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여러분
저는 지금 쿠바에 와 있습니다. 하바나요. 여기는 말레콘 비치와 맞닿아 있는 센츠럴 파크 중간에 위치한 센트럴 파크 호텔의 비즈니스센터입니다 1시간에 7 쿡. 달러로 하면 10불 정도. 128k. 십몇년 전 한국 수준의 망입니다. 이 비싼 돈을 써가며 여러분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쿠바에 갔다는 걸 아는 몇 안되는 분들이시죠.
사실 그제 거의 24시간에 걸려 하바나에 밤늦게 도착했을때만 해도 왜 이런 귀찮은 일을 한거지 라며 자책했습니다만,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히자, 제 생각은 바뀌고 맙니다. 상상해보세요. 파리 오페라 구역에 어느날 거대한 태풍이 옵니다. 사람들은 다 대피하고요, 건물은 소금물에 부식하기 시작합니다. 갈곳 없는 몇몇 가난한 사람들만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곳이 하바나예요.
아침을 먹고 산책에 나섰습니다. 제일 목적지는 말래콘 비치, 캉쿤이 플로리다의 어느 비치보다 100배가 좋다면, 캉쿤보다 100배가 파란 바다를 가진 이곳 쿠바의 비치에 대해서 더는 표현하지 않겠습니다.(계산해보세요. 몇배인지)
헤밍웨이가 즐겨갔다던 까페에 갑니다. 11시 반에 오픈한다더니, 40분이 되도 오픈 안합니다. 일요일이라서 쉬나 하고 옆에 있는 미술관에 들럿다가 한시간 후에 도착하니, 이미 꽉 차 있습니다. 이 까페안에는 헤밍웨이의 흉상이 있습니다. 심지어 메뉴판도 그의얼굴이 박혀 있고, 메뉴중에 노인과 바다라는 시푸드 스페셜도 있습니다. 관광사업과 문화사업이 결합한 좋은 예랄가요. 모두가 다이퀴리나 모히토를 마시면서요. 12시란 말입니다. 물론 저는 평상시도 12시에 술을 마시지만, 이 도시는 에브리바디가 술을 마시고 있어요. 이건 완전 브라보죠. 하바나에 대한 사랑이 마구 샘솟습니다. 일단 헤밍웨이가 즐겨마셧다던 다이퀴리를 시킵니다. 너무 답니다.
그 오빠 답지 않은 맛입니다. 모히토로 바꿉니다. 좋습니다. 그렇지만 쿠바는 맥주로도 유명하니 맥주도 마셔줘야 합니다. 맥주병 앞에 체게바라를 닮은 오빠가 그려져 있습니다. 역시 브라봅니다.
맥주를 반명 마시고 점심을 주문하려 할때쯤,뒤에 앉은 이탤리언 부부가 테이블로 초대합니다. 페일 그레이의 티셔츠로 코디한 멋진 커플입니다. 바에 앉은 동양여자, 게다가 계속해서 갖은 술을 들이키는 여자가 안됐거나 재미있었나봅니다. 보첼리처럼 생겼고 심지어는 이름도 보첼리인 남편과 엘에이에서 살아본적이 있다던 엘리자베타 라는 여자인데 덕분에 유쾌한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저는 그들에게 밀라노 커피보다는 별로지만 그래도 비슷한 쿠바 커피를 사고, (한잔에 3 쿡) 그들은 제게 시가 한 개피를 주었습니다. (한개에 15쿡) 완전 남는 장사죠. 쿠바의 시가는 모두 핸드메이드인데다가, 숙성 시간이 길어서 이리 비싸다는군요.
이곳의 식당 어디에서나, 외국인들이 자주 가는 식당에는 어디에서나 밴드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그 수준이 거의 패티김 디너쇼 수준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그 앞에는 자발적인 무용수들이 몇 있습니다. 사실 누구나 이런 음악을 듣게 되면 스탭이 절로 밟아질거에요.
