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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스텔라C Jan 18. 2022

여행하는 여자 - 2017- 포르투

인생 도시 포르투

요식업계에서 먹어주는 여자


내가 가장 잘 먹히는 곳은 식당이다. 남자에겐 안 먹혀도 식당에선 먹힌다.  뻥 좀 보태 두 번째 방문부터 단골이다. 친구보다 친한 식당 사장님들이 더 많다. 일찍이 스마트한 것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임정민은 그 이유로 내가 시끄럽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가 틀렸다.  식당에서라면 난 혼자 가도 먹히고 외국에서도 먹히며 말 한마디 안 해도 먹힌다.  먹어주는 곳이 오로지 식당뿐이라는 게 불행이긴 하다.


암튼 지난 일요일 포르투에서 마음에 드는 식당을 만났다.  인테리어만 봐도 알 수 있다. 맛있는 식당은.  크지 않고 테이블은 윤기가 흐른다. 서비스는 활기차고 메뉴는 길지 않다. 삼십 분을 기다려 점심영업을 마감하기 바로 직전에 들어갔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다른 식당은 더 갈 필요도 없겠다 싶어서 나흘 후인 오늘 다시 예약을 걸었다.


코임브라에서 오는 바람에 십오 분이나 늦게 도착해서 메뉴를 받았다.  생선 수프와 와이트 와인을 주문한 뒤, 앙트레를 추천해달라 하자, 그가 말했다.  지난번에 농어를 먹었으니 오늘은 대구가 어떠냐고. 흐뭇했다. 역시 식당에서는 먹히는구나.  뭘 먹었는지도 기억하네.  잘되는 식당은 다 이유가 있어. 마음이 따땃해졌다.


벨기에 맥주와 멕시코 맥주

인생의 생선 스프였다.  사진 찍을 틈도 없었다. 문제는 대구요리였는데, 너무 많았다.  게다가 포르투갈 시간으론 저녁 여덟 시였지만, 한국시간으론 새벽 다섯 시. 배도 불렀지만 무엇보다 졸렸다. 주방에서 자꾸 보는 것 같아서 최선을 다했지만 반은 남겨야 했다.

어떠냐고 물어서, 방청객 리액션으로 따봉을 외쳤는데,  잘생긴 웨이터 오빠가 넌 역시 문어를 먹었어야 했다고 바꿔주겠다 했다. 괜찮다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는데, 쉐프마저도 사양치 말라했다. 그래서 졸리고, 이미 배가 터지기 직전에다, 식당에서만 심하게 먹히는, 이 불쌍한 사십 대 여자는 문어밥과 마주 앉을 수밖에 없었다.


한 숟갈을 먹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맛이고 나발이고 한 숟갈만 더 먹었다간 토할 것 같았다.  옆자리 중국 커플에게  세계 평화를 위해서 쉐어하자했다.  바로 까였다.


다시 잘생긴 웨이터 오빠가 괜찮냐고 물어서, 더럽게 괜찮지만 Great!! You r perfect but too big meal for me!라고 소리 질렀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웰컴 투 포르투갈. 이게 포르투갈 스타일이야!  빵 터져 웃다가 그의 이름을 물었다. 미구엘이란다. 미구엘은 멕시코 맥주고 스텔라는 벨기에 맥주다

인생 도시, 포르투

거미줄같이 촘촘한 전 세계, 수많은 도시, 새털같이 많은 날 중, 한도시에 일주일을 머물고, 온통 좋은 기억만 집으로 가져간다는 것은 그 도시가 당최 사랑스럽거나 혹은 여행자가 운이 좋거나 혹은 둘 다이거나. 순도 100퍼센트의 좋은 기억만 있던 도시는 없었다.  눈빛이 험했거나 덥거나 추웠거나 맛이 없었거나 멋이 부족했거나.  지갑을 움켜쥐었거나, 남의 불행에 무심했거나. 작은 꼬투리 하나라도 밟곤 했다. 그런데 여긴 흠잡을 데가 없다.  포르투.


좋을 줄은 알았지만, 이리 좋을 줄은 몰랐다.  포르투갈, 포르투갈 사람에 대해 아는 거라곤 피구. 호날두. 코엘료뿐이었고, 맹세코  그 셋 중 어느 하나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포르투갈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갖고 돌아간다. 여행의 맛이다.


포르투갈을 응원한다.  앞으로 난 피구나 호날두를 내 친척처럼 응원할 것이다. 아니다.  이미 내 친척이나 다름없다. 난 그들 편이다. 아무리 댄디한 영국 애들하고 경기를 해도, 난 촌스런 포르투갈 남자들을 응원할 것이다. 금발에 쭉쭉 기다란 북구 유럽 남신 오빠들과 경기를 해도 난 까맣고 작지만 단단한 포르투갈 오빠들에게 박수를 보낼 테다. 만일 우리나라랑 경기를 하다면?  흐흠.,.. 잠시 망설였지만... 뭐 어떤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어차피 난 축구 경기를 보지 않으니 내가 갈등할 날은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Anyway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나의 포르투,


Tchao, Porto,

Obrigardo, Portugu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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