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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수현 Jan 07. 2023

"나를 넘어서는 자리" - 홍문표 감독 인터뷰

채널 ENA /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홍문표 감독 인터뷰

영화감독이 꿈인 이십대 청년을 코칭하면서 얼마 전 즉흥적으로 페이스북에 '지인 중에서 영화 쪽에 있는 분 계시면 메시지 달라'고 올린 것을 계기로 홍문표 감독님을 만났습니다.


ENA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를 연출 중이시고, 영화와 드라마 영역 모두에서 연출 경험이 있으신 찐감독님이셨습니다. 바쁜 와중에 청년을 만나러 나와 주셨는데, 무엇보다 꿈에 그리던 일을 하는 대선배를 만난 청년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만나본 얼굴 중 가장 밝은 표정이었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그 시간에 함께 있던 내게도 깊은 울림이 있었기에, 그 인터뷰를 소개하고 이 여운을 전해볼까 합니다.



출처: 도서 When i met myself 의 이미지





Q. 영화와 드라마 모두 감독 하시면서 두 영역이 굉장히 달랐을 것 같아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A. 드라마는 12~16부작의 스토리가 있어요. 그 안에서 주인공 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충분한 기간이 있죠. 그 스토리가 2~3달동안 방송되니 찍느라 꽤 바쁩니다. 한 컷 찍고 바로 다음 컷으로 이동하죠. 반면에 영화는 2시간 내에 보여줘야 해요. 할 수 있는 말이 한정적이니 메시지가 분명해야 하고요. 제작 비용도 드라마보다 더 작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스토리 설계나 하나의 씬에 대한 준비를 더 상세히 합니다. 대신 하루가 그 한 컷을 위해 사용되니 드라마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예요. 둘은 무척 다르지만 이야기를 전한다는 데서 모두 매력적이라 재밌게 일하고 있습니다.



Q. 감독이 되는데 대학이라는게 꼭 필요할까, 대학을 간다면 영화학과가 있는 대학을 가야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안간다면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시작할 수도 있고, 스탭으로 일하면서 일을 배우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감독이 되신 후 다시 스무살로 돌아간다면 어떤 방법을 택하실 것 같으세요?


A. 저도 일반 대학을 나왔어요. 하지만 어릴 때 부터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마음 속에 '나는 영화 쪽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죠. 대학을 졸업하고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고 시작했기 때문에 조금 늦게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감독은 다른 사람을 움직여 함께 만들어가기 때문에, 굳이 스킬을 (알 필요는 있지만) 다 배울 필요가 없어요. 그 스킬을 가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거죠. 오히려 감독은 그 스토리 밑바탕이 되는 단단한 철학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시 스무살로 돌아간다면 영화학 보다는 철학과를 가고 싶어요. 



다시 스무살로 돌아간다면 철학과를 가고 싶어요.



영화학과를 가도 영화만 배워선 안되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거쟎아요. 더 넓은 시야로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하고 발견해야 되죠. 오히려 저는 영화가 아닌 학과를 가볼 것 같아요. 


대학생은 사회인보다 가벼운 책임감으로 마음껏 온종일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위치예요. 취업할 거 아니니 시험 잘 볼 목적으로 다닐 필요가 없어 맘도 편하죠. 수업도 충분히 들으면서 사진이던 영화던 동호회를 해보고, 휴학해서 아카데미 수업을 듣거나 영화를 직접 찍어보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와서 수업을 듣고 이렇게 느슨하게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예요. 그래서 대학생으로 있어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탭으로 일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예요. 그런데 스탭은 오히려 감독을 만나 촬영장에서 배우기가 힘들어요. 장면을 찍을 때 바깥에서 교통 정리도 해야되고 짐도 날라야 되죠. 그 장면을 보고 있을 겨를이 없어요. 그럼에도 한 두 번 경험상 일해보는 건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스탭으로 일하면서 기회를 찾기는 어려워요.



Q. 결국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 경험을 쌓아가야할까 또 생각들이 꼬리를 물게 되네요. 감독이 되는데 있어 깊게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있을까요?


주변에 이런 분들이 있어요. 나는 아직 감독을 하기에 부족하다고. 그래서 계속 배워요. 아카데미를 나왔는데 미국, 프랑스 좋은 학교를 들어가요. 다녀와서 또 고민해요. 아직 부족하다고. 더 배워야 한다고. 



누구나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에 부딪칩니다.



그런데 어떤 학교를 갔건 한예종을 나왔건 해외 학교를 나왔건 아카데미를 나왔건. 누구나 작품을 고민할 때는 자기 자신하고 만나는 지점으로 돌아와요. 어디를 다녀와도 그 지점에 오게 되어 있어요. 그걸 뛰어넘지 못하고 계속 배움으로 도피하지만. 결국에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 자리에서 스스로를 뛰어넘어야만 '감독'이 시작되는 거예요. 



오히려 되고 싶은 이름으로 빨리 불리워지는게 그 길에 더 가까워지는 거라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빨리 '감독'이 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작품이 아직 별볼일이 없어도 그 사람의 호칭이 '감독님'인 것과 00씨 인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예요. 빨리 되고 싶은 그 이름으로 불려지는게 오히려 되고 싶은 삶에 가까워지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부족하니까 감독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남으려고 하지만 그건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자꾸 미루는 거예요. 


어떤 작품을 낼 것인지 어떤 메시지를 전할 것인지 어떻게 구성할지 이 모든 것이 내 경험에 의해 재구성됩니다. 한예종에 가면 선배들이 좋은 기회로 이끌어줄 가능성이 높을 거예요. 그렇지만 결국은 다시 '나'로 돌아와요.


그래서 나를 마주하기까지는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라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일단 그 자리에 서는 시점이 오면 피하지 않고 서야 합니다. 그 자리는 결국 나를 넘어서는 자리예요.





한 시간 반의 인터뷰에서 나는 감독님이 들려준 인생 영화에 진한 여운을 느끼며 괜히 연출가가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청년이 상담하는 자리에서 나는 '감독'이라는 단어에 다른 단어를 넣고 완전히 몰입했습니다. 그 짧은 식사자리에서 그가 던진 문장에는 그 간의 농축된 고민, 생각, 고생했던 긴 시간이 있었기에 힘이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미 만난지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임에도 그 진한 여운을 오래 기억하고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고 싶어 노트북을 펼칩니다. 저도 청년도 홍감독님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자기를 마주하는 자리'에서 스스로를 넘어선 이야기들이 펼쳐지기를 고대합니다.



ENA 채널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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