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떤 하루 Jun 24. 2020

일본에서 <사랑의 불시착> 인기가 심상치 않다

제목 그대로다. 일본에서 <사랑의 불시착> 인기가 심상치 않다. 넷플릭스 1위를 달리는가 하면 일반인, 연예인 할 것 없이 SNS 상에는 '불시착 폐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공영 방송인 NHK의 아침 뉴스에 소개되었고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각종 언론 매체에서도 인기를 분석하는 기사를 내놓고 있을 정도다. 


나는 주로 영화를 보는 편이라 한드, 일드, 미드 구분 없이 드라마를 잘 안 본다. 그래서 주변 일본 지인들이 한류 드라마를 좋아한다며 친근감을 표시해줄 때마다 그럴 만한 반응을 보여주지 못해 매번 미안하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한류 드라마'가 하나의 장르로써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건 잘 안다. 공중파, 케이블 등등 많은 매체에서 한국 드라마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한국 드라마 보는 사람 = 한류팬'이라는 공식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을 만큼 가볍게 한국 드라마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물론 여전히 한국 드라마는 여자들이 보는 거, 아줌마들이 보는 거라며 선을 긋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사랑의 불시착>은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 최근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국 문학 열풍과 비슷하게 그 수요층이 기존 한류 팬의 범위를 벗어났다. 다양한 연령대는 물론,  남성들까지 팬임을 자처한다. 특히 대다수가 이전까지 한국 드라마를 전혀 본 적이 없다는 점도 흥미롭다.


나는 이 드라마를 아직 안 봤기 때문에 넷플릭스 메인 화면에 '일본 콘텐츠 1위'라는 문구가 떴을 때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남한과 북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소재 또한 전혀 새로운 시도도 아닌지라 솔직히 크게 흥미가 생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요 몇 달 사이 일본에서 개인 SNS뿐만 아니라 티브이, 신문 등 곳곳에서 이 드라마를 언급하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인기를 분석하는 걸 보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었다고 듣긴 들었지만 저 정도로 화제가 되었나 싶기도 해서 일본 내 반응을 좀 찾아봤다. 몇몇 매체에서 인기를 분석한 내용을 찾아보니 공통적으로 북한이라는 소재가 주는 호기심과 북한 생활상의 리얼한 묘사,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 고퀄의 각본과 연출, 주연 배우들의 인지도 등을 꼽고 있다. 그 외에 드라마 외적 요인 등을 분석한 내용이 있어서 몇 가지 소개해본다.


현실성을 반영한 캐릭터 설정과 두 남녀 주인공의 관계성이 공감을 얻었다.

여주인공이 자립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새로운 여성상으로 그려진 한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경계심이 강하고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 다소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과 상통한다고 분석하였다. 또한 두 남녀 주인공의 관계가 '히어로형 남주', '현모양처형 여주'가 아닌 '동등한 인간으로서 삶을 마주하는 파트너'로 그러져 있어 개개인을 중시하는 앞으로의 시대에 걸맞은 이상적인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동 제한', '집콕'이라는 현재 상황과 맞물려 넷플릭스의 이용자가 늘었다.

대부분의 매체가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집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완성도 높고 평가 좋은 작품의 시청 기회가 증가했다는 점을 꼽았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는 현재 상황이 작품의 설정과 절묘하게 맞물려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본질적인 사랑의 숭고함을 그린 작품을 통해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고 분석하였다.


<사랑의 불시착> 인기는 일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반면, <사랑의 불시착>의 인기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한 기사도 있다. 그 근거로 미국 영화 평점 전문 사이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점, 타임지와 워싱턴포스트지에서 소개된 점을 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이유로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전략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제작 스튜디오의 힘을 꼽았다. 뿐만 아니라, '자막의 벽'을 언급했던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을 인용하여 전 세계와 소통하는 유튜브, SNS의 영향으로 해외 콘텐츠를 접하는데 자막이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님을 기생충과 사랑의 불시착이 증명했다고 말한다.  


그 밖에도 한 대학 교수는 2001년 한국 정부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을 설립하여 민간과 함께 양질의 콘텐츠를 해외에 수출하고자 노력해왔고 그 노력이 지금 세계 곳곳에서 결실을 맺고 있다고까지 분석하고 있다.


<사랑의 불시착>의 인기가 3차 한류 붐을 완성시켰다는 평가가 있다. 2003년 겨울 연가로 시작된 중장년층 여성 중심의 1차 한류 붐과 2012년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 등 아이돌 그룹으로 대표되는 케이팝 중심의 2차 한류 붐을 거쳐 2017년부터 10~20대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화장품, 패션, 음식 등을 SNS로 공유하는 형태의 3차 한류 붐까지 오랜 시간 동안 일본 내 한류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진화해왔다. 특히 3차 한류 붐은 수용자들의 적극적인 SNS 활용을 통해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1차, 2차 한류 붐이 전략적인 한류 산업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류 전문가들이 선별한 콘텐츠가 시간차를 거쳐 일본에 상륙했다면, 3차 한류 붐은 젊은 세대들의 적극적인 SNS 활용을 통해 한국의 유행이 거의 실시간으로 일본에 전해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한국 현지에 거주하는 일본 유학생이나 일본에 거주하는 한류팬들이 흥미로운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때로는 발굴까지 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아마 그래서 한국 문화에 접점이 없었던 사람들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랑의 불시착>의 인기는 넷플릭스라는 거대 플랫폼의 힘과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맞물리면서 그 '덕'을 본 것은 맞는 말이다. 다만 단순히 '접근성이 용이해서'나 '시청 기회가 늘어서'라는 점보다 기존 한류팬과 새로운 수요층이 스스로 '불시착 폐인'임을 공표하며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지금까지 한류 드라마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그중에는 심지어 한류 드라마에 반감을 가졌던 사람이나 처음엔 드라마 제목이 촌스러워서 전혀 기대도 안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정주행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드라마 팬들끼리 온라인 감상회를 열거나 예능 프로에 출연한 연예인이 사랑의 불시착을 봤냐는 말로 안부를 대신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불시착하여 타인과의 물리적 교류가 제한된 지금, 이 드라마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떤 공통의 주제로 타인과 공감을 나누는 행위가 심적으로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안도감을 준 건지도 모르겠다. 혹은 드라마라는 비일상적인 주제로 타인과 소통하면서 잠시나마 코로나 현실의 불안과 피로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많은 넷플릭스 콘텐츠 중에 왜 하필 <사랑의 불시착>이었을까. 그건 아무래도 드라마를 직접 봐야 의문이 풀릴 것 같다.


[참고 기사]

https://news.yahoo.co.jp/articles/02ae1c09ca06614df60c122cac3dc9a6b3900244

https://toyokeizai.net/articles/-/350667

https://www.businessinsider.jp/post-211538



매거진의 이전글 가지마루와 함께 한 1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