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예정대로라면 빌바오 구겐하임 앞에 있어야 했다. 어제 빌바오행 비행기를 놓쳤다. 구입가보다 더 비싼 교환비용과 하루 호텔비를 날렸지만, 대신 바르셀로나에 하루 묵게 되었다
여행 전 증후군일까나, 이번 여행은 특히 더 오기 싫었다. 유독 심했다. 항공 취소 버튼을 두 번이나 누르기 직전까지. 귀찮았고 피곤했고 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행 가기 싫다’는 그 생각이 이번 여행을 오게 만든 힘이다. ‘앞으로는 여행이 더 귀찮을 거야. ‘ ‘내년에는 더 싫을 거야. 이런 게 늙는 마음이구나. ‘ 머리가 세고 피부가 늘어질망정 마음이 늙을 수는 없었다. 하지 말라고 하게 되는 그런 마음이 내겐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내 인생의 오 할은 반동이었다. 아참. 페북에 여행기도 써야 한다.
원래 계획했던 일정에서 이틀을 줄이고도 두 도시로 좁혔다. 바르셀로나는 계획에 없었다. 십오 년 전에 왔었으니까. 가우디를 보러 왔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구엘공원을 보고 감탄했지만, 정작 미스 반데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 꽂혀, 카사 밀로와 카사 바트요는 패스했다. 놓친 비행기 덕분에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로를 보고 간다.
카사 바트요 앞에서 휴대폰을 바꾸지 않은걸 후회한다. ‘어차피 깨질걸’하며 액정이 다 부서진 채로 몇 개월을 버텼는데도, 이 광경만은 좋은 카메라로 담고 싶다. 어차피 또 박을 텐데 하고 일 년 넘게 고치지 않은 차의 범퍼도 바꿔야 한다. '어차피... 할 텐데' 라고 생각하면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벤치에 앉아 가우디를 바라보며, 아이폰과 두고 온 차를 생각했다.
목재와 철과 돌의 조화. 가우디는 디테일의 끝판왕이다. 내부 풍경에 감탄하다 가우디와 같이 일했을 목수를 염려한다. 이런 디테일을 상상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만들어낸 그 역시 대단한 사람. 하지만 무지하게 힘들었겠지. 장수하진 못하셨을 거야.
카사 밀로에 이르렀다.
앞에서 잠시 생각했다.
바르셀로나에 또 올 수 있을까?
다음을 위해 카사 밀로는 남겨둬야 했을까? 여행 오기 싫어했던 나를 그새 까드시고 이런 상상을 한다.
여행은 오길 잘했고, 비행기는 놓치길 잘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한 카사 밀라는 정말 좋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차장. 천구백 년 초반에 지어진 주차장이 백십 년이 지난 요즘의 주차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훨씬 힙하다. 이런 주차장에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를 구경한 뒤 급하게 예약한 바르셀로나 트립어드바이저 넘버 2 점심까지는 2시간이나 남았다. 그냥 걷기로 했다. 방금 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아파트 두 채를 보고 온 내게는 아파트만 보였다. 가우디 디엔에이인 건지, 이 동네 아파트는 너무 이쁘고 다르다. 십오 년 전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다양성에 눈뜨게 된 건, 미국지사에서 일하면서부터다. 회사는 LACMA 옆이었고, 난 그 뒤에 살아서 가끔 걸어 다녔는데, 이십 분쯤 걸리는 그 길엔 정말 많은 꽃들이 있었다. 어느 날 재미 삼아 세보았는데, 서른이 넘었다. 그전엔 봄이면 개나리, 진달래, 벚꽃에 목련이 다인 줄 알고 살았었다.
바르셀로나 아파트는 다양했다. 색감도. 발코니도. 우리나라에선 절이나 가야 볼 수 있는 석조 부각도. 문득 서울의 아파트를 떠올렸다. 뭐가 다르더라? 음. 평당 단가가 다르긴 하지.
다른 평수와 단가만이 다른, 그저 비슷한 디자인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색감과 디자인에 눈뜨기 전에 ‘자본”에 먼저 눈을 뜬다. 친구가 어느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지, 몇 평에 사는지 다 알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넘버 2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풀붘드라고 라고 해서 저스트 원이니 어떻게 안 되겠냐고 매달렸더니 바에 자리가 하나 있다 했다. 신나서 왔는데, 바라고 하기엔.... 카운터에 가깝다. 밥 먹다말고 다른 사람들 계산을 해줘야 할 것 같은.
