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소한 스텔라C Oct 10. 2024

세익스피어는 있고, 정우성은 없다

La mia vecchia Citta_나의 오래된 도시_베로나 

달리에게 목탄화로 그려 달라고 부탁한 베로나의 카스텔베키오 다리 

Shakespeare non è italiano, è inglese. Tuttavia, in questa città, è speciale.

세익스피어는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 영국 사람입니다.  다만 이 도시에서 그는 특별해요. 


1. 세익스피어가 이탈리아사람이 아니었나요?


밀라노로 발령받아 온지 2주가 지났어요.  오늘은 마침 한글날.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공관들이 모두 쉬는 날이에요.  춥고 습한 밀라노에서 사과를 씹으며 궁상을 떨지 않기로 합니다.   한국에 세종대왕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세익스피어가 있죠.  세익스피어로 먹고 사는 베로나에 가기로 합니다.  밀라노에서 한시간 남짓이면 갈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머, 이때만 해도 세익스피어가 이탈리아 사람인가 했어요.  )


일단  어제 밤에 끓여둔 미역국 한그릇을 파로/보리/쌀잡곡 밥에 말아 드시고 출발합니다.  전 그동안 제 소울푸드가 곰탕이나 평양냉면, 혹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인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미역국이더라고요.   미역국을 한솥 끓여두면 든든하달까요.  이민 가방에 기장 미역 한 봉지를 넣어왔어요.  암튼 기차를 타고, 베로나에 갔어요


2.로미오와 줄리엣의 베로나


한시간쯤 지나, 베로나 포르타 누오바 역에 내렸더니, 후드티 위에 입은 얇은 야상도 무겁게 느껴지지 뭡니까.  겉옷을 접어 가방에 구겨 넣고 도시의 인상을 살펴보니,  아 이곳은 그야말로 오래된 도시.  그리고 도시 곳곳 시계가 걸려 있어요.   


관광객들을 위한 줄리엣의 테라스


베로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줄리엣이에요.  줄리엣의 집이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죠.  그 집을 찾아가는 방법은 간단해요.  역에서 내려서 관광객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하더라고요.  역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데, 몇명이 따라 걷고 있어요.  처음엔 두세명이었는데, 걷다보니 대여섯, 몇분 지나니 예닐곱.. ㅎㅎㅎ 이런식.  사람따라 걷다가,  줄리엣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줄리엣의 집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고요.  


전 입구의 벽을 잠시 바라보았습니다.   남산의 커풀 자물쇠마냥, 줄리엣의 집 입구 벽에는 수많은 연인들의 이름이 하트에 갇혀 있었어요. 

줄리엣의 집 한쪽 벽.  수많은 하트와 아마 반쯤은 이미 죽었을 사랑의 약속들


그 벽을 한참 바라 보며, 일생에 자물쇠 하나 걸지 못하고,  하트에 넣을 이름 하나 얻지 못하고 살아온 제 인생을 생각했어요.   조카새끼 이름이라도 넣어 낙서해볼까 생각했지만, 조카의 인생에 수많은 아름다운 여성들의 이름이 있기를 잠시 기도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일단 배가 고팠고요. 


당일 여행에서 메인 이벤트는 당연 점심이죠.  베로나의 인기있는 노포를 찾아보기로 합니다.   언젠가부터, 노포에서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노포야말로 시간이 증명하는 곳.   달라진 것이라고는 서울의 노포가 아닌 이탈리아의 노포들을 찾고 있다는 것. 알고보면 저도 노포아니겠어요.  오십년지난. 


대략 마음에 드는 노포를 찾았어요.  평점도 괜찮고,  웨이터 오빠의 미모와 웃음도 상당합니다.


3. 이탈리아에 정우성은 없습니다


아참, 이탈리아에 오기전에 많은 분들이 말했습니다.   챗지피티로 요약하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넌 복도 많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정말 잘생겼다.  그냥 카페만 가도 정우성이 주문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


여러분,  제가 올해만 이탈리아에 3번,  이번엔 들어온지 2주일이 넘어 섣불리 한말씀 올리자면,  이탈리아에 오셔도 정우성은 없습니다.   


어느 도시나 그렇듯  이탈리아에도 (대다수가 보기에)아름다운 분들과 (누군가에게) 개성있는 분들로 조화로운 곳이에요.   이탈리아 남자들이 잘생겼다는 말은 가짜뉴스에요.  진짜 잘생긴 유러피언은 스웨덴이나 스페인에 있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정우성님을 서너번쯤 본 사람이 하는 말이니 믿어주세요.  단, 시니어 세대에 대해서 말하자면,  전세계에서 스타일리쉬한 할아버지가 가장 많은 곳은 이탈리아일수 있어요.  컬러풀한 자켓이나 얄밉게 잘 빠진 바지의 핏을 보면서 '도대체 그 옷은 어디에서 샀어요?' ' 저랑 쇼핑 친구해요' 하고 말시키고 싶은 할아버지들은 좀 계시지만요. 

베로나의 그림같은 풍경을 뒤로 하고, 다시 춥고, 비내리는 밀라노로 돌아왔어요. 2024.10.9

매거진의 이전글 남의 불행이 당신의 행복은 아닙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