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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재였던 서은우 Jul 08. 2024

내가 겪었던 데이트 폭력 2

폭행

불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으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간단한 술자리 후 파하기로 했는데, 종종 그랬듯이 그날도 술에 취한 남자친구를 나 혼자서는 챙길 수 없다는 것을 그의 친구도 알고 있어서 집이 먼데도 남아서 나를 도왔다.


그날 밤의 이태원 거리는 놀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었다. 나는 술을 더 마시겠다는 내 남자친구를 달랬다. 누군가 그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거나 안 좋게 소문낼까 봐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길거리 복판에서 소란을 피우자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고, 조급해진 내가 빨리 집에 가자며 그를 잡았다.


그 순간 그는 내 이마를 손바닥으로 세게 밀쳤고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놀라 소리를 질렀고, 넘어진 나를 못 본 건지 안 본 건지 그는 재빠르게 걸어 사라졌다. 몇 걸음 뒤에 있던 그의 친구가 달려와 나를 일으켜 주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나보다도 남자친구보다도 나이가 어린 친구 앞에서 울기 싫어서 꾹 참고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프고 슬프고 화나고 비참하고, 창피했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창피했을까?

왜 내가 창피함을 느꼈을까?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들도 혹시 창피함을 느끼고 있을까?

그래서 숨기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까?


나는 창피했다.

그래서 방치했다.

그러다 결국 몇 달 후에 또다시 그에게 밀어 넘어뜨려진 나는 병원에 갔고 양 무릎 찰과상, 한쪽 발목 부종 진단을 받았다.

진료 중 다친 이유를 묻길래 사실대로 말했더니 의사는 신고 방법 같은 걸 알려주었다. 내가 당황하여 괜찮다고 알아서 할 수 있다고 하자 이런 이유로 내원한 환자에게 안내는 의무사항이라며 설명을 계속하셨고 나는 왠지 또 창피함에 사로잡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아닌데. 내 남자친구는 신고할 만큼은 아닌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는 멍과 흉터를 보면서 다친 곳이 다 나으면 내 마음이 아픈 것도 나아질 거라 믿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엄마에게 털어놓았더니 엄마가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왜 엄마아빠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창피했으니까.

걱정시키기 싫었으니까. 엄마아빠가 딸이 남자친구에게 맞는다는 사실을 모르게 하고 싶었으니까.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친구들도 얘기했다.

“누나, 내가 그 형이랑 헤어졌으면 하는 눈치를 그렇게 많이 줬었는데...”

“나는 언니가 그 사람이랑 헤어지길 바랐었어.“

“우리는 너를 계속 말리고 싶었었어.“

사실 나도 알았다.

늘 괜찮은 척하는 나를 보며 짓는 친구들의 씁쓸한 표정을, 내가 상처받지 않게 한참을 뜸 들이고 돌려 말하는 그 조심스러움과 걱정을.

못 본 척, 못 알아듣는 척했을 뿐이다.

아마 당시의 나라면 그럴수록 더 괜찮은 척했을 것이다.

창피했으니까.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전에 만난 여자친구를 폭행한 적이 있지만 그건 그녀가 잘못했었기 때문이라며 직접 해준 말을 나는 왜 흘려 들었을까.

그에게 나는 특별하다고,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하면서 잘해주는 모습을 더 자주 보여주어서 ‘나에게는 안 그러겠지’라며 레드플래그를 외면했던 걸까.


사람들은 나더러 자업자득이라 비난할 것이고 일부는 동정할 테지만 나에게 비난보다 욕보다 싫은 것이 동정이다.

창피하니까.

그렇다. 여기서까지도 나는 창피해한다.


언제쯤 창피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언제가 되어야 비슷한 고통을 받고 있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창피해하지 말라고,

본인이 받는 상처와 위험신호를 외면하지 말라고 설득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데이트폭력을 겪는다면, 도움을 청하세요.

112 또는 여성긴급전화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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