가장 인기 있는 타파를 추천해달라 했더니, 못 먹는 게 있냐 묻는다. “없지. 당연. "
그럼 오늘 모험심을 발휘해보라며 추천한 메뉴는 고등어 초회, 호박과 염소치즈, 문어와 돼지비계. 그리고 양고기. 터질 것 같지만, 괜찮다. 언제 또 오겠나. 기억하나, 아침까지 어차피... 였다. 이것이 여행의 힘.
비 오는 바르셀로나에서
까바와 와인을 비우고 있다.
오늘은 정말 빌바오에 가야 한다.
빌바오에 오긴 왔다
9.1 유로와 와인 한 병을 들고.
한밤중에.
이번 바르셀로나엔 잊지 못할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은 트립어드바이저 넘버 2 레스토랑에서 계산을 하려 지갑을 열었을 때였다. 지갑이 허했다. 지갑엔 단 십오 유로만 있었다. 단 십오 유로. 이만 원. 여행 두 번째 날이었다.
현실을 직시하는 데에는 5초 정도 소요됐다. 5초간 나는 100을 10으로 보고 있지는 않나, 갑자기 극단적 난시에 걸리지는 않았나 자책하며 지갑을 뒤졌다. 지갑에 숨겨진 주머니가 더 있을지도 몰랐다. 일분쯤 후에야 당한 걸 인정했다.
하나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혹은 그녀가 1) 내 지갑을 꺼내서 2) 백유로, 오십 유로 지폐들만 뺀 후 3) 다시 가방에 넣어둘 때까지. 그 섬세한 기술은 마치 마술 같았다. 배려심이 어찌나 깊으신지, 지갑째 가져가시거나 현금을 통째로 가져가시는 대신 공항으로 갈 나를 위해 십오 유로나 남겨주셨던 거다. 브라보. 바르셀로나는 진심 멋진 곳이었구나. 낭만적인 곳이었어.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을 살 돈도 없었다
올해 가장 큰 깨달음은 내 욕심의 정체였다며, 욕심을 버리러 여행을 간다고 떠들어댔다. 욕심을 마주하고 버리기도 전에, 돈을 버리고 있다. 어제는 항공료와 호텔비를 버리더니, 이젠 현금을 날렸다. 어쩌면 내 욕심의 정체는 돈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바르셀로나의 마술사가 알려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공항버스를 타고나니 지폐 하나와 동전 네 개 9.1 유로 남았다. 일단 빌바오의 디너 예약은 취소하기로 한다. 항공이 두 시간이나 연착하는 바람에 핑계도 생겼다. 신용카드로 와인 한 병을 샀다.
그리하여,
산 넘고 바다 건너서
9.1유로와 와인 한 병,
욕심은 가득 든 채로
빌바오에 도착했다.
아침을 먹고 카드로 계산하려는데 현금만 된단다.어제 공항버스와 아침을 먹고 나니,이제 천원도 안 남았다
이번 여행은 꽤 드라마틱할 것 같다.
선생님, 혹시나 제 걱정은 마세요. 현금은 비록 오백 원도 안되지만, 제겐 신용카드가 두장이나 있잖아요. 비록 해외 현금 서비스를 막아놓은 카드긴 하지만요. (진짜 어이없죠? 이걸 한국시간으로 월요일이나 돼야 풀 수 있답니다. 그때까지는 개털) 어찌 되었건 전 핀초스 바 두 군데를 거쳐 와인 2잔과 3개의 핀초를 삼키고, 게리를 앞에 두고 세 번째 와인과 2개의 핀초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구겐하임 빌바오 아니 프랭크 게리가 이 동네에 온 이유입니다. 아침 산책길에 첨 봤을 때에는 디즈니 콘서트홀과 별 다를 바가 없잖아 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다르더라고요. 구겐하임 빌바오는 확실히, 이 도시의 주인공입니다. 네르비온 강변의 이 건물은 도시를 장악합니다. 주인공을 오로지 돋보이게 평범하고 소박한 표정의 주변 건물들도, 보타를 다각적인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설계된 교각조차도.
