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카페 사장의 커피 애정 행각
마지막 커피 캡슐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용한 한 남자가 있다. 출근하기 전에 마지막 커피 캡슐을 시원한 얼음 담긴 우유컵에 담아 꿀꺽꿀꺽 마시고 출근한 남자. 아침이 되어 커피로 수혈을 해야 하는 한 여자는 오늘따라 차가운 보리차를 두 잔 아무 생각 없이 시원하게 마시면서 블로그에 일기도 쓰고 이웃님 블로그 글들 보면서 힐링하고 슬슬 허기가 느껴질 즈음 사과를 하나 베어물고 조금 더 디비디비 하면서 놀다가 역시 아침 빈 속에는 커피 한잔이지! (이 말을 제일 싫어하는 우리 엄마와 시엄마, 빈 속에 커피 마시면 위 다 버려. 제발 빈 속에 커피 좀 들이붓지마! 이 말을 건성으로 흘려들으며 아침 빈 속에는 커피 한잔인데 캬 엄마가 그 맛을 모르는군 대꾸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머신을 켜는 나를 째려보는 다정한 그들) 의자에서 거대한 궁둥이를 일으켜 머신에 전원을 켜고 캡슐통에서 캡슐을 찾는데........ 캡슐이 없다. 캡슐이 없다. 캡슐이 없다. 비상! 비상! 비상! 적색 사이렌이 울리며 뇌 속에서 비상 비상 비상이 연이어 들리고 당황한 나는 비상용으로 한 줄씩 숨겨놓는 찬장칸을 뒤적거려보았지만 비상용 캡슐마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오 맘마 미아! 알라딘 커피를 꺼내자. 하고 알라딘 커피콩알들 담아놓는 칸을 뒤적거려보았으나 그래보았으나 커피콩 딱 세 알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오 신이시여, 어찌하여 이 평화로운 아침부터 제게 이런 시련을 안겨주시나이까! 주저앉아 통곡을 하려는 찰나 냉동실에 테이스터스 초이스가 있었던 걸 얼핏 봤던 것도 같다. 잽싸게 다시 일어나 냉동실 문을 벌컥 열었다. 반짝반짝 아름다운 붉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테이스터스 초이스가 나를 반긴다. 오, 그대여! 소중하게 감싸안고 물을 끓인다. 테이스터스 초이스가 발끈하며 이야기한다. 너는 맨날 네스*** 커피캡슐 아니면 알라딘 커피콩만 마시다가 그들이 없으니까 나를 찾는구나. 정말 어이가 없네! 내게 사랑 고백을 한 날이 얼마나 됐다고! 이제 겨우 33년이 지났을 뿐인데 어쩌면 그렇게 사람 마음이 쉽게 바뀌니! 그게 사랑이니! 흑흑흑 눈물을 흘리며 성질을 내는 그녀를 달랜다. 아니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다만 다만...... 그 다음에 마땅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아 진땀을 흘린다. 진땀을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를 째려보며 그녀는 말한다. 비상시에 너를 구해준 이는 누구지? 바로 그대지! 바로 테이스터스 초이스 당신이지! 눈물을 훔치며 그녀가 말한다. 나를 잊으면 안돼. 너를 커피에게 처음 이끈 이가 누구야? 바로 나잖아. 근데 나를 그렇게 쉽게 잊고 버리면 나는 용서할 수 없어. 응응, 알았어. 너를 처음 만난 그날, 네게 반한 그날, 너에 대한 사랑으로 세상이 달리 보인 그날. 결코 잊지 않을게. 계속 사랑할게. 달디단 말을 내뱉는다. 이렇게 날이 뜨거운데 핫은 아닌 거 같다. 갱년기가 코 앞인지라 커피도 핫만 요즘 마시기는 하지만 오늘은 안되겠다 그래서 생수를 끓이고 생수를 유리컵 안에 담고 얼음을 한그득 넣고 머그잔에 테이스터스 초이스를 아빠 숟갈로 한그득 담아 넣고 다 끓인 물을 졸졸졸 넣어 스푼으로 휘리릭 녹이고 얼음 담긴 유리잔 안에 커피를 졸졸졸 담는다. 퍼지는 저 아름다운 커피 빛깔. 아름답구나. 애정하는 비스킷을 세 개 접시 위에 올려놓는다. 책상 위에 앉는다. 받침도 없이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유리잔을 올려놓는다. 꿀꺽꿀꺽. 진하디 진한 테이스터스 초이스가 오늘 아침 나를 살렸다. 아침에는 그대와 함께~ 테이스터스 초이스!
테이스터스 초이스를 꿀꺽꿀꺽 마시면서 커피 캡슐 100개 주문 완료하고 르완다 키베자 하나 주문 완료. 초등학교 다닐 때 엄마아빠가 즐겨 마시던 테이스터스 초이스를 커피잔에 담아 처음 엄빠를 위해서 커피를 탄 그 날 기억. 처음 맛본 날 그 환상적인 맛에 취한 기억. 설탕과 프림도 꽤 들어갔는데 테이스터스 초이스 두 스푼과 설탕 두 스푼과 프림 두 스푼의 맛을 처음 알게 된 그 날 일기장에 적어놓은 문장들.
나는 커피를 사랑하게 될 거 같다. 세상에 이토록 아름답고 향기로운 게 존재한다니. 평생 사랑하겠다. 매일매일 사랑하겠다. 이 마음을 다해 이 몸을 다해 사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