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려내야 새살이 난다

by 수인살롱

2월의 첫 날이자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 무탈하게 하루를 보냈다.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건 뭘까 떠올려본다. 뜻밖에도 내 배에 난 뾰루지다. 며칠 전 배꼽 왼쪽 위에 빨간 뾰루지가 하나 올라왔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딱딱해지고 크기도 커졌다. 고름이 잡히는 듯했지만 크게 아프지도, 불편하지도 않아서 그냥 덮어두었다. 괜히 건드리면 더 성날 것 같았고, 아직 덜 익은 것 같았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는데 오늘따라 뾰루지가 유독 눈에 거슬렸다. 짤까 말까 망설였다. 그냥 두자니 계속 신경이 쓰이고, 짜자니 아플 게 분명했다. 큰 마음을 먹고 눈 질끈 감고 양손으로 꽉 눌러 짜버렸다. 순간 안에 차 있던 노란 고름이 터졌고, 곧 피가 섞인 액이 따라 나왔다. 아팠지만 안에 고여 있던 진액을 최대한 짜냈다. 아픔과 쾌감이 공존하는 야릇한 감정이 느껴졌다. 탈의실 관리인에게 반창고를 하나 얻어 배에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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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창고가 사실 대단한 치료를 해 주는 건 아니다. 배에 쪼그만한 반창고 하나 붙였을 뿐인데 왠지 치료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게 플라시보 효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시보 효과란 실제로는 치료 효과가 없는 약이나 처치임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고 있다는 믿음 자체가 통증 완화나 증상 개선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뇌는 기대와 믿음을 근거로 신체 반응을 조절하고, 그 과정에서 통증을 줄이거나 불안을 완화하는 물질을 분비하기도 한다. 반창고 하나가 상처를 낫게 하지는 않지만, ‘치료받았다’는 인식이 몸과 마음을 동시에 안정시키는 셈이다.


그런데 이 뾰루지는 왜 생긴 걸까. 흔히 뾰루지라고 부르지만 의학적으로는 모낭염이나 염증성 여드름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피부 속 모공이나 모낭에 피지와 각질이 쌓이고, 여기에 세균이 번식하면서 염증이 생기면 붉게 부풀어 오르고 고름이 차게 된다. 배처럼 옷에 가려지는 부위는 특히 뾰루지가 생기기 쉽다. 땀이 차기 쉽고, 꽉 끼는 옷이나 허리 밴드에 반복적으로 마찰을 받기 때문이다. 운동 후 바로 씻지 못하거나, 땀이 난 상태로 오래 있거나, 피부가 예민해진 상태에서도 이런 염증은 쉽게 생긴다.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피로가 누적되었을 때, 당분 섭취가 잦을 때도 피부는 가장 먼저 신호를 보낸다.


뾰루지를 관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덜 익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짜면 염증이 더 깊어지거나 흉터로 남을 수 있다. 이미 고름이 잡혔다면 청결한 상태에서 최소한으로 압출하고, 이후에는 소독과 건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복적으로 같은 부위에 뾰루지가 생긴다면 생활습관, 식습관, 위생 상태를 함께 점검해 볼 필요도 있다. 피부는 늘 몸 상태를 정직하게 반영한다.


결국 작은 뾰루지는 내 몸이 보내는 하나의 경고 같다. 인간의 심리는 참 연약하고 단순하다. 아파도 참고 종기를 짜내야 비로소 회복이 되듯, 우리 삶에도 외면하지 말고 도려내야 할 아픈 부분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내 일상과 습관부터 그렇다. 단 음식을 줄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설탕 가득한 음료와 빵, 케이크를 먹는다. 먹으면서는 또 “단 것 좀 줄여야지”라는 말을 내뱉는다. 입은 단맛을 즐기고, 말은 금욕을 외치는 이 모순적인 행동이 꼭 덮어두었던 뾰루지 같다. 당장 도려내야 할 작은 종기다.


그뿐만 아니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타인의 말과 행동에서 굳이 나쁜 면을 찾아 지적하곤 한다. 친절과 배려를 가장한 채, 사실은 꽤 뼈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다른 사람이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길 바라면서 정작 나는 그렇지 못한 이중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이것 또한 곪아 있던 나쁜 종기다.


나쁜 것들을 도려내고 건강한 새살이 돋아나게 하려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읽고, 쓰는 것. 오늘처럼 이렇게 글을 쓰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나에게는 가장 확실한 치료다. 그래서 나는 글 읽기와 글 쓰기를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기승전 읽기와 쓰기라서 재미없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내 삶에서 확인한 진실인걸.


내 마음속 종기가 곪아 터지지 않도록 살피고 관리하고 다독이는 일은 오직 나만 할 수 있다. 누가 대신 도려내 줄 수 없다. 대신 아파해 줄 수도 없다. 나를 더 사랑하고 더 보듬으면서, 여리고 곱고 부드러운 새살들이 마음속에 차오르도록 오늘도 토닥토닥 나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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