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럭저럭 한 성적이었다. 그다지 열심이지도 않았다. 좋아하는 과목은 잘했지만, 싫어하는 과목의 수업시간에는 줄곧 운동장만 바라봤다. 창 밖에는 남학생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교과서를 세워 놓고 영어 사전을 베고 잠을 자기도 했다. 사전은 항상 찌그러져 있었다. 시험은 언제나 초치기였다. 시험지를 돌리기 직전까지.
내 앞에 앉은 아이는 그 금톨같은 시간에 꼭 뒤를 돌아, 시험공부 많이 했냐고 묻고는 (물어보나 마나 안 했지!) 곧 자기가 얼마나 시험공부를 안 했는지, 전날 밤에 라디오를 듣다가 딴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공부하려다가 잠을 자서 이번은 정말 망칠 것 같다는 식의 수다를 떨었다. 대충 맞장구를 치다 보면, 시험지는 돌려지고 있었다. 순면처럼 깨끗한 뇌로 시험지를 받았다.
그렇게나 공부를 안 했다고 떠들어 놓고서 그녀의 성적은 나보다 항상 1,2 등수쯤 앞이었다. 전날 '갑자기''이상한 사건으로' 잠을 '너무 많이’ 자서 공부를 안 했다고 하기엔 자율학습에서 그녀는 너무 진지했고. 잠을 많이 잔 것 치고는 눈은 늘 충혈되어 있었다.
짜증 났고, 싫증도 났다. 어느 시험날 아침,
"어떡해, 나 망했어. 시험공부 많이 했어?"
그녀의 여느 때와 같이 물어왔다.
'나도 안 했어’로 응수하는 대신,
“응. 문제집 두권 풀었어”라는 대답으로 받았다. 그녀, 잠시 멍하게 나를 바라봤고, “어 그렇구나”하면서 앞으로 돌아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정도는 나도 했어"
그정도는 나도 했어
이후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내 벼락 초치기에 장벽 하나는 제거했지만 그렇다고 성적이 J 곡선을 그리는 소설도 없었다. 우리는 고3이 됐고, 다른 반이 되었다. 난 더 이상 초치기가 해결해주지 않는 단계에서 어찌어찌하여 대학을 갔다. 그녀도 좋은 대학을 갔고. 대학 이후에는 그녀를 만난 적이 없다. 지금은 그녀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녀는 시험공부를 자기보다 안 했을 내게 뭔가 위로받고 안심하고 싶었겟지.
이따금 그녀 생각이 난다.
고상하게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남의 불행에 위안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축하하는 듯 열띤 목소리로 이야기하지만, 눈만큼은 남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문제집 두 권 풀은 심정으로 ‘다른 이의 행복이 당신의 불행이 아니고, 다른 이의 불행이 당신의 행복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행복과 불행만큼은 상대적인 게 아니라고.
다른 이의 행복이 당신의 불행은 아닙니다
왜 이럴 때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가 생각나는지 조금 미안하지만, 아마 그녀는, 공부 하나도 안 하고 초치기 하더니, 결혼도 못해, 아이도 없어, 혼술이나 마시고 서핑이나 하는 나보단 훨씬 안정적인 인생을 살고 있을 테니, 용서해주지 않을까? 여전히 아줌마 모임에서, 우리 아이가 공부를 안 해서 큰일이다 엄살떨다 서울의 좋은 대학에 보내는 반전의 우아한 인생을 살고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하나도 부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