엘에이에서의 디즈니홀은 화려했지만 도시의 주인공이라고는 할 수 없었어요. 원톱을 허용하기엔 도시 자체가 화려하기도 했고. 하나를 꼽으라면 리처드 마이어의 게티를 뽑겠어요. 게티는 같이 있기만 해도 내가 특별 해질 것 같은 사람이라면, 디즈니홀은 ‘도대체 저 여자가 어떻게 저렇게 멋진 남자랑 다니지? ‘하는 따가운 눈길을 받게 하는 남자 같았거든요. 아무리 깊은 사랑도 자존감을 갉아먹는 데에는 버티지 못하니까요.
우리 주변엔 항상 주인공이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죠. 첨엔 흥미롭지만 이분들은 쉽게 싫증이 나곤 합니다. 무슨 화제로 시작해도 결국 자기중심인 화제로 흐르게 만들죠. 누군가의 결혼이나 생일파티에 가도 주목을 받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는 주인공이지만 때로는 조연, 어쩌면 더 많이는 엑스트라이기도 합니다. 그걸 인정하면서 어른이 되죠.
주인공인 사람들은 관심이 흩어지는 걸 참지 못해요. 조연도 때론 멋있을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해요. 넘버 원 배우도 때론 인디영화에 출연해서 스펙트럼을 넓히기도 하고, 짧게 출연해도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기는 씬스틸러도 있는데 말이죠. 이런 분들은 만남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뭔가 힘이 듭니다. 누구나 때론 하고 싶은 자기 이야기가 있잖아요. 저도 꽤 오래 주인공 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하도 남의 말을 안 들어서 경청을 세 번이나 선물 받았잖아요)
예외는 있어요.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존재감이 큰 사람. 조용히 있어도 시선을 모으는 사람. 누구나 저 사람이 주인공이려니 하는 그 사람.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게 만드는 사람) 빌바오에선 단연 구겐하임입니다.
신청한 투어 시간까지는 30분 남았어요. 빌바오의 주인공과의 만남이 오랜만에 설렙니다. 마침 고호와 피카소전이네요. 일생이 주인공인 사람들입니다.
선생님, 오늘 산 세바스티안으로 가는 N240 위의 느릿느릿 빨간 차는 저예요. 그 길을 지나가셨다면 절 추월하셨겠죠.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 고속도로를 나왔을 때보다 더 떨렸거든요. 폭스바겐의 골픈 줄 알고 빌린 차는 열쇠를 받고 주차장에 내 혀 갔을 때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빨간 차로 바뀌어 있었어요. 이 신기한 브랜드의 차 브레이크를 밟는 게 영 익숙해지지 않더라고요. 80 이상 밟기가 너무 무서웠어요 다행히 도로는 한적했고 운전자들은 추월차선으로 절 지나갔습니다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지 않았어요. 한국이었다면, 아아,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좀 밟았으면 한 시간이면 도착할 길을 거의 두 시간을 걸려 도착했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비가 오기 전에 도착한 게 어디냐며, 운이 좋아’ 기뻐했던 것도 잠시, 골목 곳곳을 경찰이 길을 막고 있는 겁니다 산세바스티안은 마라톤이 열리는 도시였던 거죠. 하필, 제가 도착할 그때가 도착선이었던 겁니다.
몇 바퀴를 돌고서야 호텔이 위치한 해안도로가 전면 통제라는 걸 알았어요. 파킹하고 걸어가는 방법뿐이라길래, 파킹 할 곳을 찾았지만, 모든 파킹랏이 꽉 찬 상태. 다시 몇 바퀴를 돌면서 생각했어요. 왜 저는 기차나 버스로 오지 않았던 걸까요? 저는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로 날아오지 않았던 걸까요? 왜 전 산 세바스티안에 오기로 했던 거죠??
모든 것은 아두이노 때문이에요. 정확하게는 아두이노의 코 파운더인 데이비드 쿠아르틸레스 때문입니다. 이 년 전 행사에서 그와 아침을 먹었는데, 추천하고 싶은 스페인 여행지가 있냐고 제가 물었죠. 스웨덴에 살지만 그는 스페인 출신이었거든요.
“여행에서 주로 무얼 하죠?”
음. 맛있는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해요.
그가 단호히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산 세바스티안”
그의 어조에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1이라도 섞여 있었다면, 전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거예요.
