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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하루 Jun 15. 2020

가지마루와 함께 한 1년

다사다난했던 시간을 지나 반려식물이 되기까지

집이 너무 휑해서   전부터 작은 식물들을 집안에 렸다. 근데 요령이 없던 건지 정성이 부족했던 건지 오래  가서 시들어 버렸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든 생명체는 정성이 중요하다는  깨닫고 아무리 식물이라도 섣불리 키우면  되겠구나 맘을 접으려던 찰나에 만난  가지마루였다.


지금처럼 '반려 식물'이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전이고 사실 관상용으로 산 거라 '관엽식물' 그 이상의 의미도 없었다. 그런데 역시 생명력이 대단한 건지 제때 물 주고 햇빛만 잘 쬐어 줬더니 따로 관리를 안 해줘도 무럭무럭 잘랐다. 그때부터 남편은 가지마루 키우기에 재미가 붙었다. 매일 아침 나무를 들여다보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퇴근하면 가장 먼저 가지마루 곁에 가서는 사소한 변화를 찾아내며 좋아하곤 했다.

2019년 3월, 우리집에 온 지 얼마 안 된 가지마루


그렇게 1년을 같이 했더니 어느새 훌쩍 자라 버렸다. 그런데 그즈음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잘 자라준 건 고마운데 가지마루가 이런 모양이었나...? 원래 밑가지가 점점 두꺼워져야 하는데... 그제야 인터넷에 이것저것 알아보니 그때그때 적당히 가지를 잘라내면서 모양을 만들어줘야 했었다. 밑가지는 여전히 가느다란데 몸집만 커진 거다. 크기가 커진다고 다 좋은 게 아니었다. 이 상태면 몸만 커졌지 영양소가 전체에 골고루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점점 커지고 있으니 잘 자란다고 안심했을 뿐 정작 속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이다.  

2020년 2월, 커질 대로 커진 가지마루


무작정 커지는 게 결코 좋은 게 아니란 걸 깨닫고 하루빨리 가지를 쳐내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정이 많이 들었는지 가지 하나조차 쳐내기 미안하다며 가지치기를 미루고 미뤘다. 그렇지만 불균형하게 비대해졌을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이 녀석이라 날이 더 따뜻해지기 전에 날을 잡았다. 어느 가지를 쳐내야 할까 이것저것 알아보고 고민하다가 이 상태면 어느 걸 쳐내도 별로 좋아질 거 같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왕 자를 거면 밑가지를 두껍게 만들어서 튼튼하게 길러보자 마음먹고 가지를 전부 다 쳐내기로 했다. 그래도 1년 동안 기른 건데 다 잘랐다가 이대로 죽으면 어쩌지 걱정도 됐지만 이 녀석의 생명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른 허리만큼 자랄 때까지 1년이란 시간이 걸렸는데 잔가지까지 전부 다 쳐내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깝다는 마음을 쉽게 져버릴 순 없었지만 이 녀석은 이제야 숨통이 트인 게 아닐까, 너무 늦게 잘라줘서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녀석의 크기가 내가 쏟은 정성에 비례한다고 믿었던 건 그저 자기만족에 불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정작 녀석에게 정말 필요했던 부분에는 미처 신경 써주지 못했다. 그렇게 가지 하나하나에 녀석의 대한 미안함과 반성을 담아 잘라냈고 그 결과 민둥머리로 다시 태어났다. 열흘 정도 감감무소식이어서 제대로 자른 게 맞나 엄청 걱정했는데 조금씩 잎이 돋기 시작했다.

5월 22일, 가지 친 지 열흘 만에 잎이 돋기 시작한 가지마루


그렇게 마음을 좀 놓았는데 이번엔 갑자기 초파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 년 남짓 키울 때도 벌레 하나 없었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조마조마했다. 흙이 안 좋거나 유기비료를 사용했을 때 벌레가 생긴다는데 아뿔싸 뭣도 모르고 유기비료를 넣어준 것이다. 유기비료를 주면 더 잘 자랄까 싶었는데 괜한 욕심이었다. 이 또한 ‘나는 좋은 거 해줬다’는 자기 만족 내지는 자기 안심이 불러온 대참사였다. 한두 마리였던 초파리는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늘어갔다. 흙을 새로 바꿔주는 게 제일 좋다고 하는데 얼마 전에 분갈이를 해준 터라 또다시 뿌리를 드러내기엔 부담이 컸다. 결국 약을 사용하기로 했다. 다행히 약을 사서 뿌렸더니 초파리들이 점차 사라졌다. 키우기 쉬운 식물은 있어도 ‘잘’ 키우기 쉬운 식물은 없는 것 같다. 뭐든 ‘잘’ 키우기 위해선 그만큼 공부와 시간,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6월 2일, 벌레 피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자라고 있는 가지마루


마침내 가지치기 한 달 만에 잎 다운 잎이 자랐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6월 11일, 제법 잎 다운 잎이 자란 가지마루


사실 관상용으로 키우기 시작한 거라 이렇게 애정이 생길 줄 몰랐다. 제때 물만 주고 햇빛만 쬐어 주면 될 줄 알았는데 가지도 쳐줘야 하고 화분도 갈아줘야 하고 벌레 퇴치도 해줘야 하고. 처음엔 좀 귀찮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아침마다 들여다 봐주고 살펴준 만큼 조금씩 변해가는 걸 보고 일상의 소소한 감동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크기가 커지거나 비싼 비료를 쓰는 게 반드시 올바른 성장이 아니라 식물도 다 저마다 성장 방식과 속도가 있다는 큰 배움을 얻었다.


무엇보다 남편이랑 식물을 같이 키우면서 공통 화제가 늘어났다. 거창하지만 식물이라도 작은 생명을 함께 키운다는 책임감 같은 게 생긴 것 같다.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 소설(제목은 기억이 안 나네...) 중 어떤 연인이 함께 동물을 키우면서 서로가 강한 연결 고리로 이어졌다는 걸 깨닫는 내용의 작품이 있는데, 일 년 동안 가지마루를 키우면서 새삼 우리의 관계 속에서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그 존재의 소중함을 함께 공유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고맙다, 가지마루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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