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의 이탈리아어 열정 노트
4년 전 일이 지금은 모두 까마득한 옛일 같다. 그때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이 마치 잔혹동화처럼 없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7년 전 일도. 이렇게 세월이 까마득하게 느껴질지 기대하지 않았다. 4년 전에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고싶은 일은 따로 있었고 몸에서 항상 풍기는 튀김냄새가 샤워를 하는 순간만 없어지기 때문에 많이 괴로웠다. 그 괴로움을 아무리 표현해도 온전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책을 읽지 못하는 괴로움도 우스갯소리로 듣곤 해서 굳이 그 고통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알리겠다는 욕망도 곧 없어졌다. 너무 고단하고 괴로워서 이 시간을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을까 24시간 내내 고심했는데 그때 내 표정을 어제 막둥이에게서 보고 그만 가슴이 먹먹해졌다. 인생으로 사람의 크기가 압축되고 쪼그라드는 순간을 제일 싫어한다. 물론 많은 이들이 그러한 인생을 살고 그러한 순간들을 맞이한다는 걸 알지만 어째야 그래야 하는지 그것이 마치 자연스러운 인생의 수순, 어른의 인생으로 미화되는 순간들이 싫다.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로 쓴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를 완독했다. 천천히 읽을 생각이었는데 후딱 읽고말았다. 밤에 마신 커피 영향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 결국 늦잠을 잤다. 사람들 각자에게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삶의 크기가 있을까. 어제 이물감이 잔뜩 드는 새로 시작했다는 드라마를 엄마 집에서 잠깐 보았다. 괴로웠다. 그저 낯선 세상의 이야기로구나 이런 마음이 아니라 온통 폭력으로 둘러싸인 느낌. 그런 공간애서 사람과 사람들이 얽히는 순간들을 인간이라면 마땅히 겪어야 하는 것처럼 그리는 것도 싫었다. 작가가 이야기를 통해서 그려내고자 하는 테마는 따로 있다는데 나는 이 드라마를 보지 못하겠구나 알았다. 엄마는 벌써 열광하는중. 온갖 볼거리와 달디단 것들이 한가득 쌓여있으니 저어할 까닭이 없다. 우리 엄마는 미친듯 욕을 하면서 이 드라마의 열혈 시청자가 되겠구나.
줌파 라히리 책을 한 권씩 모으고 있다. 천천히. 느긋하게. 한글로 다 읽고 영어로 다 읽고 이탈리아어로도 읽을 계획이다. 한곳에 오롯이 집중해야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낯설고 어려운 발음. 아직 명료하게 와닿지 않는 언어. 딸아이는 이제 막 시작했지만 놓지 않고 계속 이탈리아어를 데리고 간다면 곧 나보다 훨씬 다양하고 폭 넓은 이탈리아어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일순간 부러웠다. 그 아이가 가진 무궁무진해보이는 능력과 그 폭. 책을 정리하고 정리하고 정리해도 끝없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까닭이겠지만 문득 이 모든 걸 멈춰야 하는 순간이 오리라는 걸 안다. 그래서 더 집요해지고 더 탐욕스러워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수순이지만. 다른 삶의 형태를 꿈꾸기에 어떤 언어를 택하고 그 언어를 공부한다는 사실이 좀 웃겼다. 소리내어 웃고싶었다. 다 읽고난 후 이 작은 책_ 글 속에서는 포켓북 미니 이탈리아어 사전을 뜻하지만 내게는 이 작은 책이 거인처럼 느껴졌다. 정확히는 줌파의 열정이 줌파의 사랑이 줌파의 글쓰기가. 그래서 못난 마음이 들 적마다 이 열정을 본받아 이탈리아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