산 세바스티안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미식의 도시입니다. 먹고 노는 걸 좋아하는 제겐 딱인 도시. 그런데, 한 곳에만 머물자니, ‘지루할 것’ 같더라고요. 빌바오, 로그로뇨, 바르셀로나를 엮어서 스케줄을 짰죠. 여행 직전에 로그로뇨와 바르셀로나를 취소했지만요. 아시다시피 운명적으로 바르셀로나에 머물러 현찰을 다 뜯기고, 몹시 흥미로운 인생이 된 바 있습니다. '지루함'의 반대말은 '재미있다'가 아닌 가봐요. 개고생 한다. 개털 된다. 개망한다와 같은 단어들도 있어요. (도저히 '개'를 빼고는 오늘을 설명할 수 없어요)
주차하는데도 한 시간은 걸렸을 거예요 더는 이 도시에서 차를 운전할 일은 없겠다 싶어 바로 차를 반납하고 예약해둔 식당으로 갔습니다. 빌바오를 떠나기 전에 여기저기 예약 메일을 보내 뒀거든요 한 곳에서 답장이 왔습니다 트랩어드바이저에서 강추하는 식당이었죠. 하지만 문을 열었을 때, 식당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멕시코 민속악단 연주자 같은 생김새와 의상의 셰프가 메뉴판을 주며, '너 아니? 우리 식당은 모두 오가닉이야' 할 때쯤 이 집이 맛있을 거라는 기대는 반쯤 접었습니다. 나머지 반은 압도적인 초록빛의 요리가 나왔을 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하고 트랩어드바이저를 다시 찬찬히 읽어봤더니 비건 레스토랑이더라고요 비건의 지지로 상위권에 랭크된 게 틀림없습니다. 비건의 인생은 제 인생이 아니더라고요.
요리는, 흠 미역 줄거리 나물(실제론 껍질 콩 새우볶음) 같았습니다 미역 줄거리 나물 훌륭하죠 그건 밥이나 국, 다른 반찬과 같이 먹을 때죠 미역 줄거리만 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왜 미식의 도시 산세바스티안에서 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겁니까?
작년 포르투갈이 그리워졌습니다. 그곳은 소박하고 따듯했거든요. 사람들은 친절했고요. 음식엔 단백질이 가득했고요. 바르셀로나에서 돈뜯겨, 이상한 스페인 차에서 조리돌림 당하고 온 저에게 이럴 순 없는 겁니다. 미역 줄거리를 먹으면서, 생각했어요. 포르투갈 포레버, 스페인 망해라. 만일 스페인 국가대표팀과 포르투갈 대표팀이 축구를 한다면 난 포르투갈을 응원하겠다고요 네. 전 한일전도 본 적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포르투갈이 스페인보다 더 좋다기보다, 작년의 제 운이 올해의 제운보다 더 좋았기 때문 일지도 몰라요. 여행지의 운이라기보다는 오로지 제 운의 탓일지도요.
산세바스티안의 풍경만큼은 기똥차게 멋지네요. 이곳이 이번 여행의 데스티네이션. 가기 전엔 좋은 기억이 한두 개쯤 생기겠죠.
빌 브라이슨은 말했다.
"나는 여행지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것보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일이 어디 있을까? 여행자는 갑자기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간신히 눈치로 알 수 있을 뿐이며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을지 조차 장담할 수 없다. 존재 자체가 연이은 추측을 통해서나 가능할 뿐이다."
저 역시 알고 싶지 않군요. 제 존재에 대해서 '한국에서 온 호구'라고 주변에서 떠들고 있을 것 같은 연이은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이니까요.
페이스북을 하지 않아, 그간의 사정을 알 리 없는 목양에게 전화가 왔다. 여행이 어떠냐는 그의 물음에, 사정을 읊었다. 혀를 차던 그녀가 그래도 날씨는 좋지 않냐 했다. '좋긴커녕 비바람이 몰아친다, 열라 춥다' 했더니, 잠시 침묵했고 이렇게 말했다. " 네가 가서 그렇잖아. 이것아."
