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롬이가 홀연히 내 곁을 떠난 지 1년이 넘어가고 씩씩이는 2년이 되어 간다.
시간이란 상대가 남긴 추억의 흔적과 존재의 가치에 따라 다르게 인식이 되나 보다. 내 기억 속에 녀석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이별의 기간이 무색하게도 엊그제 같이 선명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망각으로 덧칠해질 거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이 시간의 감각을 통해 녀석들에 대한 내 사랑의 깊이도, 그리움의 크기도 눈덩이처럼 커져만 간다.
반려견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했지만 녀석들과 함께 하는 동안은 '반려'라는 명사가 가진 의미를 미처 알지 못했다. 반려인으로서 누렸던 행복과 기쁨, 위안이 사라진 후에야 '반려'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하루 종일 지쳐서 퇴근할 때면(사실 언제나) 그런 나를 응원하듯 한결같이 힘차고 반갑게 맞아주었지. 그런 너희를 보면 덩달아 나도 힘이 났어. 또 고맙고 고마웠지.
돌아보니 부족한 내게 시종일관 사랑만 주고 갔구나. 산책이 숙제처럼 느껴져 귀찮다가도 그런 너희들을 보면 나 역시 사랑으로 보답하고 싶었어. 하지만 그러기엔 퇴근 후의 저녁 시간도, 남아 있는 내 체력도 항상 부족하기만 했지.
어지러운 세상사로 때때로 마음이 아픈 날은 너희를 품에 안고 한참을 있었어.
그러면 너희는 이미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콩닥거리는 심장과 온기를 내어주며 가만히 안겨 주었지.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심장이 차가워져 냉담해지려 할 때마다 너희의 순수한 눈빛과 가식 없는 몸짓을 보면 다시 마음을 데울 수 있었어. 위로와 공감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란 걸 알았지. 그렇게 너희를 통해 세상과의 교감을 이어나갈 수 있었어.
새롬아, 씩씩 아
엄마는 하루도 너희를 잊은 적이 없어. 잠자리에 누웠을 때, 산책하며 무심히 걷다가, 고구마를 먹다가, 황탯국을 먹다가, 집 근처 단골 동물병원 앞을 지나다가, 산책하는 강아지 친구들을 볼 때도 너희가 생각나.
함께 할 때도, 떠나고 나서 조차 마음속 사랑의 우물이 마르지 않도록 끊임없이 사랑이 샘솟게 해.
엊그제도 너희들 꿈을 꾸었어. 꿈에서도 엄마는 너희들과 산책을 했어.
앞으로도 엄마 꿈에 종종 놀러 와줘.
사랑한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그저 사랑해 내 아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