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논문일기

깜냥

자격지심이라는 벽

by 서수

깜냥이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해낼 능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주로 일상생활에서 사용될 때 어감 때문인지 부정적인 어조로 많이 쓰인다. "네가 그럴 깜냥이나 되니?", "그런 깜냥도 없으면서 무슨 힘으로 살려고?" 등등.


그래서 논문을 쓰면서 나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물었던 것도 "내가 논문 쓸 깜냥이 되는 사람인가?" 혹은 "내가 졸업을 할 깜냥이 있나? 내 그릇이 그만한가?"였다. 그리고 이 모든 부정적인 기운은 나의 자격지심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일단 내 주변에 졸업한 사람들이 너무 대단해 보였고, 내가 논문을 쓰면서 도움을 받은 선배들의 논문은 당시의 내가 보기에 너무나 완벽해 보였다. 본문에 달린 각주들도, 인용한 원서의 내용도 지금 나의 수준에서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 보였다. '어디서 이런 참고문헌을 찾은 거지?', '영어도 아니고 프랑스어로만 되어 있는 텍스트를 언제 다 읽고 번역한 거지?' 물론 그들의 완성된 논문과 나의 아직 프로포절 수준의 글쓰기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지만 어쨌든 그들도 나와 똑같은 단계를 거쳐서 이 논문을 쓴 것일 텐데 뭔가 첫 단추부터 나와는 다른 단추였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들은 나와 다르게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고, 이 학문에 있어 진정성 있는 열정을 가졌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에 반해 나는 대학원에 들어온 목적도 너무 순진했고(그냥 좋아하는 책 읽고,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정도의 이유였으니 말이다), 예술작품에 대한 취향이나 호기심도 터무니없이 적어 보였고, 무엇보다 논문을 쓸 만큼 똑똑한 사람이 아닐 거라는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너무 컸다. 당시에는 똑똑한 사람만 졸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석사 과정 연구실에는 나를 포함해서 너무 오랫동안 별다른 진보 없이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내가 논문 쓸 당시가 2015년이었는데 나는 2010 학번이었고, 나보다 더 먼저 학교에 들어온 사람들도 아직 졸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볼 땐 나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나보다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은데 저들도 졸업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나는 도대체 몇 년이나 더 걸려야 되는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이미 논문을 쓰고 졸업한 나의 선배들이나 동기들도 그렇게 특출 난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교수님들이 보셨을 때 석사학위논문은 (물론 특출 나게 잘 쓴 학생들도 분명 있겠지만 그런 학생들은 정말 소수이다) 다수의 학생들이 비슷비슷한 수준이고, 주제나 내용에 있어서 그렇게 혁신적이고 새롭지도 않다는 것이다. 학교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학과 학위논문을 검색해서 보더라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놀라울 정도로, 아니 소름 끼칠 정도로 그 제목과 목차가 비슷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니 교수님들은 얼마나 지겨우실까. 그렇기 때문에 교수님들은 내용적인 측면보다는(왜냐하면 다른 버전이라 하더라도 이미 재탕 삼탕 사탕인 주제이므로) 논문의 형식과 구성이 설득력 있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훑어보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 5페이지의 프로포절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논문의 목차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리하여 나의 이 죽일 놈의 자격지심이라는 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라도 "그래, 저들도 나와 비슷해.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공부를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어쨌든 논문을 쓰고 졸업을 했고, 나라고 못할 이유는 없지."라고 스스로를 독려해야만 했다. 그것이 사실이든지 사실이 아니든지 간에.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사실이었다. 다 고만고만했다. 이렇게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며 전전긍긍했던 내 모습이 불쌍하고 처연해 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혹시 지금 논문을 쓰면서 나와 같은 생각에 빠져 스스로를 더 작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그 사람도, 아니 나 같은 사람도 졸업했는데 당신이라고 졸업 못할 이유가 하등 없다고, 그러니 절대 주눅 들지 말고 오히려 이미 졸업한 그 사람보다 나으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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