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붙이 같던 녀석들을 떠나보내고 전에 없던 불면증이 생겼다.
새벽녘 화장실을 다녀오면 다시 잠자리에 들기가 어려워졌는데 이부자리 위를 함께 뒹굴던 녀석들이 사라진 후 빈 공간의 허전함도 있지만 나와 붙어자며 살을 맞댈 때마다 느껴졌던 녀석들의 숨결과 온기가 사라진 이유가 더 크지 싶었다. 잠이 안올때마다 녀석들의 코골이 소리를 듣거나 부드럽고 따뜻한 몸을 천천히 쓰다듬으면 수면 유도 호르몬이 분비되는지 화장실 때문이건, 악몽을 꾸어 깨어나건 상관없이 불면의 고통을 겪지 않고 꿈나라로 순간 이동할 수 있었다.
내 평소 수면자세가 큰 대자인 이유도 녀석들 때문이다.
한 녀석은 오른쪽 겨드랑이, 한 녀석은 왼쪽 겨드랑이로 파고드니 자동적으로 양팔을 벌려 녀석들의 잠자리를 확보해 주어야 해 아예 큰 대자로 뻗어 자는 게 오랜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녀석들이 떠나고 한동안 지독한 불면증이 지속되자 안 되겠다 싶어 작은 강아지 모찌 인형을 구입했다.
그렇게 강아지 인형을 품에 안고 잠자리에 들었고, 새벽녘에 깨면 몹쓸 잠버릇으로 먼발치로 밀려난 인형을 데려와 다시 품에 안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정리하며 인형에게 베개를 베어주고 이불까지 정성스레 덮어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나이 50살에 어린 시절에도 갖고 놀지 않던 강아지 인형으로 뭐 하는 짓인가 싶다 가고 인형이 내 불면증 치료제라 둘러대며 민망한 마음을 위안하고 있다.
어제도 어김없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새벽에 깨어났다.
평소처럼 가수면 상태로 화장실에 다녀온 후 강아지 인형을 끌어안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 새롬이가 나왔다.
새벽녘 화장실에 다녀오니 새롬이가 내 오른편 옆자리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늘 그랬듯 녀석이 잘 자고 있는지 살피고 모로 드러누워 녀석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런데 꿈에서도 녀석의 따뜻한 피부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이어서 뺨을 녀석의 등에 갖다 대자 녀석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코로 전해졌다. 꿈에서도 내 의식은 반쯤 깨어 있었는지 무지개다리를 건넌 새롬이가 다시 내 곁에서 잠이 든 게 신기했고 또 녀석의 온기가 그대로 감각되는 게 놀라웠다. 그렇게 신기해하며 한동안 녀석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고 녀석의 몸은 살아있을 때처럼 따스했다.
보통은 녀석들 꿈을 꾸고 나면 깨어난 후 맞딱뜨린 상실감에 마음이 먹먹해져 한동안 가슴앓이를 하느라 그리움과 슬픔에서 헤어 나오기 힘든데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가볍다. 어쩌면 녀석들은 내가 자각하지 못하지만 시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고차원적 세상에서 나와 함께 숨 쉬며 살아있는 건 아닐까?
그러다 그리움의 무게가 커지고 깊어지다 못해 서로의 마음이 맞닿으면 녀석들이 머무는 세상의 문이 열리고 그 틈으로 꿈이 다리를 놓아 녀석들이 찾아오는 건 아닐까?
새롬아. 씩씩아.
엄마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너희가 있는 세상으로 건너갈 테니 그때 꼭! 꼭! 다시 만나자.
사랑한다 내 아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