정말 내가 와서 일까? 산세바스티안에는 지금 비바람이 세게 분다 호텔에서 우산을 빌려 나갔다가 바로 돌아왔다. 사십오도 각도로 우산을 쓰고 문을 나서는데, 아니,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우산이 찌그러뜨리면서, 스페인 바람과 맞서겠나.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로 시작하면, 역시 할 수 있는 행동은 없다. 에이티엠기까지만 다녀왔다. 아침에 해외 현금서비스 제한을 9,128.9원의 국제전화로 풀었다.(국제전화비도 더럽게 비싸다)
현금이 없다는 것은 여행자를 위축시킨다. 빌바오에서 아침식사로 4.5 유로 현금을 털린 이후로는 식당에 들어설 때 카드기가 있는지 확인하게 되고, 뭐 대부분 식당에는 카드기가 있긴하지만 '잔돈은 필요 없어'와 같은 허세쩌는 여행자 역할을 할 수 없다. 고작 2유로짜리 핀초를 사도 사인을 해야 한다. 유럽의 식료품 가게나 과일가게의 화려한 색채도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사과 하나 살 수 없으니까. 지중해의 햇빛으로 노화된 시장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카드 되나요?' 묻기도 미안하고, 하지만 정작 불편한 것은 다른 데 있다.
빌바오에 도착해서 호텔 체크인을 하고 뒤를 돌아보니 내 여행가방이 안보였다. 얘마저도 가져간 걸까 하고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데, 오래된 호텔의 친절해 보이는 포터 아저씨가 이미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전 현금이 500원도 없단 말이에요. '하고 가방을 빼앗아 올라가고 싶었지만, 잠자코 그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놓고 미소 짓는 아저씨에게, 지갑이 털려서 줄 팁이 없다. 죄송하다고 말했을 때의 그의 미소는 짐작할 수 없었다. 팁을 줄 수 없는 여행자라는 현실은 생각보다 부끄러웠다. 바르셀로나에서 다 털림'이라고 옷 뒤에 써붙일 수도 없고. 그리고 앞으로 호텔방의 팁은 어찌하나와 같은 근심에 싸였다. 그리하여 최대한 방을 덜 어지르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나서는 쭈그리고 앉아서 머리카락을 주웠고, 컵을 닦았다. 회사 책상도 일 년에 두 번 치우는데, 스페인 호텔방을 치우고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느새 내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여행은 왜 하는가?'
일찍이 은희경은 그녀의 소설에서 여자 나이 스물여섯이 되면, 결혼하는 여자와 여행하는 여자로 나뉜다고 했다. 그 문장을 보자마자 생각했다. 난 여행하는 여자 쪽이구나. 여행은 참 오래 다닌 것 같다. 한때 여행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해방구였다. 세상이 정말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구나. 언젠가 이런 곳에 살 수 있을까 하는 꿈을 꾸는. 이젠 그렇지는 않다. 지금은 무언가 버리기 위해서 여행을 간다.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위해서 여행을 가기도 했고, 너무 많은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 나를 잡아 삼키는 스트레스들을 놓기 위해서. 그리고 욕심을. 하하하 어쩌면 돈을 버리기 위해서 여행을 가는지도. 생활하는 곳에서는 집착에서, 생각에서, 스트레스에서, 욕심에서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동안은 운이 좋았던 편이었던 것 같다. 돌아오던 길은 언제나 가뿐했다. 다음번 여행을 위해서 다시 열심히 살자고 생각했었지만, 이번은, 글쎄요. 이번엔 어떤 기분으로 돌아가게 될까? 모르겠다. 아무려나 밖에도 나갈 수 없으니, 호텔 바에서 와인이나 한잔 해야겠다. 스페인 와인은 꽤 좋다. 게다가 지금은 아침 열 시. 이것이 여행의 묘미.
사실 어제 새벽 서울로 가는 비행기 편을 알아보았다. 도대체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 우울감과 함께 도노스티아 해변의 파도같이 밀어닥쳤다.
기대했던 스페인의 음식들은 찬 음식이 많았다. 비 내리는 음습한 11월엔 뜨거운 국물을 먹어줘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왜 목포나 통영에 가지 않았나? 왜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여기까지 왔나? 따뜻한 곰탕에 깍두기 올려 먹는 상상에 이르자, 절로 핸드폰으로 항공편 검색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시아나 항공의 바르셀로나- 인천은 매진이었다.
