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용 약물도 오남용 시 위험할 수 있습니다.
3년 전 쯤 불면증이 생겼다. 간헐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점점 잠에 못 드는 날이 많아졌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온갖 잡생각이 끊이지를 않았다. 겨우 잠에 들어도 깨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자는 것도 안 자는 것도 아닌 상태로 밤을 보내니 부족할 내일의 에너지에 대한 걱정까지 덤으로 들면서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희미한 소음도 사라지는 새벽의 고요가 시작되면,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밤이 깊어갈수록 내 걱정도 깊어졌다. 아침이 밝아오는 걸 체감할 때쯤에는 에너지가 닳아 너덜너덜한 몸을 이끌고 출근 준비를 했다.
불면증이 업무를 포함하여 내 일상에 꽤 많은 지장을 주는 것 같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수면유도제라고, 별도 병원 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입 가능한 약이 있다고 해서 고민 없이 구입했다.
수면유도제가 도움이 되는 경우도, 안 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못 자면 다음 날을 좀비 상태로 보내야 하는 것이 싫어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보려다 안 되겠다 싶으면 플라시보 효과라도 기대하며 대수롭지 않게 약을 삼켰다.
사실 겉포장만 대충 훑어보아도 이 약은 수면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용도가 아니며 장기간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연히 나는 그걸 무시했으니 지금 이 수기를 쓰고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안내를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먹어댔으니 약에 대해 금방 내성 같은 것이 생겼고, 복용법은 1일 1회 1 정이지만 ‘병원 약이 아니니까 몸에 크게 작용하진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2~3정을 한 번에 삼키기도 했다. 정해진 복용량을 넘기면 다음날 오전까지도 살짝 멍한 상태로 있기도 하였는데, 못 자느니 그게 낫다고 여겼던 나는 버릇처럼 약을 먹고 누웠다.
그렇게 한 1년간은 영양제 마냥 필요하다 싶을 때마다 복용하였는데, 복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초기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건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시키는 약이니 여태 내 몸에 내성만 쌓은 셈이었다.
불면증 이전부터 나에게 어떤 다른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그러나 조금 더 어렸던 그때는 왜인지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나에게 정신적인 이상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가 있어도 애써 외면해 왔다. 스트레스에 대한 내구가 떨어지고 어떨 때는 정도에 따라 극심한 우울감을 느끼고 제어가 안 되는 상태로 공황이 올 때도 있다. 증상들을 겪으면서 내 상태가 정상적 범주를 넘어섰구나 생각을 한 뒤에서야 고집을 버리고 병원에 갔다.
정신과 진단 결과, 우울증 수치도 높게 나왔고, 불면증의 원인도 결국 이와 유관한 것이었다. 병원 처방 약을 받아와 약품 정보를 검색해 보니 대부분 항우울제나 신경안정제 등의 정신신경용제 계열이었다. 정신과에서는 진료 후 증상의 정도에 따라 용량을 조절하여 약을 처방해 주는데, 안내에 따라 약을 복용하면서 어느 정도 호전되었다. 그러다가도 힘들어지면 용법과 용량을 무시하고 오남용 한 적도 있었는데 이 부주의가 나중에 후폭풍을 크게 몰고 오게 된다.
한 번은 처방 약을 과다 복용하여 소위 ‘블랙아웃’이라고 하는 기억상실도 겪기도 하였다. 우울증세가 너무 심하고 약을 복용해도 잠이 오지 않아 단지 ‘잠을 자고 싶어서’ 며칠 분을 한꺼번에 먹고 잠자리에 누웠을 뿐인데 깨고 보니 약 이틀이 지나있었고, 나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그사이의 기억은 전혀 없다.
퇴원 전 담당 의사에게서 조치가 늦었으면 호흡 이상으로 폐 기능 일부를 상실했을 수도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위험할 정도의 양을 먹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집에 돌아와 정황을 살펴보니 약을 먹고 자리에 누워 잠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의식만 잃고 몸은 움직일 수 있어서 이성적 판단이 전혀 안 되는 상태로 집 안을 돌아다니면 당시 처방 분이 아닌 약과 일반 상비약까지 약이란 약은 다 털어먹었던 것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까지 전혀 없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약에 대한 의존을 그만두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지금 당장의 내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급했던 어느 날의 나는 결국 더 큰 사고를 내고 만다.
2022년 8월 중순, 저번 입원사건 이후 정신과 약에 대한 경계를 하던 나는 나름 대안이랍시고 또다시 약국에서 수면유도제를 구입하게 된다. 이전과 같이 수면에 좀 도움을 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복용했는데, 정신과 약 복용 전적이 있다 보니 수면유도제 효과가 미미한 것처럼 느껴졌다. 한 정을 더 먹었다. 몇 정을 더 먹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개수를 세지 않았고 결국은 정상 용량의 10배에 달하는 양을 먹고 말았다. 이때의 마지막 기억은 약을 먹으려고 물을 계속 마신 탓에 속이 좀 메스껍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또다시 블랙아웃이 되었다. 의식을 찾고 마주한 현실은 이전보다 더 참혹했다. 무의식의 나는 잘하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또 집에 있는 약이란 약은 있는 대로 입에 털어 넣었던 것이다. 그 상태로 집을 헤집고 다니다 결국은 2층 높이에서 떨어져 골반이 골절되었다. 누군가 추락 신고를 하였고, 경찰이 출동하고 나는 병원으로 실려 가서 소변줄을 차고 침대에 고정되었다. 그 와중에 죄송스럽게도 내가 의료진들께, 가족에게도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대었다고 한다. 병원에 와서까지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나서 사고 당시 남은 흔적과 당시 같이 있었던 사람의 설명에도 그때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입원해서 밥도 먹고 대화도 하고 전화 통화도 하고 온갖 검사를 하며 이틀을 보냈는데 그때의 기억이 역시 흐릿했다. 의식을 찾았다고 생각한 그 당시에도 약은 체내에 남아 작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많은 양을 복용한지라 반감기도 길었고, 그 기간 동안 뇌 기능 일부는 정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주 오래 지난 지금도 그 당시의 연속된 기억은 없다. 계단에서 떨어질 때 순간적으로 느꼈던 공포, 병원에서 이상 행동할 때 본능적으로 느꼈던 이질감과 비현실감 정도만이 머릿속에 점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처방 의약품, 의료용 약물도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한다면 나도 모르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를 죽일 수 있다. 약물에 의해 의식을 상실하고 신체에 대한 제어 능력을 박탈당하면 그 순간 나 자신을 잃게 된다.
직접 겪지 않아도 알고 있어야 하지만, 바보 같은 선택으로 끔찍한 경험을 했던 나는 괜히 걱정이 많다. 혹여 어딘가에 나와 같은 행동을 할 사람이 있을까 봐. 그래서 참 많이 부끄럽지만 글을 쓰게 되었다.
내 사례를 읽고 약물 오남용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길 바라고, 내게 일어난 이 사건사고를 당신은 절대로 겪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