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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파크 Dec 14. 2022

[당신의교도관]9. Y의 추억

가깝고도 먼 수용자 Y에 대하여.


영화 <<살인의추억>> 中.




 교도관들은 한달마다 순찰 경로가 달라지는데 지난 한달간 나는 정신재활수용자 사동을 순찰했다.

정신재활수용자 사동(정신재활사동)은 국가가 인증한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수용자들이 모여 있는 수용동을 말한다.

정신재활사동의 밤은 다른 사동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다.


 우선, 수용자들이 잠을 잘 자지 않는다.

여러 이유로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수용자들이 몇몇 있다.

대표적인 수용자가 Y다.

Y와의 인연은 나의 오십 일 교도관 역사 중 꽤나 비중을 차지하는 일에 속하는데 우리의 첫만남은 아주 강렬했다.

처음 정신재활사동에 들어간 나는 긴장을 머금고 사동으로 걸어 들어 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습은 흡사 <<양들의침묵>>에서 처음으로 한니발 렉터 박사를 찾아 정신병동에 들어 간 클라리스 같았다. 

클라리스는 그곳에서 한 남자 수용자의 정액을 얼굴에 맞는 수모를 겪었는데 정신재활사동에 처음 간 나에게 수모를 준 수용자는 바로 Y였다.

새벽 다섯 시, 딱딱 소리를 내며 청소를 하고 있는 수용자의 모습이 내가 보았을 땐 이상했다.

그래서 수용자에게 지시 했다. 


 청소 소리 때문에 다른 수용자 깰 수 있으니까 낮에 청소 하세요.


 이정도면 퍽 상냥한 교도관 아닌가?

 그러자 Y는 


 당신 왜 나한테 청소하라 마라 그럽니까.

 내가 이거 다 국가에 허락 맡은 일입니다. 

 왜 나한테 자라고 합니까.  

 맨날 잠만 재우니까 애들 다 정신병 걸리는 거 아니야.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내며 나를 쏘아 붙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처음으로 반항하는 수용자를 마주했고 꽤나 당황하였다.

 

 조용히 하세요.

 다른 수용자들 자고 있는 거 몰라요? 

 목소리 낮추라고요.

 

 나는 응수했지만 Y의 언성은 낮아지지 않았다.

 

 계속 목소리 안 낮추면 지시 불이행으로 조사징벌 수용합니다.

 조용히 하세요.

 

 서로를 빗겨가는 일방통행의 언성이 오가다가, Y는 몸을 돌려 청소를 계속 했다.

나는 당시 이 수용자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괜히 일을 키워 뭐하나,라는 마음으로 순찰을 계속 했다.

어떻게 보면 일을 마무리 지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타협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다음 야간 근무에 투입되고, 다시 정신재활사동을 들어갈 때 나는 그 수용자가 다시 한번 나와 갈등을 빚으면 그 즉시 혼쭐을 내주겠다고 다짐을 하고 사동 문을 열었다. 

새벽 내내 잠을 자지 않고 서있는 수용자를 지나고,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는 수용자를 지나고, 늘 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고 다니는 수용자를 지나고, 마침내 Y의 거실 앞에 다다랐다.

거실 앞에 이르자 닫힌 창에 부딪혀 부서지는 Y의 고함이 들렸다. 


 집회금지법을...

 당신들 이거 허가 받은 거야?

 왜 자꾸 집회를...

 너네들 ....

 내가 국가를 위해서 얼마나 헌신하는데...

 이명박...박근혜...문재인... (기억이 오래되어 생각나는 단어들만 되살렸다.)


독거실을 쓰는 Y는 허공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다행히 창문이 닫혀 있는 터라 복도는 소란스럽지 않았다.

정말 이 수용자는 뭐하는 사람이지? 첫만남은 분노였는데 이제는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창문을 열고 목소리를 낮추라는 뜻으로 조용히 하란 손짓을 했다.

