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 시간, 생산물 = 자기 자신?
(논문을 쓰다보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데, 이 때 정작 논문 자체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곁다리로 드는 잡생각이 훨씬 많다. 오늘 일기는 그 잡생각 중의 하나이다.)
마르크스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유재산이란 인간의 노동이 대상화(對象化)된 것, 즉 객관적 형태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고.
인문학을 공부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노동은 무엇이고, 내 노동으로 인해 생산되는 생산물은 무엇일까. 나를 포함해서 대체로 사람들은 인문학은 실용적인 학문이 아니고(학문 앞에 '실용적인'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것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직장생활에서 직접 적용해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어떤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 때 그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해줄 수 있는 내 안의 창조적인 자원이라고 해야 할까. 성공한 사업가들이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하나같이 인문학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들 하지 않나. 하지만 우리는 인문학이 사업의 성공에 직접적인 요인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마르크스가 지적하는 자본주의의 폐단은 인간의 소외이다.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주체는 인간인데, 이 인간의 노동력은 그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지에 의해 착취되고, 여기에서 소외가 발생한다. 생산수단은 쉽게 말해서 생산을 할 수 있는 기술력을 말하는데, 내가 만약 자동차 공장에서 일을 한다면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기계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 기계는 내 것이 아니고 공장주의 것이기 때문에 나의 노동은 이 기계를 작동시키고 관리하는 것이며 노동력에 대한 보상은 자동차도 아니고 생산수단인 기계도 아닌, 임금으로 받는다. 생산수단은 공장주에게 속해 있으므로 내가 노동을 하지 못하는 때가 오면 나의 노동력은 타인의 노동력으로 쉽게 대체될 것이다. 기계를 작동시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으므로.
하지만 사회주의에서는 인간의 노동을 착취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행위로 본다. 그리하여 노동이 인간을 자본주의의 착취의 시스템으로부터 진정으로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노동은 곧 연구에 매진한 시간으로 환산될 수 있고, 생산물은 보이지 않는 인문 지식을 소유한 연구자 자신이라는 것. 하여, 이들은 노동을 하면서도 그 결과물로 얻어지는 지식을 실제적으로 소유한 사람이 되고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사람이 인문학의 성과이자 재산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생산수단은 자기 자신에게 이미 속해 있으므로 착취나 대체가 불가능하고 소외가 일어날 구조가 아니라는 것.(물론 그만큼 '돈'으로 환산되는 임금 역시 적다는, 아니 거의 없을 수도 있다는 것도...)
결국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큰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은 사회주의 이론을 통해 이미 증명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회주의 이론이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는 위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데, 대체 왜 인문학 대학원에는 여전히 지원자들이 많으며, 나는 이 학위로 큰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학위논문을 쓰는 데에 매진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뭔가 처음부터 자본주의에 걸맞은 사람들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 최종목표가 대학 교수라고 하더라도. 교수가 되기 위해 10년, 20년을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한다? 교수가 되어서도 연구는 계속 해야 하는데도?(물론 안 그런 교수들도 있겠지만.)
결국 이 괴롭고도 고통스러운 길을 가는 이유는 바로 내 안에 있다. 나의 자발적인 선택이자, 행위. 누가 시킨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누가 말린다고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닌. 그래서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나를 나는 끊임없이 원망하고 다독이고 비난하고 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