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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하루 Jun 16. 2020

꼭 보통의 아내여야 할까

장거리 부부 생활을 마음먹기까지 part2

우리가 부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오래 연애하는 동안 언젠가 서로의 동반자가 된다는 걸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만 그저 평생 같이 있고 싶었을 뿐 ‘결혼’ 자체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같이 있기 위해선 ‘결혼’이라는 틀이 필요했다. 우리가 만약 가까운 거리에서 연애를 했다면, 내가 이곳에서 외국인 신분이 아니었다면, 아직 결혼을 안 하고 오랜 연인 사이였을 지도 모르겠다. 오랜 장거리 연애로 찾아온 피로와 외국인이라는 신분상의 불안정함에서 벗어나 우리가 함께 안정적인 삶을 꾸려가기 위해 ‘결혼’이라는 틀에 들어갔다.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그래서 였을까. ‘결혼’은 우리가 같이 있기 위한 법적 테두리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라는 타이틀이 붙고 나니 주변의 시선이 변해갔다. 내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니길 강요받는 듯한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물론 개인이 만나 함께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꾸렸으니 내 삶 속에 여러 가지 역할이 늘어났고 그에 책임이 따라오는 건 당연했다. 결혼은 삶의 평온과 안정을 주었고 남편과 함께라서 일상이 더 풍성해졌다. 다만 결혼이 갖는 기존의 관습이나 인식들이 나에겐 때로 버거웠다. 나는 ‘온전한 나’와 ‘가족 안의 나’를 나란히 두고 싶은데 균형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다. 간혹 너무도 당연히, 또 너무도 쉽게, 가족의 역할을 더 우선해야 한다는 인식과 마주할 때는 가슴 한켠이 꾹 막힌 듯 답답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결혼이 여자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마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것도 모르고 결혼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한때는 나한테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안 맞는 걸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수긍이 안 됐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게 정말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존재임은 확실한데 왜 결혼이라는 틀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생활에 불편함이 생기는 걸까. '결혼하면 변한다'는 쉬운 말로는 결론이 안 났다. 결혼 이후 사소한 가사 분담부터 앞으로의 가족계획 등에 대해 의문이 생길 때마다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여자’인 나뿐만 아니라 ‘남자’인 남편 또한 나와는 다른 차원의 희생이 강요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성별에 따른 희생의 불균등이라기보다 ‘남편은 이래야 해’, ‘아내는 이래야 해’라는 부부 역할에 대한 통념이었다. '그래도 남편은 아내보다 번듯한 직장을 다녀야지', '그래도 아내는 육아와 집안일에 소홀히 하면 안 되지' 등의 인식에 우리만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휩쓸렸다. 그러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남편의 역할', '아내의 역할'을 강요해왔다. 사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인생을 꾸려가는 과정에 정답이란 게 없을 텐데 왜 모범답안 같은 것을 만들어 거기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걸까. 기존의 인식이 불편하다면 굳이 다 따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보통의 아내', '보통의 남편'과 다를지라도 우리에게 맞는 방식으로 가족이라는 세계를 만들어 가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그래도 아내는 가정을 우선시해야지 ‘, ‘그래도 부부는 같이 있어야지’라는 통념에 소심한 반기를 들고 결혼까지 했지만 내 일을 하기 위해 당분간 남편과 떨어져 일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스스로 자칭 타칭 ‘이기적인 아내’의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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