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언제 봄이 왔나 싶은데, 벌써 6월이다. 다른 지역은 장마가 시작됐다는데(오키나와는 벌써 끝났지만), 장마도 없고 선선하고 맑은 날이 많은, 단연 삿포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 시작됐다. 몸도 마음도 가장 의욕이 충만해지는 시기이다. 그동안 못했던 것들, 미뤄왔던 것들에 다시 기웃거리게 된다. 그중 하나,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5년 전, 프리랜서로 일의 형태를 바꾸면서 집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당시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지루하고 답답한 생활이 이어졌다. 강약 없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몸도 마음도 둔감해지고 시도 때도 없이 무기력해졌다. 이 상황에 매몰되고 싶지 않아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정신력으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고, 특히 나처럼 의지가 약한 사람은 철저히 몸에 정신이 지배된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몸을 움직여 보기로 마음먹었다.
시작은 '하루 1시간 걷기'였다. 집에서 일하면서 급격히 줄어든 활동량을 보충할 겸, 체력도 키울 겸, 바깥공기도 쐴 겸, 기분 전환도 할 겸,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서 출발해서 근처 공원을 끼고 한 바퀴 돌고 나면 정확히 4킬로, 1시간이 걸렸다. 아침에도 걸어보고, 점심 먹고 나서도 걸어보고, 일을 다 마친 저녁 즈음에도 걸어보면서 내가 가장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시간대를 찾아보려고 했다. 목적지는 매번 같지만 지나는 길을 바꿔보기도 하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땐 좀 더 멀리 돌아가보기도 하면서 작고 소소하지만 새로운 자극을 발견해 보려고도 했다. 걷는 게 익숙해질 무렵, 눈도 녹고 날도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하자 늘 걷던 길에 하나 둘, 달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천천히 걷는 내 옆을 앞질러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힘들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매일 걷는 길이 점점 단조롭게 느껴질 즈음, '그래도 달리고 나면 참 상쾌하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움트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뛰려니 제대로 뛰어본 적이 없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복장이 이게 맞는 건지, 자세는 문제가 없는 건지, 괜히 주변을 의식해서 인적이 드문 길로 뛰어 보기도 하고. 모르겠다, 일단 뛰어보자 싶어서 무작정 달려봤다. '의외로 달릴 만하네', '내 체력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금세 우쭐해졌다. 그런데 초짜는 초짜였다. 다음날 바로 무릎이 아파왔다. 못 모르고 달렸다가 무릎만 다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밀려왔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무슨 달리기람 하며 바로 포기했을 텐데 잠깐 달렸을 때 느낀 상쾌함과 달린 후의 성취감 같은 게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걸을 때는 머릿속의 뒤엉켰던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이 샘솟기도 하는데, 달릴 때는 목표한 만큼 끝까지 달리기 위해 지치지 않으려고 호흡에 신경 쓰고 자세에 신경 쓰다 보면 머릿속이 아예 '無'가 되었다. 오로지 달리는 행위에만 집중하게 된다. 숨 쉬듯 잡념이 떠오르는 나에게 정말 필요한 시간이었다. 이때부터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큰 결심을 세우고 시작한 게 아닌데 달리다 보니 기대 이상으로 느낀 게 많았다. 오히려 거창한 목표 없이 시작해서 소소한 것에 기쁜 걸지도.
먼저, 일과 일상의 온오프 스위치가 되었다. 집에서 일하다 보면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가 많다. '일'에서 '생활'로 스위치를 바꾸는 잠깐의 휴식조차도 같은 공간에서 이뤄지다 보니 기분 전환이 쉽지 않다. 일하다 생긴 스트레스가 저녁을 준비하면서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하루 업무를 끝내고 저녁 준비를 하기 전 30분가량 뛰다 오면 일하다 느낀 부정적인 감정들이 어느 정도 누그러진다. 오름막과 내림막이 적절히 갖춰진 길을 달리다 보면 사실 중반까지는 숨이 차서 딴생각을 할 여력이 아예 없다. 잡생각을 차단하고 나면 오늘 느낀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한번 걸러낼 수 있어 달린 후에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상쾌해진다.
또, 달리기가 가져다주는 성취감은 소소하지만 자그마한 자기 긍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령 오름막을 오를 땐 매번 언제 끝나나 조급해지기 마련인데,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오르막의 끝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지면에 시선을 두고 집중하면서 달리다 보면 어느새 그 끝에 도달하게 된다. 사소하지만 어떠한 형태든 한계를 넘었을 때 느끼는 쾌감은 정말 각별하다. 이 기억이 나머지 길을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오늘도 끝까지 달릴 수 있을까 불안해질 때마다 등을 떠밀어주는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한다. 특히 나처럼 게으름에 대한 자책이 있는 사람에겐 오늘 하루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댄 날에도 저녁 전에 잠깐 달리고 오면 별거 아닌데 스스로 기특해진다. 체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풍족해진다.
그런데 달리기를 좋아하지만 겨울만 되면 자동 휴식기에 들어가니(물론 추위와 빙판길을 무릅쓰고 달리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봄이 왔을 때 다시 이전의 페이스를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 요 근래의 '러닝붐' 때문에 마치 착실하고 성실한 사람 마냥 비칠까 두려운데, 오히려 그 반대이다. 겨울 동안 눈을 핑계로 눈 감아온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벗어나지 못해 '뛰지 않을' 온갖 핑계에 끝끝내 져버린다. 그렇게 올해는 제대로 뛰어야지, 뛰어야지를 입버릇처럼 달고 지내다가 결국 몇 번 뛰지 못한 채 다시 겨울이 시작되는 현실. 그래도 불현듯 뛰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을 때 큰 고민 없이 가볍게 뛰고 올 수 있을 정도의 친숙한 존재가 되어 어찌저찌 가늘게 이어져 온 '달리기'와의 관계. 올해는 멘탈 지키기와 더불어 재작년부터 시작한 등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얼마 전부터 조금씩 다시 뛰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오랜만에 뛰어서 자세도 안 잡히고 다음날 다리도 많이 뻐근했는데, 속도보다는 보폭과 착지법, 고관절 움직임에 신경을 쓰니 예전보다 오래 그리고 멀리 달릴 수 있게 되었다. 페이스를 유지하면 오르막에서도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다는 새로운 깨달음도 얻었다. 겨우 다시 친해진 '달리기'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내일도 저녁 7시가 되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스트레칭하고 현관문 박차고 문 밖으로 나가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