오후에는 쿠바 국립 발레단의 넛크래커를 봤어요. 쿠바 발레의 영웅인 알리샤 아론조가 제 옆의 옆의 옆의 옆의 옆옆에 앉았습니다. 같은 줄이지만 좀 떨어졋다는 뜻이지요.발레가 시작되기전 팔십도 넘은 그녀가 일어나 인사하고, 모든 관객이 기립박수로 그녀를 환영합니다. 티켓은 외국인들에게는 25쿡. 약 3만원. 그렇지만 내국인에게는 그보다 1/30 이라고 하니, 천원쯤. 그래서인지, 국립 발레단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군민 잔치같다고나 할까요? 다들 동네 주민인 모양,인사하고,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옆에 앉은 소녀는 혼자 춤을 춥니다. 한국의 엄숙하고 지나치게 우아한 관객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1막이 기대보다 지루해서, 호텔로 가서 쉬어야 하나 고민할 즈음 2막이 시작되는데, 역시 브라봅니다. 야구와 발레가 괜히 쿠바 국민스포츠와 예술이 아닌겁니다. 제가 사실 다년간 공연업계의 활성화를 위해서 돈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박수에 한해서는 거의 유료 방청객 수준인데, 아시다시피 어깨 질환으로 인해서 팔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박수를 치지 않으려고 결심했지만 도무지 안치고는 버틸 수가 있어야죠. 왼팔을 고정하고 좀 나은 오른팔을 열라 가져다 붙이는 방식으로 박수를 치고 말았습니다. 팽귄 스타일의 박수 라고나 할가요. 동양에서는 저런 박수가 유행인가보다 라고 생각할지도요.
발레 공연이 끝나고는 까페 델 오리엔트 라는 식당으로 갔어요. 얼마전에 쿠바에 다녀갔던 캘리가 추천해주었거든요. 발레가 일찍 끝나 삼십분 먼저 도착했어요. 잘생긴 쿠바 웨이터 아저씨가 저를 보자 얘기 합니다. are U stella? 작은 곳이 아니에요. 한 20 테이블. 그런데도 예약한 고객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는 이런 식당이 맛이 없을 리가 있겟어요? 이런집이 맛이 없기란 모하비사막 한가운데를 지나다가 한국횟집을 발견할 확률에 가까울겁니다.
일단 카르파치오와 모히토를 주문하고, 비프 타르타르를 주문합니다.가격도 좋습니다. 카르파치오가 5쿡이나까 미국돈으로 7달러 혹은 8달러. 그러나 제 인생의 최고의 카르파치오였습니다. 누가 쿠바의 음식이 후지다고 한겁니까? 내일도 또 오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비프 타르타르가 도착하자 생각이 바뀌고 맙니다. 매일 와야겟다고요. 역시 잘생긴 쿠바 오빠가 생소고기 간것과 레몬즙, 달걀 노른자, 양파와 피클, 올리브유, 소금, 핫소스, 발사믹을 가지고 나타나서 오로지를 저를 위해서 요리를 시작합니다. 역시 완전 브라보입니다. 인생 최고의 육회입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왔습니다.오늘은 야구를 볼 생각이에요. 저는 아마 맥주를 마시면서 야구를 보겟죠. 점심은 어제 그 식당에 갈거고 저녁엔 브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공연에 가야죠. 사실 이 사람들 때문에 쿠바에 온거니까요.
시간이 멈춘 이 도시에서 최대한 모든걸 잊고 즐기다 갈 예정입니다.
아마 떠나는 날엔 정말 호텔 기둥을 부여잡고 흐느낄 것 같아요. 사랑했던 어떤 도시, 도쿄나 런던, 바르셀로나와 베니스보다도 더 잊지 못할 도시가 될 것 같아요. 언젠가 이 도시도 변하겟죠. 돈이 지배하는 시간이 올겁니다. 그들이 원하던 원하지않던간에요. 다시 돌아올땐 변해있다고 하더라도 꼭한번 더 만나고 싶은 도시입니다. 혹시 쿠바관광청이 만들어진다면 꼭 저를 추천해주세요.
다들 행복하세요. 쿠바 사람들만큼만요. 그러실려면 최선을 다하셔야 할겁니다.
2011. 1 쿠바에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