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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Oct 25. 2024

공감이라는 상비약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길바닥에 짓이겨진 은행을 밟지 않으려 운동화 뒤꿈치를 들고 요리조리 피해 걷는다. 그러다 문득 씩씩이와 함께 은행길을 걷던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2023년 10월 13일에 방광암 수술을 받고 10월 말경 조직검사 결과 이행상피성 방광암을 최종 진단받았다. 그래도 빈뇨와 혈뇨 외에는 잘 먹고 잘 놀던 시기여서 씩씩이와 평소처럼 산책하며 아름다운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씩씩이가 떠난 지 벌써 9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정서적 기억은 시각적 기억보다 강렬한 것 같다.

씩씩이의 모습은 희미해져 가는데 비해 씩씩이의 병세가 깊어져 생사의 기로에 위태롭게 서 있을 때 느꼈던 정서적 고통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아마도 평생에 걸쳐 퇴색과 덧칠을 반복하며 기억회로에 새겨질 듯하다.


사랑했던 녀석의 투병과 이별을 경험하며 나를 지배했던 감각의 실체는 매우 심각한 수준의 '통증'이었다.


마음 역시 몸이 아플 때처럼 실체가 있는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손가락에 작은 상처만 나도 온 감각이 손가락에만 집중되는데 마음의 통증 또한 다르지 않았다. 다만 마음의 통증은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아 누군가 알아봐 주지도, 당장 치료해 줄 전문가도, 약도 없었다.

신체적 통증이라면 급하게 진통제를 찾아 잠시 사라지게 할 수 있겠지만 마음의 통증은 빠르게 진정시켜 줄 약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증에 까무러쳐도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롯이 내 안에서 감당하고 처리해야 했다.


팔팔 끓는 기름에 심장이 덴 것 같은 통증을 경험한 후 9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 내 심장은 예전보다 더 예민해지고 민감해졌다.


예민해진 심장은 나에게는 마음의 통증을 초기단계에서  빨리 알아채도록 해주어 누구보다 마음의 이야기를 경청하도록 해주고 있다. 또, 타인에게는 상대의 고통을 이전보다 더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상대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하고 아픔에 공감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손 잡아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지만 공감하는 마음만이 당신의 상처를 알아보았고 함께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전할 수 있다.


마음은 그렇게 아팠던 시간을 겪으며 성장하나 보다.

상대의 아픔을 알아봐 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예민함을 지닌 사람이고 싶다. 또 공감이라는  진통제를 상비약으로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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