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를 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끔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우연히 접한 사진 한 장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기는 경우도 있다. 후쿠오카의 메인 관광지도 아닌 우키하에 간 이유도 비슷하다. 우연히 빨간 도리이가 늘어선 사진을 봤는데, 후쿠오카에 이런 곳이 있다니 싶어서 망설임 없이 다음 여행지로 정해뒀다. 그렇게 우키하행을 정하고 직접 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볼게 많았다. 물론 로컬 여행을 좋아하는 내 기준이다. 별로 화려하지 않다 보니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먼저 향한 곳은 나의 덕심을 불타오르게 하는 계단식 논.
비 온 뒤 기온이 내려가서 그런지 수증기가 연기처럼 올라왔다.
우키하는 시골이다 보니 식사할 곳이 마땅치는 않다. 같이 간 언니가 초가지붕으로 된 가게에 꼭 가보고 싶다고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시골 풍경의 정석, 초가지붕.
일본 요리 중에 덴가쿠(田樂)라는 음식이 있다. 두부나 곤약, 야채 등을 꼬치에 꽂아 된장을 발라 구워 먹는 요리이다. 이전에도 가게에서 몇 번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사실 내 입맛이 아니었다.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는 음식이긴 한 것 같은데 별로 특징이 없는 심심한 음식이란 인상이 강했다.
조리된 덴가쿠가 그냥 접시에 날라져 와서 먹었을 때는 그 맛을 몰랐다. 그런데 직접 숯불에서 구워서 입맛대로 소스를 발라서 먹어보니까 이제야 그 맛을 알 것 같다. 찬 공기 밑에 옹기종기 모여서 아직 덜 익었나, 이제 먹어도 될까 하며 먹는 과정까지 포함해야만 비로소 이 요리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역시 음식은 그 풍토와 기후 그리고 그 문화 속에서 맛볼 때 비로소 제맛을 알 수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배도 두둑하게 채웠으니 오늘의 주요 목적지, 이나리 신사로 향했다. 이나리 신사하면 교토의 후시미 이나리 신사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고 실제도 다녀온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기도 하다. 그런데 빨간 도리이가 늘어선 곳은 교토 후시미 이나리 신사만 있는 건 아니다. 일본 각지에 있는 이나리 신사에도 빨간 도리이가 늘어서 있다. 교토만큼의 임팩트는 아닐지라도 한 번쯤 사진에 담고 싶은 풍경이다.
이나리 신사 자체는 풍작을 기원하는 여신을 모신 신사이다. 다른 신사와 달리 도리이가 많은 이유는 도리이를 많이 통과(通過) 함으로써 소원이 통(通) 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전해진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정상이 다다르자 우키하의 풍경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었다. 소박한 시골 풍경 속에서 도리이의 빨간색이 대조적이다.
이걸로 여행 끝? 은 아니고, 우키하에 옛날 숙사로 쓰였던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한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지쿠고(筑後) 요시이(吉井) 전통적 건축물 보존 지역이란 곳으로 흰색 벽으로 통일된 건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무난할 것 같은 흰색 벽을 잘 살펴보면 건물마다 화려한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고테에(鏝繪)라는 일본 전통 건축 장식 기법이다. 회반죽으로 조각을 해서 건물 외관을 꾸민 것으로 부의 상징을 의미한다고 한다. 지금처럼 건축 기법이나 재료 등이 다양하지 않았던 시대에도 개성을 드러내고자 나름대로 외관을 꾸몄던 게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 한 가지 더 일본의 전통을 느껴볼 수 있었는데, 바로 어린이날의 장식이다. 일본은 여자아이의 날(3월 3일)과 남자아이의 날(5월 5일)이 구분된다. 형식을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각각의 날마다 정해진 장식으로 집안을 꾸민다. 여자아이의 날에는 '히나 인형'이라고 불리는 인형 세트로 장식한다. 남자아이의 날에는 잉어 모양의 천을 매달은 '고이노보리'로 장식하고 무사의 모자인 '가부토'(혹은 가부토 문양이 들어간 물건)를 선물한다.
요시이에 히나 인형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었다. 규모도 크고 한번 장만하려면 가격도 비싸기 때문에 간소하게 하는 집안이 많지만, 이 지역에서는 대대로 인형 세트를 물려주면서 소중하게 보관해왔다는 게 느껴진다.
소박하지만 알찬 시골 여행. 도시 관광지와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풍경이 한적하고 소박하기 때문에 각각의 장소들이 더욱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