다행이었다. 표를 바꾸지 않은 것은. 저녁부터 서울에서 일과 관련한 카톡이 오기 시작하자, 비로소 내가 일상을 떠난 것은 일시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돌아가야 한다. 바르셀로나의 마술사나, 차가운 스페인 음식 따위에 불평할 때가 아니다. 일상에 돌아가서, 가차 없이 휘말리게 되면, 스페인에서 먹다 남긴 딱딱한 빵 쪼가리도 그리워지게 될 것이다. 여행은 어떤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떠나는 데 있다.
일종의 슬럼프였다. 전날 삼시 세 끼를 다 먹었는데, 문제는, 시차에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삼시 세 끼는 이랬다. 8시 아침 (서울 오후 4시), 1시 점심 ( 오후 9시), 8시 저녁 (새벽 4시) 저녁은 먹지 말았어야 했다. 한 숟갈 한 숟갈이 고역이었다. 그런데도 먹었던 것이다. ‘언제 또 오겠나’가 수저를 움직였다. 여기까지 오는데 든 비행기 값과 호텔값, 털린 현금이 내게 과식을 재촉했다. 그리하여, 난 밤새도록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터질 것 같은 통증에 잠을 설쳤던 것이다. 곰탕에 깍두기를 생각하면서.
20대의 여행은 그저 비행기 타는 것이 신기했다. 면세점에 들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고. 30대엔 주로 무언가를 보러 다녔는데, 뮤지컬을 보러 런던 여행이라거나, 건축물을 보기 위한 시카고나 바르셀로나 여행과 같은 문화적 허영이 가득한 여행을 선호했다. 브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러 하바나도 다녀오는 것을 끝으로 먹고 마시는 여행을 시작했다. 방콕이나 우붓, 파리나 피렌체 같은 곳에서 먹었고, 마셨다. 이제 그 여행에도 끝이 온 것이다. 미식의 도시, 산세바스티안에서.
한때 정말 잘 먹었다. 우리 삼 남매가 처음 뷔페에 갔을 때의 일이다. 경쟁적으로 먹다가, 집에 가자며 일어섰는데, 삼 남매 모두가 출구 계단에 주저앉았다. 걸을 수가 없었다. 몇 접시 먹었냐고 서로 물었다. 막내가 먼저 말했다. ‘여덟 접시’ 둘째도, 나도 그랬다. 이제 우리 셋 누구도 두 접시 이상 먹을 수 없지만, 여덟 접시의 디엔에이를 타고난 주원, 주영 형제가 있다.
주원은 여행 선물로 하몽을 사달라 했다. “하몽은 어디든 살 수 있을 테니까 “주원은 배려가 지나치게 많은 아이다. 반면 배려를 전혀 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의 애정을 확인하는 주영은, 축구공을 사 오라 했다. 들고 오기 귀찮으니 유니폼이나 사야겠다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주영이 말했다. “ 유니폼 절대 안 돼. 축구공 사와” 이놈의 자식, 왜 축구공이냐 물었더니 “스페인이 축구공의 원산지잖아”라고 했다. (맞습니까?) 됐어, 안 사 했지만, 산세바스티안 시내를 배회하니, 축구 공파는 가게가 꽤 보인다.
결국 어제는 점심 한 끼 만을 먹었을 뿐이다. 굉장히 마음에 드는 식당을 발견했는데, La Fabrica 공장이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수프, 앙트레, 메인, 디저트에 와인 포함 30유로다. 와인은 테이블에 병채 둔다. 다 마실 수 있었지만, ^^ 전날의 악몽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남겨두고, 오늘 점심을 다시 예약했다. 궁금한 메뉴가 있었다. 여럿이 왔더라면 한 번에 맛볼 수 있었겠지만, 혼자 하는 여행은 어쩔 수 없다.
사는 여행, 보는 여행, 먹는 여행을 지나, 난 이제 어떤 여행을 하게 될까. 잘 모르겠지만, 다음번엔 같이 오는 여행을 하고 싶다. 주원, 주영 형제랑도 오고 싶고. 그러려면, 축구공 사가야 한다. 축구공 사러 가야겠다.
지금 여기 시간은 오후 한 시. 스페인의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문을 여는 시간. 1:30에 점심 예약을 해두었다. 하지만, 이미 네 번째 핀 초바에 들른 상태. 더는 먹는 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포스트를 남긴 지 세 시간만. 핀 초바마다 오픈 시간이 달라서, 10시 오픈 바 한 곳, 11시 오픈 바 2곳을 거쳐, 1시 오픈 바에 이르렀다.
