar Adentro, 2004)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출연     하비에르 바르뎀, 벨렌 루에다, 롤라 두에냐스, 마벨 리베라...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안락사에 대한 영화이기는 하지만 결국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생명에 대한 각자의 철학적 고찰로 귀결되는 아주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자살은 불행한 일이고, 본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폭력이라 생각해 온 나에게, 영화 속 주인공은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다른 각도로 생각하게 한다.

정말로 고귀한 죽음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일생동안 많은 판단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자유의지에 의해 정하고 그 선택을 존중 받는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1969년, 세계보건기구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자살에 이르게 되는 동기는 989가지, 자살방법은 83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이미 40년 전의 기록이지만 적어도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주인공 라몬 샴페드로는 불운하게도 스스로는 그 83가지의 방법을 혼자서는 활용할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다. 그것도 침대에 26년을 누어만 있기에는 너무나 날카롭고 세련된 지성과 시니컬한 위트를 지닌 매력적인 인물이다. 맨 처음 scene에서 그가 듣던 음악이 예술, 철학, 문학에 거쳐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바그너의 것이라는 점만 보아도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그의 캐릭터가 쉽게 다가왔다. 그러기에 고귀한 자신의 죽음을 위해 법적 투쟁까지 불사하고 끝까지 흔들림 없이 실행에 옮겼던 그의 용기는 세상에 맞선 투사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결국 그의 주장은 법정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이 시점에서 나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속상해야할 지 판단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영화는 그렇게 나를 밑바닥까지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어디선가 읽은 셰익스피어의 구절이 생각났다.


"죽음이 저절로 우리를 찾아오기 전에 죽음의 비밀스런 집에 달려 들어가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란 말인가?"


그를 비밀스런 집으로 안내하는 사람은 라몬을 사랑하는 순수한 로사이다. 이 순진한 시골 여공은 과연 그를 진심으로 이해했을까? 나중에 후회는 하지 않았을까? 감독은 끝까지 찬반의 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고 보는 이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둔다. 필요 없는 감정의 사족을 달지 않았으니까. 마지막 순간까지도 감정을 억누르고 냉철하게 자신의 뜻한 바를 실행하는 라몬의 작은 떨림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큰 파장으로 흐느끼게 한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자살하는 사람들은 오랜 사고와 철학 덕택에 최후의 행동을 존엄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고상하게 감행하는 현명한 사람들이다."_알퐁스 라베


그는 과연 현명한 판단을 한 것일까? 해답을 내놓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이지만 라몬역의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는 옳고 그름을 떠나 그를 숭고하게 보이게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라몬은 "삶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현재의 비참함이나 타인의 죄를 피하기 위해서든 자신의 희망 때문이든 누구에게도 자살할 권리는 없다."라고 말한 성 어거스틴의 말과 극렬히 대비된다. 라몬의 이야기는 정치적이면서 종교적이고, 그리고 철학적인 모든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런 통찰력이 나를 전율케 한다.     


"자살은 애수 어린 한 편의 시이다. 감정을 죽인 채 늙을 때까지 생명을 연장하든가 열정의 순교를 받아들여 젊어서 죽기, 이것이 우리 삶의 숙명이다."_발자크


라몬은 죽기 전에 그 동안 그가 써온 시를 모아 한 권의 책을 남긴다. 어차피 죽기를 갈망하면서 책을 낸다는 것은 그에게 무슨 의미일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라몬은 우울증 환자도 아니었고, 염세주의자도, 허무주의자도, 비관론자도 아니었다. 그는 가족들을 사랑했고 그의 작은 방에서 바라 본 세상을 아름다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죽음을 통한 자신의 자유에 대한 의지를 꿈꿨다. 어쩌면 라몬은 시를 남김으로써 두고 가는 삶에 대한 죄책감을 대신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들이 꽤 오래 잔상으로 남는다.   

         

삶을 배제한 자유는 자유가 아닙니다.

자유를 배제한 삶도 삶이 아닙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내가 존엄하게 죽도록 도와주십시오.

...

죽음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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