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주인이 얼마나 멋진지가 중요하지
집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혼자 살게 되면서 집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게 되고, 내가 필요한 기능대로 집이라는 기계를 설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차분한 분위기를 원해 레일등을 달고, 음악을 듣고 싶어 큰 스피커를 거실에 두고, 모던 스타일을 좋아해 모듈 선반을 샀다. 단순히 내가 머무는 공간을 넘어, 집은 점차 나를 닮은 모습을 갖게 된다. 내 마음의 물리적인 현현이다. 집은 내 머릿 속이다.
그래서 낯선 이를 초대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사고 방식과 체계가 있듯, 집에도 나름의 정리정돈 규칙이 있다. 누가 마신 잔을 지저분하게 함부로 두면 내 생각이 흐려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여러 지인들이 놀러온 적이 있다. 놀이터인냥 즐겁게 어지럽히며 놀았고, 다시는 초대하지 않기로 했었다. 머릿 속이 헤집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두명씩 집으로 초대했다. 물리적으로 내면적으로 나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허락한다는, 방어 태세를 완전히 해제하며 드러내는 일종의 친밀감 표시였다.
집과 내 머릿 속은 연동되어 있기에 항상 깔끔하게 유지하려 했다. 평온한 상태이기에 깔끔할 수도 있지만, 깔끔하기에 내가 평온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이불정리 같은 아주 사소하고 기본적인 집 정리는 하려고 한다. 이런 것조차 하지 않는다면 집은 점차 더러워지고, 내 머릿 속은 더 크게 망가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 수면 모드로 설정된 조명들이 잘 정돈된 집안을 은은하게 비출 때가 제일 편안했다. 물리적인 공간,대상이 생각했던대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마치 ASMR처럼 알 수 없는 만족감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실제 성취 여부와는 상관없이 오늘 할 일들을 완만히 잘 처리했다는 착각도 들게 했었다.
이러한 삶은 감각적으로는 아늑하지만, 동시에 나를 갉아먹고 있다. 나와 집의 상태를 동일시하고 정돈에 매달릴수록 강박과 결벽이 생겨나는 걸 느꼈다. 더욱이 논리대로라면 나는 타인과 함께 지낼 수도, 가정을 꾸릴 수도 없다. 나만을 위한 공간은 변질되어, 아무도 올 수 없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집 문을 여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마음을 여는 것이다. 그간 나는 혼자인 상태가 제일 강하다고 믿었다. 불필요한 감정들을 느낄 필요가 없기에 더 빨리 성장하고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여정 끝에 주마등이 스쳐지날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고 그 무엇에서도 가치를 찾지 못하는 이를 기다리는 것은 쓸쓸한 소멸 뿐이다. 그간 혼자 지낸 관성 때문에 당분간 많이 어색하겠지만, 사소한 관계들이라도 시도해봄으로써 이 상태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꼬맹이 시절에도 깔끔을 떨어댔던 나에게, 아버지는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차 안에서 과자나 음식을 마구 흘려도 괜찮다는 것이다. 차는 잘 달리기만 하면 되고, 더러워진 것은 닦아내면 된다. 사물에, 수단에 사람이 묶이게 되면 본질적인 목적과 가치를 잊게 된다. 어린 나를 조수석에 앉히고 하셨던 이야기가 많은 시간을 지나 새롭게 와닿는다.
집이 어지럽혀져도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웃으며 손님을 돌보는 사람이 더 멋진 주인 아닐까. 나를 둘러싼 것으로부터 얽매이지 않고 나다움을 유지하며, 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자세. 내겐 그런 것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초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