바 네스터. 이곳은 스페인식 오믈렛인 토르티야와 스테이크로 유명한 곳. 토르티야는 감자와 양파를 넣어 두껍게 부친 오믈렛인데, 바 네스터는 오로지 아침 한판, 점심 한판 만을 만들어 예약을 받는다. 마침 바로 그 시간 그 앞을 지나던 길에 예약을 받고 있더라는 거다. 1시간 후 점심 예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석처럼 달라붙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차 콜리 한잔을 마시며 기다리자, 주인아저씨가 큰 소리로 Stella라고 불렀다. 내 몫의 토르티야가 앞에 놓였다. 달걀말이가 맛있어봐야, 얼마나 맛있냐고 묻는다면, 흠, 색깔을 보세요. 색깔을 보시라고요. 완벽히 캐러멜 라이즈 된 양파만이 낼 수 있는 빛깔이죠.
항상 문제는 내가 만든다. 토르티야에서 멈췄어야 했는데, 이곳의 스테이크가 궁금해졌다. 뭐 먹다 남기고 가면 되겠지 했는데, 스테이크는 진정, 엄청, 더럽게 컸다. 굽기 전에 보여줬는데, 깜짝 놀라며 for me? 하고 외치자 바에 있던 모두가 웃었다. 좀 더 작은 건 없니 라고 묻자, 없다 한다. 주인아저씨가 어디서 왔니 묻는다. 서울. 이렇게 된 이상, 스테이크와 대적해야 한다.
호기로운 마음도 그만, 스테이크가 도착하자마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정신력으로 대적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닌 거다. 옆 자리의 시카고에서 온 젊은이들의 팔을 건드리며, ‘먹어볼래’ 물었지만, 그들은 너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듯, 우리도 어제 먹었어라고 말할 뿐. 최선을 다 해보았지만,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스테이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러분, 산 세바스티안은 절대 혼자 오면 안 되는 곳이에요. 가급적 소장의 용량이 큰 동행을 찾으세요. 잘못했다간 배가 터져 죽을 수 있는 위험한 도시라니깐요."
예약된 점심을 취소하고도 절반을 남겼고, 차콜로 한잔, 레드와인 한잔, 한정판 토르티야에 어마 무시한 스테이크의 가격은 오만 원 남짓. 계산을 하고 가려는데, 남은 스테이크는 어쩌냐며 가져가란다. 됐다며 돌아섰다. 이미 소장의 오늘 용량은 그 끝을 다 했고, 먹을 수 없는 소고기 따위 얼굴 부기 빼는데 쓸 것도 아니니까.
호텔로 돌아와,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던 나의 욕심에 집중하고자 했지만, 일단 배가 너무 불렀다. 생각에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었다. 배부른 소크라테스는 없다잖아. 하지만, 배가 터질 것 같은 이 상태야말로 욕심과 마주 앉기에 그야말로 적절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내 욕심의 한 쿼터는 호기심이다. 어쩌면 내 욕심 중 가장 긍정적인 측면. 또 다른 한 쿼터는 다르고 싶다는 것. 요란한 빛깔의 옷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다. 세 번째 쿼터는 우월감을 가장한 열등감. 혹은 열등감 인척 하는 우월감. 얘가 가장 어두운 측면이겠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쌍둥이 형제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수직으로 세우는 사고관에서 비롯되는, 지극히 후진 사고방식이다. 마지막은 아마도, 어쩌면, 확실히 식탐. 얘가 가장 친숙하네. 무엇하나 버리기 어렵다. 버리고 싶다고 버려지는 것들이 아니기도 하고. 나의 욕망은 나를 설명하는 모든 것이기도 하니까.
여하 둥둥 내일은 바르셀로나로 가야 한다. 욕심은 그대로. 축구공과 하몽만 늘어난 채로.
주영이가 전화했다.
“이모 또 돈을 뺏기지는 않았어? “
(뺏길 돈이 더는 없단다) 아니.
“여행을 왜 왔을까 후회하지는 않았고?”
(숱하게 했지) 첨엔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맛있는 걸 먹으니 괜찮아졌어.