과연 Y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당황스럽게도 Y는 세상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아 교도관님 죄송합니다, 허허허.


하고 돌아서더니 잠자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 번엔 청소하지 말라니까 날뛰더니, 오늘은 허공에다 화를 내고 있다가 이제는 순한 양처럼 말을 잘 듣네? 

파악하기 어려운 MR.CURIOUS 그 자체인 사나이다.

복도 끝을 돌아 다시 Y의 거실을 지날 때, Y가 나를 보고 창문을 열더니 창살로 얼굴을 들이 밀었다.


교도관님, 교도관님.

박□□ 교도관님.

무궁화가 하나, 두개, 교사시네요, 교사.

아이고, 곱다, 고와.

교도관님 이거 사과 좀 드시지예.


이제는 사과를 들이민다.


 이런 거 못 받아요.

 난 괜찮으니까 본인 먹어요.

 

 아이, 받으셔도 괜찮습니더.

 고생하시는데 좀 드시지예, 아이참.

 우리 박□□ 교도관님, 참말로 고생 많습니더, 그럼 고생하시지예!


 몇 번을 거절해도 해맑게 웃으며 사과를 건네는 Y에게 자라는 말을 건네며 성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가 빨렸다.

도대체 뭘까, 나와의 첫만남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두번째 만남에서 Y는 나를 처음 본 사람으로 인식했고 이젠 사과를 건네며 세상 친한 척을 한다.

Y의 수용기록부를 펼치자 메모 란에 양극성 정동장애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조현병이 있구나, 그렇지, Y의 언행이 이해가 된다.


 그 후 새벽에 잠을 자지 않고 책을 읽고 있거나, 청소를 하고 있거나, 허공에 화를 내고 있는 Y를 지나쳤다.

화를 내고 있으면 목소리를 낮추라는 신호를 주면 사람 좋은 미소를 보냈고, 나보고는 아들 같다고 하기도 했다.(나중에 찾아보니 Y는 71년생이었다.)

나는 Y의 친밀한 태도가 썩 부담스러웠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나 보다.


 낮 동안 정신재활사동을 전담하는 팀의 보조로 배치된 날이 있다.

나로서는 정신재활사동 수용자들의 낮동안의 모습을 처음으로 본 날이었다.

수용자들 운동을 시키는 것이 나의 일이라 선임 한분과 수용자들을 데리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먼저 가서 문을 열어 놓고 나오는 수용자들을 지켜봤는데, Y가 나왔다.

Y는 밝은 얼굴로 운동장을 돌아 다니며 다른 수용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낮의 Y는 저렇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운동장에 Y와 친분이 있는(Y는 그렇게 생각하는) 다른 교도관 선배가 들어왔다.

Y는 그 선배를 발견하자 


 어어어, 어어 교도관님! 아이, 이게 얼마만입니꺼!


하면서 선배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선배를 껴안았다. 

선배의 표정은 몹시 당황스러워했고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Y는 그런 선배에게 끈덕지게 달라붙어 어깨동무를 하며 결국 그 선배가 어깨를 풀고 달아나게 만들었다.


 Y와의 마지막 추억은 월드컵 조별예선 마지막 날이었다.

대한민국이 포르투갈을 2대1로 이긴 날, 밤을 지새며 흥분감에 젖어 순찰을 돌러 올라갔다.

Y는 그날도 잠을 자지 않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내가 Y의 수용동을 지나치자 철창 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미는 Y


 주임님! 부장님! 우리나라 축구 누가 이겼습니꺼?


 대한민국이 2대1로 이겼어요.


 아이고, 그라면 우리나라가 올라간 거지 않습니꺼?

 아이고, 잘됐다. 

 아이고 경사다.

 

Y는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거실을 뛰어 다녔다.

나는 창문을 조용히 닫으며 행복한 Y를 지나쳐 순찰을 계속 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교도소엔 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Y는 참 개성 넘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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