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인실 Apr 29. 2022

블랙팬서의 또다른 주인공

아치 에너미 : 킬몽거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

영화 블랙팬서에는 킬몽거라는 악당이 등장한다. 킬몽거는 아이언맨과 같은 캐릭터 네임이며, 본명은 '은자다카'이다. 그는 와칸다라는 첨단 국가의 왕족인데, 어린 시절 아버지가 정치적 문제로 친형인 국왕에게 살해당한 후 와칸다로부터 버림 받는다. 이후 그는 용병, 스파이의 삶을 살며 와칸다를 향한 복수를 계획한다. 영화 중반부 그는 마침내 주인공 블랙팬서를 꺾고 잠시나마 와칸다의 왕이 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폭군의 성향을 내비치며 세상을 위협하려는 그를 블랙팬서가 제지하고, 그는 전투에서 패한 뒤 와칸다의 노을을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킬몽거를 좋아한다. 그의 금빛 슈트 때문도, 그가 거친 매력을 지닌 악당이어서도 아니다. 나는 그가 갖고 있는 삶의 투지를 좋아한다. 그는 아버지를 잃고 낯선 타국에 버려졌지만, 해군사관학교와 MIT, JSOC(미합중국 합동특수작전사령부)를 거치며 수많은 실전 경험을 지닌 엘리트 전사가 되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이처럼 강인해 질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사실은 그에게 큰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전형적인 악당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무분별한 폭력을 남발하다 자기 파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킬몽거는 와칸다에게 복수하기 위해, 더 근본적으로는 아버지의 훼손된 명예를 복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삶과 끊임없이 투쟁해 왔다.


주인공 블랙팬서의 서사와 가치관도 인상깊지만, 삶과 개인의 목표를 향해 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는 쪽은 킬몽거이기 때문에 나는 그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킬몽거가 절대 영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까닭은 그의 목적은 복수이며 수단은 폭력이기 때문이다. 분노로 가득 차 있기에 그는 필연적으로 주변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목적은 달성할 지 몰라도, 넓은 차원으로서 구성원들을 고려한 선순환과 지속은 불가능하다.


그가 분명 강인한 인물임은 부정할 수 없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과감히 온 삶을 쏟아 부으며, 수많은 경험으로 실력을 키워 마침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허나 킬몽거는 이를 살인과 테러로 가득채웠기 때문에, 과정의 부적합성에 대해 늘 비판받아야 할 캐릭터이다.


영화 블랙팬서는 아프리카주의, 흑인 인권 문제 등 여러 이슈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킬몽거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매우 입체적인 인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나는 해당 부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다른 맥락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바라 보지는 못하고 있다. 


역사/사회 측면으로 그를 이해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나에게 킬몽거는 주인공 블랙팬서가 아닌 자신의 삶과 최선을 다해 싸운 멋있는 악당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