“축구공은 샀어? “
두 개나 샀지. 검정도 이쁘고 파랑도 이뻐서 다 샀어.
“얼마야”
이십 유로씩. 삼만 원쯤?
“이모. 축구공은 오만 원이 넘어야 돼. 진원이 축구공은 십육만 원이 넘어. “
야, 그럼 첨부터 '더럽게 비싼 축구공'이라고 말했어야지. (그럼 물론 안 샀겠지! )
“일단 가져와봐. 스페인이 축구공의 원산지라서 쌀 수도 있으니까”
(‘일단’이라니, 기내용 슈트케이스에 축구공 두 개를 넣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산세바스티안은 작은 공항이다. 뻥 좀 보태 시골 농협 주차장 같다. 경운기 몰고 돈 찾으러 오는 것 마냥 비행기가 이삼십 분에 한 번씩 선다. 유리창 한 장 너머 활주로라, 꽤 시끄럽다. 암튼 경운기는 이번에도 두 시간 늦었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짐 찾기는 너무 쉬웠다. 벨트에서 남다르게 배가 튀어나온 가방 하나가 유독 눈에 띄었다. 축구공을 이런 용도로 넣은 건 아니었는데. 앞으로 내 짐을 표시하기 위해 축구공을 넣어가지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물론 농담)
저녁 비행기 시간까지는 일곱 시간쯤 남아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놀려나 했다. 비행기 연착으로 애매한 다섯 시간이 됐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구엘공원쯤에서 멍 때리려던 당초 계획을 바꿨다. 시체스에 가고 싶어졌다. 레프트 러기지에 가방을 맡기고, 시체스로 가는 몬 버스를 탔다.
시체스까지는 버스로 이십여분 남짓. 정류장을 착각하는 덕분에 해안도로를 삼십 분쯤 걸었다. 산 세바스티안의 바다와 사뭇 다르다. 그쪽이 윤곽이 진한, 사연 있는 미녀 같은 바다라면, 시체스의 바다는 맨얼굴의 첫사랑 같다. 연하늘색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다. 마냥 선한 얼굴이다. 이런 이를 앞에 두고 미운 사람이나 두고 온 골치 아픈 일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산세바스티안은 대서양에 면해 있고, 시체스는 지중해다. 저쪽은 거칠고, 이쪽은 부드럽다.
얼마 전 시체스영화제에 다녀가신 어떤 분의 추천으로 식당을 예약했다. 송아지 스테이크(24유로)를 주문했다. 튀기듯 구운 심플하고 소박한 요리, 가니쉬는 감자 볶음뿐이지만 훌륭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모두가 할머니, 할아버지뿐이다. 오는 길에도 그랬다. 아, 이곳의 겨울은 휴양지, 노인들의 도시다. 여름이 되면 누드비치로 유명하다한다. 첫사랑의 또 다른 얼굴인 거지.
식당 옆 노천카페에서 만난 백발의 여자분은 샴페인 한잔을 앞에 두고 책을 보고 있었는데, 너무 멋져서 몰래 사진 찍을뻔했다. 그녀도, 그녀의 꽃무늬 레깅스도 마음에 들었다. 저런 할머니들이 한국에도 많아져야 할 텐데. 나에게도 십 년은 더 입어야 하는 비싼 꽃무늬 레깅스가 여러 벌 있다. 한국에선 지금 나이에 입어도 눈치 보인다. 물론 그래도 입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이번 여행의 맺음말은 이랬던 것 같다.
'여러분은 통영이나 목포 가세요. 굳이 국제선을 타셔야겠다면, 방콕이나 홍콩 가서 맛있는 거 드세요. 꼭 집어 이베리아 반도를 가셔야겠다면 포르투갈 가세요. '라고.
이번 여행은 첫날부터 고되고, 도무지 예측 불가능했던 것이다.
시체스의 평안한 바다를 보니, 화가 풀렸다. 짧았지만 시체스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여행 같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이 여행에 많은 계획이 있었는데, 노트북 한번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돌아간다. 일상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데, 여행이 계획처럼 되겠나.
그래도 다행이다.
마음을 풀고 돌아갈 수 있어서.
다시 올까?
알 수 없지.
어쨌거나 돌아간다.
피로하지만 조금은 예측 가능한 현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