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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하루 Apr 25. 2020

아내의 고민   

장거리 부부 생활을 마음먹기까지

남편을 떠나 일을 하고자 마음먹은 건 2017년 봄이었다. 긴 장거리 연애에 마침표를 찍고 막 결혼 3년 차가 되었을 때다. 결혼 생활이 안정되면 보통은 가족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집 장만을 준비하는 등 가족과 관련된 인생 계획을 짠다. 그런데 나는 문득 조급해졌다. 20대의 끝에 와 있는데 일적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도 못한 것 같고 만약 이대로 임신-출산-육아가 시작되면 바로 경단녀가 되어 고립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더 늦기 전에 조금이라도 스스로 납득할 만한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남편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안정적인 관계가 형성됐다고 실감하던 때였다. 결혼 전에 떨어져 연애를 했기 때문인지 결혼 직후엔 서로 맞춰 가야 할 부분도 있었지만 그 시기를 현명하게 지내왔고 마침내 정말 ‘가족’이라는 단단한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안에는 스스로 극복해야 할 ‘나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했다. 나에겐 내 ‘일’이 필요했다. 단순히 자아실현 욕구가 강한 걸 수도 있지만 타지의 이방인으로써 조금이나마 나다움을 잃지 않고자 하는 발버둥에 가까웠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내가 택한 외국이라는 타지에서의 삶이지만 그 저변에는 쉽게 극복되지 않는 이질감과 고독감이 깔려 있다. 고맙게도 내 곁에는 든든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긴 하지만 이 해소되지 않는 감정들을 대신 안아줄 수는 없다. 이런 감정들에 파묻혀 심리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내게는 사회와의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에게 내 일을 갖는다는 건 거창하게 말하자면 내 마음을 지키고자 하는 자기 방어책이랄까.


결혼을 계기로 첫 직장을 퇴사한 후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이면서 2년 가까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비겁하게 자꾸 환경 탓을 했다. 여기가 아니라 좀 더 큰 도시였다면,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었다면. 스스로 택해서 여기까지 온 건데 언제까지 환경 탓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환경이 걸림돌이라면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돌고 돌아 번역일에 전념하고자 마음을 먹고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번역 회사에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무리 대학에서 어문학을 공부하고 일본 현지에서 직무 경력이 있다고 한들 ‘번역’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문턱이 높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전 직장에서 번역 전담 직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흔치 않은 기회였다. 직감적으로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터무니없이 먼 거리지만 정해진 기간 동안 경력을 쌓고 돌아왔을 때는 분명 값진 경험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는 매일 깨어 있는 시간 내내 계속 고민하고 자문했다. 남편과 떨어져 지내면서까지 그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두 집 살림을 할 경우 금전적인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등등 현실적인 문제를 최대한 냉정하게 짚어봤다. 장거리 연애를 청산하려고 결혼했는데 또다시 장거리라니, 내가 미치지 않고선. 당장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도 다시 돌아왔을 때 직장이 보장된 것도 아닌데 너무 눈앞의 상황에만 급급한 게 아닐까. 그렇게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고민을 거듭할수록 오히려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그렇지만 어렵게 꺼낸 마음을 쉬운 핑계로 덮어버릴 수 없었다. 때로는 궁지에 몰려야 본심과 마주할 수 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찾고자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그동안 '결혼'을 핑계로 시도조차 하지 않고 많은 것들을 놓쳐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뜻이 있다면 결혼을 했건 안 했건 아이가 있던 없던 뜻을 이루고자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저마다 놓인 환경이 다를지라도 그 안에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끊임없이 찾아갈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 결혼을 둘러싼 관습과 인식이 버겁다며 투정댔지만 그것들에 불필요한 무게를 더한 건 정작 내 자신이었다. 그래서 이 고민을 '결혼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끝맺긴 싫었다. 소신이라 믿는 것이 사실은 아집에 불과할지라도 해보지도 않고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결혼한 여자도 집을 잠시 떠나,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해도 된다는 걸 누구보다도 내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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